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락또르 불벼락" 첫 '민간 열병식' 연 김정은, 화동에 볼키스도

중앙일보

입력 2021.09.09 17:36

업데이트 2021.09.09 17:58

북한이 정권 수립 73주년을 맞아 9일 열병식을 개최하면서 '민간 및 안전무력 열병식'이라고 명명해 눈길을 끈다. 정규군이 아닌 예비군, 경찰 성격의 비정규군을 중심으로 방역, 치안, 민생 분야 인력이 총집합한 게 특징이다.

9일 북한 정권수립일(9·9절) 73주년 기념 '민간 및 안전무력 열병식'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소년단원들과 인사를 나누는 모습.  뉴스1. 노동신문.

9일 북한 정권수립일(9·9절) 73주년 기념 '민간 및 안전무력 열병식'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소년단원들과 인사를 나누는 모습. 뉴스1. 노동신문.

김정은 집권 후 첫 '민간 열병식'

정부에 따르면 김정은 집권 이후 총 11차례의 열병식이 개최됐지만 '민간'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건 처음이다. 대부분의 북한 열병식에선 정규군을 주축으로 대규모 군사 퍼레이드를 실시하고 신형 전략무기를 공개한다.

반면 이날 열병식에는 한국의 예비군, 민방위 격인 노농적위군이 중심이 됐다. 노농적위군은 1959년 창설된 민간군사조직으로 평시에는 생업에 종사하다 유사시에 지역 방어에 나선다.

북한은 앞서 김정은 집권 이후인 2013년 9ㆍ9절에도 정규군 대신 노농적위군을 동원해 열병식을 열었다. 다만 당시에 북한 매체는 문자 그대로 '노농적위군 열병식'이라고 보도했을 뿐 이번처럼 '민간 및 안전무력'이라는 다소 생소한 명명은 하지 않았다.

이외에도 이날 열병식에는 한국의 경찰 격인 사회안전군이 참여했다. 한국의 경찰청과 같은 사회안전성이 지난해 인민보안성으로 이름을 바꾸면서, 산하 무력 조직인 인민내무군도 사회안전군으로 바뀌었다.

북한 내부적으로는 사회안전군이 민생ㆍ치안 측면에 있어 정규군에 버금가는 영향력을 지닌 조직이라는 평가다.
북한이 대미 메시지까지 고려해 이번 열병식에 대외적인 군사력에 해당하는 정규군 대신, 대내 실권을 지닌 사회안전군을 전략적으로 내세운 거란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9일 북한 정권수립일(9·9절) 73주년 기념 '민간 및 안전무력 열병식' 모습. 뉴스1. 노동신문.

9일 북한 정권수립일(9·9절) 73주년 기념 '민간 및 안전무력 열병식' 모습. 뉴스1. 노동신문.

트랙터ㆍ오토바이ㆍ소방차 집결

열병식 참여 단위가 이례적이다 보니 색다른 모습도 다수 연출됐다. 신형 무기 대신 트랙터와 오토바이를 동원한 기계화종대가 행진했다. 조선중앙통신은 이날 "오토바이 종대에 이어 농촌 기계화 초병들이 유사시 침략자와 그 졸개들의 머리 위에 섬멸의 불벼락을 들씌울 멸적의 포무기들을 실은 뜨락또르(트랙터)들을 몰고 기세 드높이 나아갔다"고 보도했다.

소방차, 개, 말 등도 행진해 눈길을 끌었는데, 각각 소방대종대, 군견수색종대, 사회안전군특별기동대종대(기병대) 소속이었다.

조선중앙TV가 이날 공개한 영상에 따르면 시계탑의 시계 분침이 정확히 9일 0시를 가리키자 김 위원장이 입장했다. 김 위원장은 꽃다발을 준 여자 어린이의 이마에, 남자 어린이의 뺨에 입을 맞췄고, 내내 함께 팔짱을 끼고 환히 웃으며 걸어가는 모습이 돋보였다. 김 위원장은 주석단에서 리일환 당 비서의 연설 등 행사 전반을 지켜봤다.

9일 북한 정권수립일(9·9절) 73주년 기념 '민간 및 안전무력 열병식'에는 신형무기 대신 트랙터, 오토바이 등이 등장했다. 노동신문. 뉴스1

9일 북한 정권수립일(9·9절) 73주년 기념 '민간 및 안전무력 열병식'에는 신형무기 대신 트랙터, 오토바이 등이 등장했다. 노동신문. 뉴스1

9일 북한 정권수립일(9·9절) 73주년 기념 '민간 및 안전무력 열병식'에서 소년단원의 팔짱을 끼고 입장하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노동신문. 뉴스1.

9일 북한 정권수립일(9·9절) 73주년 기념 '민간 및 안전무력 열병식'에서 소년단원의 팔짱을 끼고 입장하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노동신문. 뉴스1.

김 위원장을 비롯, 주석단에 오른 인사들은 물론이고 운집한 군중 중 누구도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 코로나19 방역에 대한 자신감을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주황색 방역복을 입은 비상방역종대도 행진에 동참했다. 북한은 코로나19 관련 외부 지원을 전혀 받지 않기 때문에 이 방역복도 자체 개발한 걸로 보인다. 조선중앙통신은 이날 "세계적인 대재앙으로부터 조국과 인민의 안전을 철통같이 지키는 방역전선의 전초병들과 보건전사들의 불타는 애국열의가 세차게 끓어번지였다"고 보도했다.

9일 북한 정권수립일(9·9절) 73주년 기념 '민간 및 안전무력 열병식'에서 비상방역종대로 추정되는 행렬이 행진에 참석한 모습.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9일 북한 정권수립일(9·9절) 73주년 기념 '민간 및 안전무력 열병식'에서 비상방역종대로 추정되는 행렬이 행진에 참석한 모습.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과시보다 '가성비' '가심비' 택했나 

전문가들은 북한이 지난 1월 8차 당대회 기념 열병식 이후 8개월 만에 다시 열병식을 개최한 데다, 준비 기간이 짧았다는 점에 주목한다. 통상 열병식 준비가 한 달 이상 걸리는 것과 달리 이번 열병식의 준비 동향은 지난달 말부터 포착됐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북한이 새로운 무기를 선보일 정도로 열병식을 철두철미하게 준비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기 때문에, 비정규군에 대한 격려 성격의 행사로 대체한 것으로 보인다"며 "다음 달 10일 당 창건 기념일에는 정규군이 모습을 드러낼 가능성도 남아 있다"고 분석했다.

북한이 경제난에 시달리는 와중에 굳이 민간 열병식까지 기획한 건 그만큼 내부 결속이 절실하다는 방증이라는 분석도 있다. 홍민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북한은 과거부터 위기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 군의 규율을 사회로 투영시키는 노력을 해왔다"며 "그정도로 북한이 내부 질서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내부 여건도 좋지 않고, 대외적으로 무력을 과시할 타이밍이라고 판단한 북한이 나름대로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가 좋은 카드를 고른 것"이라는 분석(김영수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도 나왔다. 밝은 분위기에서 격려하듯 치러진 열병식은 민심을 고려한 '가심비' 전략일 수도 있는 셈이다.

'실세' 조용원..물러난 이병철 

한편 주석단에는 최용해 국무위원회 제1부위원장, 조용원 당 조직비서, 김덕훈 내각 총리, 박정천 당중앙위원회 비서 등이 자리했다. 김 위원장의 최측근이자 핵심 실세로 떠오른 조 조직비서는 열병부대를 점검하는 등 존재감을 드러냈다.

지난 1월까지 군 서열 1위로 열병식을 주도하던 이병철 전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은 이날 열병식에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는 의주 비행장 방역 문제로 해임됐다. 이선권 외무상은 지난 1월 열병식에선 호명됐지만, 이날 열병식에선 언급되지 않았다.

9일 북한 정권수립일(9·9절) 73주년 기념 '민간 및 안전무력 열병식'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최용해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조용원 당 조직비서, 박정천 정치국 상무위원, 김덕훈 내각총리가 주석단에 섰다. 노동신문. 뉴스1.

9일 북한 정권수립일(9·9절) 73주년 기념 '민간 및 안전무력 열병식'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최용해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조용원 당 조직비서, 박정천 정치국 상무위원, 김덕훈 내각총리가 주석단에 섰다. 노동신문.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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