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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소‧고발인 조사’ 규칙서 뺀 공수처…인권 수사 후퇴 논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고소‧고발인 조사 과정을 거치지 않고도 수사 착수 여부를 정할 수 있도록 자체 사건사무규칙을 개정했다. 검찰과 차별화된 ‘인권 수사’를 강조한 공수처가 고소‧고발인의 권리를 되려 후퇴시킨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이 9일 오전 경기 정부과천청사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 출근하고 있다. 뉴스1

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이 9일 오전 경기 정부과천청사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 출근하고 있다. 뉴스1

공수처는 “분석조사 담당 검사가 수사처 수사 개시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기초 조사를 통해 해당 사건의 수사 필요성 등을 분석·검토해야 한다”는 내용으로 사건사무규칙 13조 2항을 개정해 9일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애초 ’고소인‧고발인 조사 등 기초조사‘ 문구에서 ’고소인‧고발인 조사‘를 삭제했다.

공수처, “접수뒤 기초 조사 폭넓게 하도록 개정” 

공수처는 개정 이전에도 여러 사건에 대해 고소인‧고발인 조사를 생략한 채 정식 입건 및 이첩 여부를 결정해왔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정식 입건한 옵티머스 펀드 사기 부실 수사 의혹과 한명숙 전 총리 모해위증교사 수사방해 사건 등의 경우 각각 지난 2월과 3월 사건을 접수한 뒤 고발인 조사 없이 지난 6월에 입건했다.

윤 전 총장의 라임 술접대 사건 은폐 의혹의 경우 지난 6월 접수한 뒤 역시 고발인 조사 없이 지난달에 검찰에 이첩했다. ’월성원전 1호기 과잉감사‘ 및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표적 감사‘ 의혹으로 최재형 전 감사원장이 고발된 사건도 마찬가지로 고발인 조사를 건너뛴 채 검찰로 넘겼다.

이는 정치권 및 고소‧고발인으로부터 동시에 비판을 받았다. 조수진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6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김진욱 공수처장에게 “수사 개시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고소·고발인 조사가 있어야 하는데 왜 윤 전 총장 사건에 대해선 하지 않았냐”고 지적했다.

라임 술접대 사건 및 과잉‧표적감사 사건의 경우 고발인인 김한메 사법정의바로세우기시민행동(사세행) 대표가 “고발인 조사를 생략한 채 검찰에 이첩했다”며 공수처를 강하게 비판했다. 사세행은 김진욱 공수처장을 직무유기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공수처 관계자는 “검찰과 경찰은 고소·고발 접수 후 바로 입건하는데 공수처는 다른 기관과 달리 바로 입건하는 것이 아니고 기초 조사를 거친 뒤 입건 여부를 결정한다”며 “기존에는 기초 조사 과정에서 마치 고소‧고발인 조사가 의무인 것처럼 불필요한 오해를 일으키는 만큼 문구를 생략하고 기초 조사를 폭넓게 할 수 있도록 여지를 남긴 것“이라고 설명했다.

공수처는 또 이날 설명자료를 통해 “타 수사기관의 경우도 입건 후 고소·고발인 조사없이 각하하는 경우도 많다”며 “선택적 조사를 위한 개정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사법정의바로세우기시민행동 김한메 상임대표가 지난 8월 서울 서초구 중앙지검 앞에서 김진욱 공수처장, 여운국 공수처 차장을 직무유기 및 공수처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기 전 배경에 대해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사법정의바로세우기시민행동 김한메 상임대표가 지난 8월 서울 서초구 중앙지검 앞에서 김진욱 공수처장, 여운국 공수처 차장을 직무유기 및 공수처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기 전 배경에 대해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법조계 ‘고소·고발인 입장에서 납득 어려워” 

법조계에선 사건 접수 후 입건 전 별도의 조사 과정을 거치는 공수처의 특수성을 고려하더라도 고소‧고발자의 권리를 저해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공수처는 사건 접수 후 검토 단계를 내부적인 내사 단계 정도로 생각해 이런 사무규칙을 정한 것으로 보인다”며 “하지만 고소‧고발인 입장에서 그들의 견해를 한마디도 듣지 않고 입건 여부를 결정하는 건 납득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승 연구위원은 “이런 규칙이 입건 결정 뒤에는 피의자 측의 공격을 받을 소지도 있는 만큼 공수처 내부에 적용되는 사무규칙이라고 하더라도 개정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창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공수처가 고소인‧고발인 조사를 선별적으로 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라며 “이는 고소·고발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월권 행위로 비칠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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