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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BM 대신 '인민축제' 택한 김정은…내부결속용 열병식 급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9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개최된 '민간 및 안전무력 열병식'은 축제에 가까웠다. 이번 열병식이 미국 등을 향한 대외 메시지 성격이 아닌 내부 결속용이란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연합뉴스]

9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개최된 '민간 및 안전무력 열병식'은 축제에 가까웠다. 이번 열병식이 미국 등을 향한 대외 메시지 성격이 아닌 내부 결속용이란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연합뉴스]

북한이 정권 수립 73주년(9ㆍ9절)을 맞아 9일 개최한 열병식은 통상적 군사 퍼레이드보다는 오히려 ‘축제’에 가까웠다.

‘이민위천(以民爲天·백성을 하늘과 같이 섬김)’ 등의 글귀를 내건 낙하산병의 강하와 전투기를 활용한 축하 비행, 청년들의 야회(야간 무도회) 등은 무력을 과시하던 이전의 열병식과 거리가 있었다. 퍼레이드에 참여한 병력 역시 정규군인 조선인민군 대신 노농적위군(예비군)·사회안전군(경찰) 등 비정규군 중심이었다.

"일심단결" 강조한 열병식 연설 

이번 열병식을 개최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시선은 북한 내부를 향해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실제 이일환 당 중앙위원회 비서의 열병식 연설도 내부 결속에 방점이 찍혔다. 김 위원장에 대한 충성을 강조하는 한편 “우리는 일심단결의 위력으로 현 난국을 타개하고 사회주의 건설의 새로운 고조기, 격변기를 열어나갈 것”이라며 자력갱생을 통한 위기 돌파를 촉구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9일 평양 김일성광장에 열린 열병식에 참석했지만, 별도의 연설은 하지 않았다. [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9일 평양 김일성광장에 열린 열병식에 참석했지만, 별도의 연설은 하지 않았다. [연합뉴스]

열병식 개최 전 포착된 여러 정황도 이런 분석을 뒷받침한다.

우선 북한은 이번 열병식을 8월 말부터 긴박하게 준비한 것으로 보인다. 그간 북한의 열병식은 짧게는 2개월, 길게는 3~4개월에 걸쳐 치밀한 사전 준비 과정을 거쳐 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례적으로 짧은 준비 기간이었다. 당초 8월 말 다수의 병력이 대열을 맞춰 미림비행장에 집결해 있는 모습이 위성사진에 찍혔을 때만 해도 전문가들이 9·9절이 아닌 10월 이후 열병식을 예상한 이유다.

열흘 만에 후다닥…뭐가 그리 급해서

5년, 10년 단위로 꺾이는 해인 ‘정주년’이 아닌 73주년임에도 9·9절을 열병식으로 기념하는 것도 그 간의 초식에서 벗어난다. 김 위원장은 집권 후 총 두 차례에 걸쳐 9·9절 계기 열병식을 거행했는데, 65주년인 2013년과 70주년인 2018년 등 모두 정주년이었다.

이는 결국 9·9절을 앞세워 꼭 열병식을 개최해야 하는 내부 사정이 생겼다는 의미로도 해석 가능하다. 대북제재와 수해, 코로나19 등 3중고로 인한 경제난이 극심해진 북한 내부 상황과도 무관치 않다. 열병식을 주민들의 사기 진작용 행사로 활용했을 가능성이 있다.

차두현 아산정책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이번 열병식은 지난 1월 이후 약 8개월만인데, 잦은 열병식 개최는 그만큼 북한이 내부적인 단합을 계속 이끌어내야 할 정도로 상황이 안 좋다는 의미로 해석된다”며 “동시에 비정규군 중심의 열병식을 진행한 것은 정규군 뿐 아니라 모든 인민이 전투준비태세를 유지하고 있다는 일종의 ‘정신무장’을 강조하기 위한 목적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북한이 정권수립 73주년인 9일 민간·안전무력 열병식을 거행했다. 전략무기나 신형무기를 공개하며 무력을 과시하던 기존 패턴과 달리 이번 열병식은 내부 결속을 위한 각종 '볼거리' 위주로 구성됐다. [연합뉴스]

북한이 정권수립 73주년인 9일 민간·안전무력 열병식을 거행했다. 전략무기나 신형무기를 공개하며 무력을 과시하던 기존 패턴과 달리 이번 열병식은 내부 결속을 위한 각종 '볼거리' 위주로 구성됐다. [연합뉴스]

동시에 미국을 향한 메시지도 열병식에 담겼다는 지적이다. 예전처럼 신형무기 공개 등을 통해 무력을 과시하는 등 도발적 메시지를 발신하지 않은 것 자체가 메시지일 수 있다는 것이다.

도발 메시지 없는 게 대미 메시지? 

김 위원장이 조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 진행한 첫 열병식에서 의도적으로 도발보다 ‘로우키(low-key)’ 기조를 택한 게 맞다면, 이는 쉽게 미국과의 대화에 나설 수도, 긴장 격화를 꾀할 수도 없는 북한의 복잡한 속내를 반영한 것일 수 있다.

일각에선 한·미 연합훈련에 대한 대응을 이번 열병식을 겸해 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북한은 연합훈련에 대해 "엄청난 안보 위기를 느끼게 해주겠다"(김영철 북한 통일전선부장)며 극렬 반발했지만, 남북 간 통신연락선 재차단 외에 가시적 조치가 이뤄지진 않았다. 강도 높은 위협을 해놓은 만큼 그냥 넘어갈 순 없는 상황에서 로우 키 열병식을 진행하는 것으로 나름의 수위 조절을 한 것으로 볼 여지도 있다.

특히 최근 중국과의 밀착 행보를 강화하고 있는 북한 입장에선 내년 2월 베이징 겨울 올림픽을 앞두고 고강도 도발을 통해 북·미 갈등이 격화하거나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이 화두에 오르는 상황을 지양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럴 경우 북한의 '뒷배'를 자처해온 중국도 마냥 북한만 두둔하기는 어려워질 수 있다.  

남성욱 고려대 통일외교학부 교수는 “최근 북한이 영변 원자로를 재가동하고 있다는 IAEA(국제원자력기구) 보고서가 나오면서 바이든 행정부가 북한의 행동을 주시하는 가운데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등 새로운 투발 수단이나 전략무기를 공개하는 것은 부담스러운 상황”이라며 “자칫 미국이 대북 제재 등 압박을 한층 강화하는 명분을 주지 않도록 축제같은 분위기의 열병식을 통해 바이든 행정부를 향해 톤다운된 모습을 보인 것으로 풀이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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