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언의 '더 모닝'] 배달 라이더의 죽음, 정말 탈출구가 없나요?

중앙일보

입력 2021.09.09 10:04

업데이트 2021.09.09 10:06

안녕하세요? 오늘은 오토바이 배달원의 안전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지난달 26일 서울 선릉역 인근에서 사고로 숨진 오토바이 배달원을 추모하는 뜻에서 사고 현장 옆에 동료 라이더들이 가져다 놓은 꽃과 술. [연합뉴스]

지난달 26일 서울 선릉역 인근에서 사고로 숨진 오토바이 배달원을 추모하는 뜻에서 사고 현장 옆에 동료 라이더들이 가져다 놓은 꽃과 술. [연합뉴스]

머나먼 길이다 청략리역에서 안드로메다까지,

별의 여왕에게 영원히 배고프지 않는 마법의 라면을 배달하러

페가수스 별자리를 향해 일만 광년 속도로 질주한다.

나보다 더 빨리 달리는 외계인 폭주족들,

향하는 곳이 암흑성운인 줄도 모르고  

무한대로 들어간다 큰 코끼리 별과 반딧불 별 사이

스타벅스 커피숍을 만나면

낙태된 자매 별들이 무중력 상태로 떠다닌다.

주창윤 시인의 시 ‘안드로메다로 가는 배민 라이더’의 앞부분입니다. 끝은 이렇습니다. ‘기계인간 테레사가/“내 별이 그랬던 것처럼 당신 별도 마지막 순간이 다가오는군요”라고 말할 때/나는 이미 밤이 없는 행성을 지나/낮이 없는 행성으로 들어가는 중이었다.’ 폭주 시대의 암울한 미래를 예언합니다.

서울여대 언론영상학부 교수인 주 시인의 시 중에는 ‘추석을 배달하는 퀵서비스 맨’이 있습니다. 시의 중간 대목을 전합니다. ‘특상 나주 배 같은 달의 무게가/중심을 잃게 만들었나?/사거리에서 넘어진 오토바이/바퀴는 계속해서 헛돌고/쓰러진 퀵서비스 맨은 일어나지 못한다/깨진 양주병에서/터진 보름달이 흘러내려/아스팔트를 적신다.’  

최근 서울에서 잇따라 교통사고로 오토바이 배달원이 숨졌습니다. 차를 운전하다 목격한 아찔했던 순간들, 오토바이 잔해들, 길에 쓰러져 있던 배달 라이더가 떠오릅니다. 신호와 차선을 지키지 않고 질주하는 그들을 보며 혀를 찬 적이 많습니다. 그러면서도 배달 음식을 기다릴 때엔 그들이 빛의 속도로 달려오기를 원합니다. 우리 모두가 비슷한 경험과 감정을 안고 이 ‘배달의 시대’를 살아갑니다.

석 달 전에 오토바이 배달원 단체인 ‘라이더유니온’이 실험을 했습니다. 서울과 부산에서 11명의 배달 앱 라이더가 하루는 평소처럼, 다른 하루는 '준법 주행'을 해 배달 건수와 소득을 비교해 봤습니다. 준법 주행은 속도, 신호 규정을 모두 지키고 차량 사이로 '칼치기'를 하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랬더니 배달 건수가 평균 26.6건에서 18.7건으로 29% 줄었습니다. 평균 시급은 1만6931원에서 1만3421원으로 20% 감소했습니다. 하루 소득도 비슷하게 적어졌습니다. 건당 평균 배달 시간은 23.3분에서 29.3분으로 평균 6분이 늘었습니다.

배달원들은 어떻게든 빨리 달려야 돈을 더 법니다. 배달 지연으로 배달 앱에서 경고를 받으면 일이 줄어들 수도 있습니다. 배달을 맡긴 음식점도 되도록 그들이 빨리 가기를 바랍니다. 그래야 손님의 만족도가 높아집니다. 라이더들의 속도와 배달 앱의 수입이 비례합니다. 다른 배달 앱과의 경쟁에서도 유리해집니다. 도로에서 폭주 라이더들 때문에 덜컥덜컥 놀라는 운전자 말고는 모두가 그들의 광속 주행을 원합니다.

라이더 교육, 문화 개선, 배달 앱 운영 시스템 변화 등의 대책이 수년째 거론됩니다. 별 소용이 없었습니다. 진짜 ‘솔루션’이 나올 때가 됐습니다. 배달 앱에 음식을 주문하면 라이더 위치가 스마트폰에 표시됩니다. 출발부터 도착까지 위치 추적이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배달 앱 측이 이를 활용하면 최소한 속도 통제는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배달 앱 운영사에 강한 의지가 있다면 주행 기록 분석 시스템을 갖춰 위험한 라이더들에게 불이익을 줄 수도 있어 보입니다. 이 나라가 IT 강국 아닙니까? 배달 속도가 줄어 라이더의 수입이 감소하는 게 문제라면 배달료를 올리는 방법도 있습니다.

진짜 해결책을 찾고, 실행할 때가 됐습니다. 사람이 계속 죽고 다칩니다. 모두가 문제라는 것을 알면서도 싸고 빠른 배달이 주는 잇점 때문에 방관자가 되는 야만을 멈출 때가 됐습니다.
라이더를 위험으로 모는 배달 사업 구조를 진단한 기사를 보시죠.

‘비 오면 4배’ 콜비의 유혹…1주새 배달원 3명 너무 빨리 갔다
무수히 많은 배달 오토바이가 눈앞에 오갔지만, 8일 오후 1시부터 2시까지 서울 홍대입구역 인근에서 배달 라이더(배달원)들과 짧은 인터뷰를 하기가 쉽지 않았다. 배달 장소에 도착한 라이더는 오토바이의 시동을 끄지 않은 채 음식을 배달했다. 가까이 다가가려고 하면 바로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한 음식점에서 배달 음식을 받아 나오는 라이더에게 인터뷰 요청했더니 “지금 급하다. 콜을 받으면 일단 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들의 업무 일상엔 단 1분의 여유도 없어 보였다.

라이더들은 ‘콜의 홍수’에 빠져 있었다. 콜은 고객이 배달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음식을 주문하면 업장에서 라이더에게 음식 배달을 요청하는 알림을 말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배달이 급증하면서 배달 콜은 시민의 생활을 유지하는 인프라의 일부로 자리를 잡았다.

일주일 동안 세 명 사망…비 오면 콜비 4배
그러나, 배달 인프라가 촘촘해질수록 라이더들의 위험은 커지고 있다. 최근 일주일 동안 세 건의 사망 사고가 그들이 처한 상황을 대변해준다. 지난달 26일 서울 선릉역 사거리에서 한 라이더가 신호 대기 중이던 23톤 화물차 앞에 끼어들었다. 이를 인지하지 못한 화물차 운전자는 신호가 바뀌자 출발했고, 화물차의 시야각에 보이지 않던 오토바이 라이더가 화물차에 깔려 숨졌다. 지난달 31일과 지난 2일 서울 금천구에서도 대형 차량에 배달 오토바이가 충돌해 라이더가 사망하는 사고가 두 건 있었다. 비 때문에 길이 미끄러웠던 것도 사고 위험을 키웠을 가능성도 있다.

홍대 근처 골목길에서 만난 4년 차 라이더 문성환(34)씨는 “어제도 비가 왔는데 콜비가 100미터당 1500원까지 올라갔다”며 “원래는 1㎞에 4000원(100m당 400원)이다”고 말했다. 기상 할증 등 상황이 되면 콜비가 약 4배까지 뛰어 라이더들은 무리하게 된다는 것이다. 또 다른 골목에서 만난 라이더는 최근의 사고 소식에 걱정이 크다고 했다. 그는 “돈도 중요하지만, 안전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한다”며 “요즘 손님들은 배달이 느려도 많이 이해해주시는 편이다”라고 말했다.

코로나19로 인해 배달 건수가 급증하면서 실제로 오토바이 운전자 사망도 증가했다. 교통안전공단에 따르면 이륜차(오토바이) 교통사고에 따른 오토바이 탑승자 사망자 수는 2019년 498명에서 지난해 525명으로 5% 이상 늘었다.

경찰 단속 나섰지만…“보여주기식” 비판도 

이륜차 사고 현황. 한국교통안전공단

이륜차 사고 현황. 한국교통안전공단

배달에 익숙한 시민들도 ‘무법 질주’ 오토바이 라이더에게 따가운 시선을 보내고 있다. 위험한 운행에 대한 비난 여론이 높아지자 경찰이 단속에 나섰다. 경기남부경찰청은 지난 2일 오토바이 집중 단속을 벌여 하루 만에 329건의 위법 사항을 적발했다.

라이더들은 경찰의 단속에 불만이 적지 않다고 했다. 문성환씨는 “다른 건 몰라도 차 간 주행에 대한 단속은 현실성이 없다”고 지적했다. 문씨는 “최근에 보여주기식으로 이 단속을 많이 하는데 오토바이가 차량처럼 한 차선에 일렬로 쭉 서 있으면 오히려 교통이 마비된다”며 “이런 단속을 피하려다가 사고가 나는 경우도 분명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똥 콜’ 못 피하게 하는 AI 배차 시스템
배달 앱의 AI 배차시스템 알고리즘도 라이더를 괴롭히는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국내 배달 앱 기업이 플랫폼노동자 배차 관리 방안으로 도입한 인공지능(AI) 시스템이다. 문성환씨는 “강제 배차라서 쉽게 말해서 돈도 안 되고 거리도 먼 ‘똥 콜’이 잡혀도 거절하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이 알고리즘은 라이더의 ‘수락률’과 ‘배달 평점’을 매긴다.

박정훈 라이더유니온 위원장은 “AI가 배정한 콜을 거절하거나 제시간에 배달하지 못하면 라이더가 불이익을 받는다”고 말했다. 이어 “동네 배달대행 업체의 경우 배달 단가가 낮아 여러 음식을 묶어서 배송하게 되고 15분 이내 픽업해 15분 이내에 배달해야 한다는 시간 압박도 있다”고 덧붙였다.

“플랫폼·소비자·정부가 머리 맞대야”
전문가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배달 라이더의 도로 교통 안전 준수의식을 고취하는 것은 물론 플랫폼 업체ㆍ소비자ㆍ정부 등이 머리를 맞대고 해법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정훈 위원장은 “이런 전반적인 문제를 해결하려면 우선 등록제를 통해서 라이더의 안전 교육, 보험 확인 등을 의무화해야 한다”며 “관련 법도 발의됐다”고 말했다. 일명 ‘라이더보호법’(생활물류서비스산업발전법 일부개정법률안)은 지난달 18일 심상정 정의당 의원을 주축으로 발의됐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빨리빨리’라는 소비자 편의성이 극대화되면서 이런 문제가 생긴 것도 있다”며 “운전자는 도로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소비자는 라이더를 좀 더 이해하는 등 상호 간의 이해를 통해 균형을 맞출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소비자가 배달 앱에서 주문할 때 ‘천천히 오세요’ 문구를 선택하고 라이더는 도로 규칙을 준수해 천천히 배달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는 등의 대안도 거론되지만, 개선 효과가 있을지는 미지수다.

값싼 배달 비용의 문제도 지적된다. 서 교수는 “이 비용으로 이렇게 빨리 배달하는 곳은 한국뿐”이라고 지적했다. 15~30분 안에 배달이 되는 비용이 대략 4000원이면 너무 저렴하다는 것이다. 그는 “소비자들의 기대 수준이 너무 높아져 조금은 조정할 필요가 있다. ‘30분 안에 오면 6000원, 1시간 이내는 8000원’ 등의 배달료 차별화도 필요해 보인다”고 덧붙였다.

정희윤 기자 chung.hee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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