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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한은화의 생활건축

국회의사당에 욱여넣은 권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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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한은화 기자 중앙일보 기자
한은화 건설부동산팀 기자

한은화 건설부동산팀 기자

서울역사박물관에서 26일까지 열리는 전시 ‘여의도’는 조선시대 때 모래섬이었다가 일제강점기에 비행장으로, 이윽고 빌딩 숲이 된 여의도의 역사를 통째로 보여준다. 1970년대 들어 여의도는 본격적인 개발시대를 맞았다. 외딴 섬에서 소위 ‘핫’한 것을 모아 놓은 전시장이 된 때가 이즈음이다. 중산층을 위한 첫 고층 단지인 여의도 시범아파트가 71년 완공됐으며, 4년 뒤 국회의사당이 들어섰다.

국회의사당은 처음부터 말이 많았다. 설계에 참여한 건축가는 넷이나 되지만 모두 자기 작품 목록에 이 건물을 올리는 것을 거부했다. ‘건축가가 없는 건축’으로 태어난 셈이다. 건축가 6명을 지명해 설계 공모전을 했는데 다른 한편으로 일반 공모전도 열어 우수작을 뽑았다. 당선작 하나 없는 뒤죽박죽 공모전에 처음 초청된 건축가 여섯 중 셋이 보이콧을 했고, 결국 남은 셋과 일반 공모전에서 우수작으로 뽑힌 건축가 한 명이 팀을 이뤄 공동안을 정하게 됐다.

구리로 만든 돔을 얹은 여의도 국회의사당. [중앙포토]

구리로 만든 돔을 얹은 여의도 국회의사당. [중앙포토]

건축가 넷이 정한 안이 그대로 실행된 것도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돔’이었다. 설계에 참여한 안영배 건축가는 2013년 출간한 『안영배 구술집』에서 돔에 얽힌 비화를 전했다. 당시 설계안을 본 국회의원들이 “의사당이라고 하면 미국이나 유럽처럼 돔이 있어야지, 왜 여긴 돔이 없냐”고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국회의원들이 하도 높은 돔을 원해서 일부러 보기 싫게 돔을 크게 그려 보여줬더니 오히려 그 안을 좋아해 곤혹스러웠다는 이야기도 전했다.

그렇게 건물에 난데없이 돔을 얹었고, 더 권위적으로 보이게끔 장식용 기둥을 건물 앞에 줄지어 세웠으며 마지막으로 5층이던 건물을 6층으로 올렸다. 당시 5층이던 중앙청보다 한층 더 높이라는 박정희 대통령의 주문대로였다.

국회의사당은 권위를 흉내 내고 짜깁기해 만든 대로 사용됐다. 지난 2019년에 의사당 건립 이래 처음으로 개보수 프로젝트가 가동됐고, 건축가·조경가 등 전문가로 구성된 국회공간문화개선자문위원회가 꾸려졌다. 소통할 수 있는 공간으로 의사당을 재탄생시키겠다는 취지였다. 위원장을 맡은 김원 건축가(건축환경연구소 광장 대표)는 “국민의 사랑을 받는 공간이 돼야지 국회의원들끼리 맨날 치고받고 싸우는 곳이 되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사람이 안 바뀌는데 건물을 바꾼다고 달라질 게 있느냐는 회의적인 시각도 있었지만, 그래도 닫힌 공간을 열어보자는데 공감대는 형성됐다.

프로젝트는 어떻게 되고 있을까. 지난해 20대 국회 임기가 끝나면서 유야무야됐다. 올 초 방문객이 드나드는 뒤편 출입구 쪽에 전광판이 설치돼 소통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정도로 갈무리됐다. 건물이 건립된 지 반세기 가까이 됐건만, 의회 본연의 기능보다 형태만 쫓던 옛 방식에서 달라진 것은 전혀 없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