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서소문 포럼

언론 옥죄는 ‘선진국’은 없다

중앙일보

입력 2021.09.10 00:24

지면보기

종합 27면

김원배 기자 중앙일보 디렉터 兼 콘텐트코디네이터 兼 시민사회연구소장
김원배 사회디렉터

김원배 사회디렉터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8일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K방역과 아프가니스탄 ‘미라클 작전’ 등을 언급하며 문재인 정부의 업적을 치켜세웠다. 윤 원내대표는 “올해 7월 유엔무역개발회의는 만장일치로 한국을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격상시켰다”며 “문재인 정부는 대한민국을 선진국으로 만든 정부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가 말한 ‘선진국’에서 언론의 자유를 옥죌 우려가 있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졸속 처리될 상황에 놓여 있다. 여야가 27일 본회의 처리에 합의하고 협상에 들어갔지만, 여의치 않으면 여당은 단독 처리를 불사할 기세다.

조국 사태 보도 불만이 도화선
형사처벌하면서 징벌적 손배소
권력 비판 보도 무뎌질 가능성

법 개정안엔 고의·중과실로 허위조작 보도를 하면 피해액의 5배까지 징벌적 손해배상을 하도록 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미국의 경우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가 발달했지만 명예훼손으로 형사처벌을 하지는 않는다. 법이 통과되면 국내 언론은 형사처벌을 받는 상황에서 과중한 민사 책임도 함께 져야 한다. 게다가 곳곳에 모호한 조항이 있어 언론 자유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 언론단체 등에서 나온다.

지난달 30일 7개 언론단체가 언론중재법 개정 철회를 촉구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지난달 30일 7개 언론단체가 언론중재법 개정 철회를 촉구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윤 원내대표는 이날 언론중재법의 필요성을 언급하며 “공업용 우지 파동, 포르말린 검출 골뱅이, 쓰레기 만두, 중금속 황토팩, 대만 카스텔라를 기억하느냐”고 언급했다. 당시 언론 보도에 이런저런 문제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지금 언론중재법 개정의 명분으로 내세우긴 뭔가 부족하다.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급하게 통과시켜야 할 만한 이유가 뭘까. 30여년 전 공업용 우지 파동 때문일까. 그보다는 “언론중재법은 조국 사태의 연장전”이라는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의 지적이 타당하다고 본다.

‘조국 사태’가 한창인 2019년 8월 26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엔 ‘언론사의 가짜뉴스의 강력한 처벌을 청원합니다’라는 글이 올라와 22만9000여명의 찬성을 얻었다. 청원엔 이런 대목이 있다.

“최근 법무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무분별하고도 무차별적인 가짜뉴스가 범람하고 있다. 한 명의 장관 후보자에 관한 뉴스가 1만개가 넘어 2만개 가까이 된다고 한다. 그것마저도 거의 진실이 아니라는 데에 경악하지 않을 수 없다.”

수많은 매체와 다양한 보도가 있었던 만큼 잘못된 것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정말 대부분이 가짜뉴스였을까. 보도 주체가 오보로 인정한 것도 있지만, 의견이 갈리는 경우라면 법원 판단을 봐야 한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부인 정경심 전 동양대 교수의 1, 2심 판결만 놓고 보면 유죄가 나온 부분이 많다. 조 전 장관 동생의 웅동학원 공사 채권 관련 의혹도 1심에선 무죄였지만, 2심에선 업무상 배임 미수로 유죄가 인정됐다.

대법원 확정판결이 나오기 전엔 가짜뉴스로 단정하기 어려운 것도 적지 않다는 얘기다. 보도 대상자가 인정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를 쉽게 가짜뉴스로 추정하면 고위공직자에 대한 의혹 제기나 검증 보도는 포기하라는 말과 다름없다.

드루킹 댓글 조작 혐의로 유죄가 확정돼 지사직을 잃은 김경수 전 경남지사 사건에서도 대법원 판결을 비난하고 이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 그러면서 왜 모호한 법을 만들어 ‘믿을 수 없는 사법부’에 그 판단을 맡기려 하는지 모르겠다.

생각해 보면 언론만 문제인가. 국회의원이 허위사실을 유포해 국민이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면 언론보다 많은 10배를 물어내도록 하는 법을 만들면 어떤가 상상해 본다.

여당이 압도적 다수를 가진 뒤부터 법이 일방적으로 너무 쉽게 만들어지는 과정을 목도한다. 그 흐름을 보면 대체로 각 분야의 자유도를 높이기보다 규제와 처벌을 강화하는 쪽으로 흘러간다. 그리고 의도한 대로 결과가 나오지도 않는다.

여당의 숙원인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출범했지만 검찰개혁이 제대로 됐나. 범죄의 종류와 공직자의 신분에 따라 수사 주체가 달라지며 범죄 수사가 더 어려워진 측면이 있다. 차라리 공수처는 판·검사와 경찰 고위직만 수사해 기소하도록 하는 게 나았다. 이제 제2의 검찰개혁을 한다고 한다. 원래 실력 없는 사람이 손을 여러 번 대는 법이다.

언론중재법을 사회적 합의 없이 일단 만들어놓고 보자는 심산에서 밀어붙이면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결과가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

언론의 자유는 언론이 예뻐서 보장하는 게 아니다. 언론이 위축되면 권력을 견제할 수 없고, 그것이 민주주의를 후퇴시키기 때문이다.

Innovation Lab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