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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좀 합시다” 부케 대신 근조화환 든 신부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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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전국신혼부부연합 회원이 9일 정부서울청사 인근에서 결혼식장 방역 지침 개선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뉴스1]

전국신혼부부연합 회원이 9일 정부서울청사 인근에서 결혼식장 방역 지침 개선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뉴스1]

‘망친 내 결혼, 배부른 웨딩홀.’

‘못참겠다! 결혼 좀 하자!’

정부의 사회적 거리두기 지침에 반대하는 예비부부들이 이와 같은 문구를 단 화환을 내세우며 시위를 벌였다. 전국신혼부부연합회(이하 연합회)는 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로공원에 근조 화환 30여 개를 세웠다. 원래는 정부서울청사 정문 앞에 화환을 진열할 계획이었으나 경찰의 제지로 장소를 옮겼다. 화환에는 ‘식사 없는 99명 비용 지불은 300인분’ ‘예식장에만 출몰하는 코로나’ 등 예비부부들의 심경을 담은 문구가 적혀 있었다.

한창 행복해야 할 예비부부들이 거리로 나선 이유는 지난 3일 발표한 새로운 사회적 거리두기 기준 탓이다. 방역 당국은 이달 5일부터 식사 제공을 하지 않으면 참석 인원을 99명까지 허용한다고 밝혔다. 단 식사를 할 경우엔 기존처럼 49인까지만 허용된다. 하지만 ‘식사 금지’ 조치가 예상하지 못한 부작용을 키우고 있다. 연합회는 결혼식장 예약 시 관행처럼 이뤄지는 최소 인원 보증에 대한 정부의 대처가 없고, 하객들에겐 백신 인센티브가 적용되지 않는 점 등을 지적했다.

“집단면역 말 믿고 결혼 미뤘는데 … ”

연합회 포스터.

연합회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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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달 17일 결혼 예정인 이모(28)씨는 “49인 기준일 때는 보증 인원을 원래(300명)의 50%로 줄여줬는데 99명 기준이 생기면서 보증 인원만 210명으로 늘었다”고 말했다. 보증 인원이 210명인 경우 하객을 식사 대접 없이 99명 초대하면 남은 답례품 111명분은 예비부부가 직접 가져가야 한다. 이씨가 예약한 결혼식장의 식대는 1인 6만원, 답례품은 2만원대다. 이씨는 “하객들에게 ‘그냥 와주세요. 밥은 못 드세요’라고 어떻게 말하나. 금전적인 피해는 물론 마음의 짐까지 짊어지고 가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예비부부들은 정부의 방역 기준이 결혼식장에만 유독 박하다고 토로했다. 이달 말 결혼 예정인 최모씨는 “예식장을 운영하는 호텔이나 쇼핑몰만 봐도 예식장이 있는 층만 49명 기준이 있고 한 층만 내려가도 사람들이 마스크 벗고 식사하고 바글바글한 상황이 어떻게 공평하냐”고 따졌다.

지난달 여의도에서 열린 결혼식 방역 지침 개선을 촉구하는 래핑버스 시위 모습. [연합뉴스]

지난달 여의도에서 열린 결혼식 방역 지침 개선을 촉구하는 래핑버스 시위 모습. [연합뉴스]

결혼식을 이미 두 차례 미뤘다는 30대 초반 이모씨는 “일반 다중시설에 비해 결혼식장은 방문자를 일일이 파악할 수 있어 방역이 더 쉬운 곳 아니냐”며 “이용시간도 다른 호텔 뷔페보다 짧은데 백신 인센티브나 분리홀 수용 등을 형평성 있게 적용해 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거리두기 4단계에선 서브홀 하객 수용 불가 조건이 붙었는데, 제가 예약한 곳은 3층과 지하 1층을 둘 다 사용할 수 있음에도 49명으로 제한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고 토로했다.

‘내년 추석은 다를 것’이라는 지난해 정부의 발표를 믿고 결혼식을 연기한 예비부부도 있다. A씨는 “올해 9월이면 백신도 70% 이상 접종하고, 집단면역도 생길 거라고 해서 미뤘다”며 “11월 위드 코로나가 적용될 수도 있다고 하는데 항상 말이 바뀌니 힘들다”고 했다.

수익 줄어든 예식장, 다른 비용 덤터기도

결혼식장 인원 제한

결혼식장 인원 제한

거리두기 조치의 허점을 틈타 꼼수를 부리는 업체도 있다. 30대 중반 남모씨는 최근 결혼식장으로부터 장비 사용료, 현장 중계료 명목으로 기존 계약 금액의 두 배를 더 지불하게 됐다고 한다. 남씨는 “예식장은 이미 계약한 금액이 프로모션 적용 가격이라 너무 저렴하다면서 다른 비용을 추가해 손해를 메우려 한다”며 “협상도 아니고 강요하는 식이라 몇 개월간 조율이 안 돼 소송을 진행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전국신혼부부연합회는 예비부부와 신혼부부 등 6000여 명으로 구성돼 있다. 이들은 결혼식장 방역 지침 개선을 촉구하는 ‘래핑버스시위’부터 행정안전부·보건복지부·여성가족부 등 관련 부처와 전국 광역 및 기초 지자체, 여야 당사에 요구사항을 담은 문서를 팩스로 보내는 시위를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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