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 고령화

"곳간 비어"→"재정 탄탄" 홍남기의 말, 뭐가 진심일까?

중앙일보

입력 2021.09.09 09:00

“의원님은 (곳간에 곡식을) 쌓아두고 있다고 하는데, (사실은) 비어가고 있습니다”
지난 6일 국회 대정부 질의에서 나온 홍남기 경제부총리의 깜짝 발언에 재정 건전성 문제가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홍 부총리는 다음날인 7일 국회에서 “재정은 선진국에 비해 탄탄하지만, 정부로서는 건전성 문제도 굉장히 고민하면서 운용하고 있다”며 발언을 수정했지만, 여진은 남았다. 전문가는 절대적 수치에서 당장 국가 채무가 많다고는 볼 수 없지만, 증가 속도가 커지고 있어 지금부터라도 관리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선진국보다 채무비율 낮아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질의에 답하고 있다. 중앙포토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질의에 답하고 있다. 중앙포토

기획재정부와 일부 정치인 및 전문가가 아직 한국의 재정 여력이 좋다고 하는 가장 큰 이유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이 다른 선진국에 비해 낮아서다. 실제 내년 예산안 기준 한국 국가채무비율은 50.2%로 지난해 미국(131.2%)·일본(266.2%)·스페인(123.0%)·이탈리아(161.8%) 등 다른 국가에 비해 한참 못미친다.

빚의 내용을 보면 재정 여력이 더 탄탄하다는 얘기가 나온다. 내년 한국 전체국가채무 중 금융성 채무(382조3000억원)는 전체 35.8%에 달한다. 금융성 채무는 달러 등 자산 매입을 위해 조달한 채무로 대응 자산이 있기 때문에 언제든 갚을 수 있다. 정부가 재정적자를 막기 위해 빌린 적자성 채무와는 성격이 다르다는 얘기다. 한국은 수출 비중 커 다른 나라보다 금융성 채무가 많은 편이다. 내년 예산 기준 금융성 채무를 제외한 적자성 채무만 따졌을 경우 국가채무비율은 32.6%로 떨어진다.

“증가 속도가 더 문제”

문재인 정부 들어 급증한 국가채무.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문재인 정부 들어 급증한 국가채무.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부채 비율이 다른 나라보다 절대적 수준에서 아직 낮은 편이라는 점에는 대부분 전문가가 동의한다. 또 부채 성격이나 내용 측면에서도 아직 좋은 편이라는 분석도 많다. 하지만 우려스러운 점은 부채 증가 속도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2017년 36%였던 국가채무비율은 내년 50.2%로 약 30%까지 뛰었다. 2011년 30%를 넘은 국가채무비율이 40%를 넘어 50%까지 가는 데 불과 4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적자성 채무만 놓고 보면 증가속도는 더 가파르다. 내년 기준 적자성 채무는 686조원으로 최근 5년 사이에 1.8배 늘었다.

적자성 국가채무 전망.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적자성 국가채무 전망.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채무 증가 속도를 우려하는 이유는 빚은 한 번 늘기 시작하면 줄이기 어려워서다. 실제 국회예산정책처 자료에 따르면 올해 전체예산에서 의무지출 비중은 48.1%로 절반에 육박한다. 특히 이 중에서 지방이전재원을 제외한 실질적인 복지 분야 법정지출은 전년 대비 9.9% 증가해 총지출 증가율 8.5%를 상회했다.

세수 수입에 따라 지출 규모도 달라지는 지방이전재원이 코로나19 회복 이후 늘어난다면 의무지출 비중이 전체 예산의 절반을 넘어갈 가능성이 크다. 의무지출은 경직성이 높아 한 번 늘리면 다시 줄이기 어렵다. 경기가 크게 살아나 세수가 급격히 늘지 않는 이상, 채무비율을 다시 낮추기 위해선 결국 뼈를 깎는 지출 감소를 해야 한다는 얘기다.

非기축국·고령화 “부채 낮춰야”

한국이 처한 현실을 고려하면 현재 국가채무비율도 결코 낮은 수준이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우선 한국은 비(非)기축국으로서 금리 상승 등에 기축국보다 민감할 수밖에 없고, 조달비용도 더 많이 든다. 여기에 채무 비중이 늘수록 국제 신용등급에도 문제가 발생할 수 있어, 미국·일본 같은 기축국보다 채무 비율을 낮게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세계 최고 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저출산·고령화도 문제다. 고령화 진행으로 복지예산 지출은 늘고 저출산으로 세수를 창출해야 할 생산가능인구가 감소하면 국가채무비율은 자연 증가할 수밖에 없다. 일찌감치 고령화가 진행된 선진국과 단순 비교가 힘들다는 얘기다. 여기에 미래에 이룰 통일 비용까지 고려하면 미래 세대의 부담은 더욱 커진다.

실제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최근 5년간(2014~2019년) 국가채무 증가 속도(연평균 6.3%)가 앞으로 유지될 경우 1인당(생산가능인구) 부담해야 할 국가채무는 2038년 1억502만원, 2047년 2억1046만원, 2052년 3억705만원에 이를 것으로 나타났다. 세계 3대 신용평가사인 피치도 지난 7월 한국의 고령화와 국가채무 증가를 이유로 잠재성장률을 낮췄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그리스같이 재정위기가 왔던 국가들도 원래부터 국가채무비율이 높았던 것이 아니다”면서 “채무가 한 번 늘기 시작하면 그 속도가 빨라지는 데다, 한국은 고령화 등 앞으로의 상황도 좋지 않기 때문에 증가 속도를 경계하는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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