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망치고 빚만 가득" 신부는 부케 대신 근조화환 들었다

중앙일보

입력 2021.09.09 14:32

업데이트 2021.09.09 14:55

9일 오전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전국신혼부부연합회 회원들이 정부의 결혼식 방역 지침 개선을 요구하며 화환 시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9일 오전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전국신혼부부연합회 회원들이 정부의 결혼식 방역 지침 개선을 요구하며 화환 시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망친 내 결혼, 배부른 웨딩홀.’
‘식사 없는 99명, 비용 지불은 300인분.’

9일 오전 8시,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인근에는 이 같은 문구를 적은 근조 화환 30여개가 늘어섰다. 전국신혼부부연합회는 애초에 청사 정문 앞에 화환을 진열할 계획이었으나 경찰의 제재로 인근 공원에 설치했다.

이날 현장에는 목소리를 내기 위해 연차 휴무를 낸 예비부부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이들은 정부가 기존 4단계 식사 제공이 가능한 49명 기준에서 식사가 불가능한 99명으로 기준을 추가한 이후 상황이 더 악화됐다고 입을 모았다.

오는 10월 17일일 결혼식을 올리는 이모(28)씨는 “원래 보증인원이었던 300명을 예식장 측에서 49인 기준일 때는 50%로 줄여줬지만, 99명 기준이 생기면서 30%인 210명으로 보증인원을 늘렸다”면서 “식대는 1인 6만원, 답례품이 2만 원대인데 다 답례품으로 대체하게 되면 예비부부들만 손해가 막대해진다”고 말했다. 보증인원이 200명인 경우, 하객을 식사 대접 없이 99명을 부르게 되면 남은 답례품은 예비부부가 직접 가져가야 한다. 답례품이 와인이라면 신혼집에 와인 100여병이 ‘처치곤란’으로 남게 되는 것이다.

아울러 이씨는 “99명으로 늘려줘도 실효성이 없는 게, 차라리 49명을 불러서 식사를 대접하지, 하객들에게 ‘와주세요. 그런데 밥은 못 드세요’라고 어떻게 말하냐. 금전적으로 피해를 보고 마음의 짐까지 짊어지고 가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하객들에게 나눠주고 남은 답례품. 답례품은 예식장 측이 기존 보증인원에 맞춰 제공하기 때문에, 대량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사진 전국신혼부부연합회

하객들에게 나눠주고 남은 답례품. 답례품은 예식장 측이 기존 보증인원에 맞춰 제공하기 때문에, 대량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사진 전국신혼부부연합회

예식장 층만 벗어나면 인파 ‘바글바글’

예비부부들은 정부의 방역 기준이 예식장에만 유독 박하다고 토로했다. 이달 말 결혼 예정인 최모씨는 “예식장을 운영하는 호텔이나 쇼핑몰만 가도, 예식장 층만 49명 기준이 있고 한 층만 내려가도 사람들이 마스크 벗고 식사하고, 바글바글한 상황이 어떻게 공평하냐”고 했다.

결혼식을 이미 두 차례 미뤘다는 30대 초반 이모씨는 “일반 다중시설에 비해 결혼식장은 방문자를 예비부부와 혼주들이 일일이 파악할 수 있어 방역이 더 쉬운 곳 아니냐”며 “이용시간도 다른 호텔 뷔페보다 짧다. 다른 시설들과 형평성 있게 백신 인센티브나 분리홀 수용을 적용해줬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거리두기 4단계에선 서브홀 하객 수용 불가 조건이 붙었는데, 제가 예약한 식장은 3층과 지하 1층을 둘 다 사용할 수 있음에도 49명으로 제한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고 덧붙였다.

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인근에서 전국신혼부부연합회가 근조 화환시위를 벌였다. 권혜림 기자

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인근에서 전국신혼부부연합회가 근조 화환시위를 벌였다. 권혜림 기자

“정부 믿고 미뤘다…상황은 그대로”

지난해 방역당국의 ‘내년 추석은 다를 것’이라는 취지의 발표를 듣고 결혼식 연기를 택했던 예비부부도 있다. A씨는 “올해 9월이면 백신도 70% 이상 접종하고, 집단면역도 생길거라 해서 믿고 미뤘다”면서 “11월 위드 코로나가 적용될 수도 있다고 하는데, 말이 항상 바뀌고 코로나도 잡히질 않으니 마음 놓고 미룰 수도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30대 중반 남모씨는 최근 예식장으로부터 장비사용료, 현장중계료 명목으로 기존 계약 금액의 두배를 더 지불하게 됐다고 한다. 남씨는 “보증인원이 전체적으로 조금씩 줄다 보니 예식장은 기존 금액이 프로모션 적용 가격이라면서 다른 비용을 추가해 그 손해를 메우려고 하고 있다”며 “협상도 아니고 강요하는 식이라 몇 개월간 조율이 안 돼서, 내용증명을 보낸 후 소송도 진행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전국신혼부부연합회는 예비부부와 신혼부부 등 6000여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결혼식장 방역 지침 개선을 촉구하는 ‘래핑버스시위’부터 행정안전부·보건복지부·여성가족부 등 관련 부처와 전국 광역 및 기초 지자체, 여야 당사 팩스 번호를 공유하고 요구사항을 담은 문서를 팩스로 보내는 시위를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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