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개 취급말라"…130명 목숨 앗은 IS 테러리스트 법정 난동

중앙일보

입력 2021.09.09 15:19

업데이트 2021.09.09 15:25

프랑스 파리 바타클랑 콘서트장 근처에 세워진 파리테러 희생자들을 위한 즉석 추모비 앞에 사람들이 꽃과 촛불을 놓고 애도하고 있다. 연합뉴스

프랑스 파리 바타클랑 콘서트장 근처에 세워진 파리테러 희생자들을 위한 즉석 추모비 앞에 사람들이 꽃과 촛불을 놓고 애도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2015년 프랑스 파리에서 130명의 목숨을 앗아간 파리테러 사건의 용의자 20명에 대한 재판이 8일(현지시간) 시작됐다. 첫 공판에 등장한 주요 용의자는 재판장을 향해 "나를 개 취급하지 말라"며 난동을 피워 지켜보던 이들의 공분을 샀다.

'역사상 가장 긴 재판' 시작 

AP통신과 CNN, 뉴욕타임스(NYT)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6년 전 유럽과 전 세계를 충격에 몰아넣은 파리테러 연루자에 대한 첫 공판이 이날 시작됐다. 이번 재판은 330명의 변호사와 1800명의 원고가 참여하며 9개월 이상 소요될 예정이다. 에릭 뒤퐁 모레티 프랑스 법무장관은 시테섬 특별법원에서 진행되는 이번 재판에 대해 "모든 면에서 최상급의 재판이자 우리 역사상 가장 긴 재판이 시작됐다"고 말했다.

파리테러에 대한 재판이 진행되는 파리의 특별법원. 연합뉴스

파리테러에 대한 재판이 진행되는 파리의 특별법원. 연합뉴스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이날 법원에 등장한 용의자 살라 압데슬람(31)은 시종 흥분한 상태였다. 검정색 옷과 검정색 마스크를 착용하고 나타난 그는 갑자기 피고석에서 벌떡 일어나 마스크를 벗으며 재판장을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나를 사람으로 대접해라. 개처럼 대하지 말라"고 소리를 질렀다. 이어 "나는 죽은 뒤 부활할 것이고 당신들은 이같은 행동에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도 외쳤다.

재판장이 이를 저지하자 압데슬람은 "이곳은 평면 스크린과 에어컨이 있는 쾌적한 장소다. 하지만 나는 지금껏 개처럼 학대당했다"고 난동을 이어갔다. 그의 소동에 재판은 잠시 중단됐다.

법원에서의 압데슬람의 모습을 스케치한 것. 그는 마스크를 벗고 재판장에게 고함을 치는 등 난동을 부린 것으로 알려졌다. 연합뉴스

법원에서의 압데슬람의 모습을 스케치한 것. 그는 마스크를 벗고 재판장에게 고함을 치는 등 난동을 부린 것으로 알려졌다. 연합뉴스

피고 "개 취급 말라" "알라 외에는 신이 없다" 난동 

이후 재판이 재개된 뒤 신원 확인 절차를 시작하자 압데슬람은 대뜸 "알라 외에는 신이 없으며 무함마드가 그의 종이자 전령이라는 사실을 증언하고 싶다"고 말했다. 직업을 묻자 "나는 이슬람국가(IS) 전사가 되기 위해 모든 직업을 포기했다"고 답했다. 부모의 이름을 묻는 질문에는 "이 사건과 아무 상관이 없다"며 답변을 거부했다. 이어진 질문에는 묵비권을 행사하며 침묵을 지켰다. 가디언은 이같은 그의 행동에 법원 방청석에서는 "이 개○○아, 우리는 130명이 목숨을 잃었다"는 분노에 찬 목소리가 터져나왔다고 전했다.

파리 테러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프랑스 본토에서 벌어진 최악의 참사로 불린다. 2015년 11월 13일 오후 9시 20분경 프랑스와 독일 축구 대표팀 친선 경기가 열린 스타드 드 프랑스 경기장 밖에서 액체 폭탄이 들어있는 조끼가 터지면서 시작됐다. 이후 파리10구와 11구에 있는 식당가에서 총기가 난사됐고, 공연 중이던 바타클랑 극장에는 테러범이 난입해 폭발물을 던지고 90여명에게 총을 쏴 살해했다. 현장에서 130명이 사망하고 수백명이 부상을 입었다. NYT는 "당시에는 생존했지만 심각한 트라우마를 겪다 2017년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도 공식적으로 131번째 파리 테러 희생자로 이름을 올렸다"고 전했다.

이번 재판에 회부된 피고인 20명 중 테러에 직접 가담한 사람은 압데슬람 한명 뿐이다. 나머지는 19명은 폭발물 제조와 무기 조달 등 공범 혐의를 받고 있다. NYT에 따르면 압데슬람은 당시 테러를 주도한 10명 중 한 명으로, 나머지 9명은 사건 현장에서 자폭하거나 경찰 진압 과정에서 사망했다. 압데슬람 역시 폭탄 벨트를 터뜨려 자폭을 시도했지만 실패하면서 유일한 생존자가 됐다. 이후 벨기에로 도망쳤다 4개월만에 생포됐다.

파리 테러 주동자 중 유일한 생존자인 압데슬람. 연합뉴스

파리 테러 주동자 중 유일한 생존자인 압데슬람. 연합뉴스

압데슬람을 포함한 20명의 피고인 중 14명은 직접 재판을 받고 있고, 6명은 궐석 재판을 받는다. 이들 대부분은 종신형을 언도받을 것으로 보인다고 AFP는 전했다. 압데슬람은 파리 테러 사건의 전모를 아는 몇 안 되는 인물로 여겨지고 있다. 재판 과정에서 그가 얼마나 입을 열지는 미지수다.

재판부 "유가족과 생존자 치유가 목표"

내년 5월까지 9개월간 진행될 재판은 프랑스 현대사에서 최대 규모 재판으로 기록될 예정이다. 프랑수와 올랑드 전 대통령도 증인으로 나선다. 사건 파일만 542권 분량으로 100만 페이지에 달한다. 프랑스 파리와 벨기에 브뤼셀의 지하드(이슬람 성전주의) 조직과 시리아에 있는 그들의 조력자 간 연관성을 밝혀낸 조사 결과가 빼곡히 담겼다.

바타클랑 공격의 생존자·희생자 모임인 '라이프 포 파리'의 회장인 아서 드누보는 이 재판에 대해 "우리는 미지의 세계로 들어가고 있다"며 "앞으로 9개월 동안 재판이 어떻게 진행될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프랑스 사법부는 이번 재판을 통해 단순히 사건의 진상을 밝히고 테러범을 처단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유가족과 생존자들의 상처를 치유하는 것이 목표다. 재판에 참여한 원고 1800명은 앞으로 5주간 언제든지 발언권을 요청해 그간 자신이 겪은 고통과 상처를 털어놓을 수 있다. 법원에는 이들을 위한 심리 상담사, 의료진이 배치될 예정이다.

지난해 프랑스 파리 바타클랑 콘서트장 근처에 세워진 파리 테러 5주년을 맞아 희생자를 위한 즉석 기념비 앞에 사람들이 모여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프랑스 파리 바타클랑 콘서트장 근처에 세워진 파리 테러 5주년을 맞아 희생자를 위한 즉석 기념비 앞에 사람들이 모여 있다. 연합뉴스

파리 테러로 한 카페에서 어린 아들을 잃은 도미니크 키엘레모에스는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재판에서 다른 피해자들의 증언을 듣는 것은 피해자 모두와 국민 전체의 치유에 매우 중요한 과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 테러리스트들은 그저 '군중'을 향해 총을 쏘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라며 "하지만 총에 맞은 모든 사람은 그저 '집단'이 아니라, 각자의 삶이 있고 사랑하는 가족이 있고 미래에 대한 희망과 기대가 있는 개인들이었다. 재판 과정에서 그들 모두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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