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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서경호의 시선

부동산 실책 비판했다는 국책연 보고서 유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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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서경호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서경호 경제·산업디렉터

서경호 경제·산업디렉터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조목조목 비판했다고 해서 최근 화제가 된 국책 연구기관의 보고서를 읽었다. “실정(失政) 책임을 일반 국민의 탓으로 전가했다” “국민을 향해 징벌적 과세 수준의 애먼 칼을 빼 들었다” “순서가 잘못됐고 퇴로 없는 정책은 저항만 낳을 뿐” 등의 ‘속 시원한’ 표현이 담겨있어 눈길을 끌었다. ‘다주택’ 관념에 사로잡혀 일방적으로 정책을 폈고, 충분한 검증 없이 임대차 3법을 강행해 정부 스스로 반자본주의적 이미지에 갇히게 됐다는 지적도 통렬했다.

지난달 국무총리실 산하 경제·인문사회연구회에 제출된 719페이지 분량의 ‘부동산 시장질서 확립을 위한 중점 대응전략’ 보고서인데, 지난해 8월부터 1년간 한국 형사·법무정책연구원이 주관하고 국토연구원·주택금융공사 등이 협력해 작성했다. 반응은 뜨거웠다. 오죽하면 국책 연구기관까지 나섰겠느냐는 반응이 많은 가운데, 정부 눈치나 보던 국책 연구기관이 정책 실패가 만천하에 드러나고 나서야 뒤늦게 면피성 보고서를 냈다는 비판도 나왔다.

‘속 시원한’ 표현 불구 문제 많아
주택 거품이라며 ‘반토막’ 운운
연구보고서, 신문 칼럼과 달라야

보고서를 처음엔 흥미진진하게 읽어가다가 갈수록 고개를 갸우뚱하게 됐다. 보고서는 전혀 성격이 다른 두 개의 영역으로 나뉘어 있다. 형사·법무정책연구원이 쓴 서론·결론, 부동산 형사정책 분야와 국토연구원 등이 쓴 나머지 부분이다.

국토연 등이 쓴 부분은 표현 등에서 튀는 부분이 없는 통상적인 보고서였다. 과거에 대한 반성도 있었다. 주택 정책의 공감대 형성을 강조한 대목은 설득력 있었다. 이제는 주택의 품질도 중요한 시대, 주택시장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최근 5년간 전체 주택 공급물량의 87%를 담당한 민간의 공급 능력을 활용해야 한다고 썼다. 조세와 금융정책을 너무 자주 바꾸는 것도 지적했다.

‘애먼 칼’ 등 언론의 주목을 받은 대목은 주로 보고서의 서론과 결론에서 나왔다. “부동산 가격을 통제하는 것이 주된 정책목표가 되어서는 안 되고, 이른바 거래절벽이나 매물 잠김과 같은 현상이 나타나지 않도록 유통 및 소비와 관련한 규제와 조세를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며 정부의 불요불급한 시장 개입을 최소화하라는 분석은 일리 있다.

하지만 총리실에 제출되는 공식 보고서에 이런 내용이 담겨도 되나 싶은 부분이 꽤 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처럼 주택시장의 거품을 경고하고 싶은 마음이 너무 강했기 때문일까. 너무 멀리 나갔다. “우리 모두가 안다. 이 현상이 거품이고, 환상일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시장이 비정상적으로 경직된 현재 시점에서는 가격 급등 기조가 여전히 유지되고 있지만, 원가에 비해 터무니없는 가격… 주택소유자들의 명목가치도 반 토막 날 뿐만 아니라 기업자산도 반 토막 나고, 국민의 미래를 담보할 국민연금 등 연기금도 반 토막 나게 되면 이른바 ‘동학개미’ 운운하며 널뛰고 있는 주식시장도 반 토막 나게 될 것이다. …부풀 대로 부풀려진 이 비정상적인 부동산 가격을 유지하여 환상을 조금이라도 더 지속시킬 것인지, 아니면 지금이라도 바로잡아 2015년 수준의 가격이라도 지켜낼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

형사정책을 다룬 부분도 마찬가지다. ‘부동산정책을 둘러싼 공적 부문의 부정부패’ 가능성을 제기하겠다는 애초의 목적에 충실한 탓인지, 부동산 공기업, 연기금, 금융권 등을 타깃으로 거친 주장을 한다. ‘갭투자’를 가능하게 하는 전세자금 대출의 문제를 지적하면서 차입자는 상환능력 없이도 비싼 집에 살아 좋고, 주택 소유자는 집값 올라 좋고, 금융회사는 안전하게 이자 받아 돈벌이해서 좋은 공생관계를 지적하는 것까지는 좋다. 금산분리처럼 금융과 부동산을 분리하자는 ‘금부분리 정책’을 주장했던 추미애 전 법무장관을 옹호하며 주택의 사실상 소유주인 금융회사에 대한 직접 대출 규제를 주장하는 건 지나치다. 금융위원회의 금융회사에 대한 조직적 옹호와 관련된 불필요한 오해와 억측을 법무부 견제로 차단하자는 주장은 부처 이기주의로 오해받기 십상이다. 리츠 투자를 홍보하고 지역별로 비싸거나 많이 오른 아파트 정보까지 제공한다는 이유로 부동산시장 교란의 주범 내지 공범 소리를 들은 한국부동산원도 많이 억울할 것 같다.

차 떠난 뒤 손든 국책 연구원을 비판하며 세금 아깝다는 소리가 나온다. 정책 비판이 늦은 것보다 제대로 된 보고서를 냈는지가 더 문제다. 칼럼은 신문에서 읽으면 된다. 국책 연구원의 보고서까지 칼럼 같아선 곤란하다. 정해구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이사장께 ‘협력 연구의 산물’인 문제의 보고서를 꼭 읽어보시길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