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이훈범의 퍼스펙티브

반목은 지도자들이, 전쟁은 젊은이들의 몫

중앙일보

입력 2021.09.09 00:41

업데이트 2021.09.09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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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이훈범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무엇을 위한 역사인가

이훈범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훈범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얼마 전 때아닌 점령군-해방군 논쟁이 있었다. “해방 후 이 땅에 들어온 미군은 점령군이고, 소련군은 해방군이었다”는 느닷없는 주장이 나온 탓이었다. 늘 논란의 중심에 있는 김원웅씨지만 광복회장 자격으로 고교생들에게 주는 메시지였기에 한바탕 소동이 불가피했다.

영상에서 그는 자기소개를 마치자마자 본론을 꺼내 든다.

“소련군은 북한에 들어와서 곳곳에 포고문을 붙였습니다. ‘조선인이 독립과 자유를 되찾은 것을 축하드립니다.’ ‘조선인의 운명은 조선인들이 하기에 달렸습니다.’ ‘조선 해방 만세.’”

마치 동화 구연을 하는 것처럼, 소련군 포고문을 속삭이듯 다정하게 소개한 그는 미군 포고문에 대해서는 고압적인 말투로 옮긴다.

느닷없는 점령군 - 해방군 논쟁
아무 실익 없는 국력 낭비 불러
우리도 아프간처럼 안 되려면
과거 이용하는 세력 경계해야

“그런데 비슷한 시기에 남한을 점령한 맥아더 장군은 포고문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해방군이 아니라 점령군이다.’ ‘앞으로 조선인들은 내 말을 잘 들어야 된다.’ ‘안 들을 경우 군법회의에 회부해 처벌하겠다.’”

이미 분명한 선악 구분이 끝난 상태다. 포고문 내용이 아니라도 소련군은 ‘들어오고’ 미군은 ‘점령했으니’ 더 말할 것도 없다.

이를 두고 정치권에서 논란이 벌어지자 신복룡 교수가 나섰다. 1987년 미국과 소련의 포고령을 국내 최초로 비교 분석한 글을 발표했던 그는, 자신의 논문에서도 “단지 수사(修辭)의 문제일 뿐 미-소 양쪽의 의지를 반영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했었는데 그것이 무시되며 논란이 돼 실익 없는 국력 낭비만 하고 있다”고 개탄한다.

이훈범의 퍼스펙티브

이훈범의 퍼스펙티브

신 교수는 “당시 한반도에 있는 일본인 75만 명 중 35만 명이 무장하고 있었으며 미국과 소련은 그들의 무장해제에만 주목했지 한반도 해방은 관심사에서 비켜나 있었다”고 말한다. 포고문 내용은 “수많은 위성국 통치 경험이 있는 소련군과 그렇지 못한 미군 장교의 정치적 기술 차이에서 온 것”일 뿐 결국 양쪽 모두 점령군 성격이라는 얘기다.(중앙일보 2021년 7월 9일자 참조)

미국 비밀문서로 보는 한국 현대사 1945~1950

미국 비밀문서로 보는 한국 현대사 1945~1950

이런 의미 없는 논란을 종식할 만한 (종식될 가능성이 크진 않지만) 문서가 있다. 워싱턴 특파원을 지낸 김택곤 전 광주 MBC 사장의 최신 저서 『미국 비밀문서로 보는 한국 현대사 1945~1950』에 소개된 미국 비밀문서들이다. 미 군정의 1946년 2월 13일자 G-2 정기보고에는 이춘열이라는 공산주의자가 북한에서 돌아온 직후 조선공산당 당수인 박헌영에게 보낸 서신을 미군정 정보처가 검열한 내용이 있다.

“소련군이 북한을 점령하기 시작했을 때만 해도 인민들의 마음은 공산주의 선전에 감화돼 우리에게 우호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정책이 탄압적으로 바뀌면서 상당수의 영향력 있는 인사들이 남쪽으로 도피했으며 민심도 우리들과 멀어졌습니다.”

이춘열은 이어 “개선책을 속히 마련하지 않으면 북한 인민들이 공산주의 정책에 반동적인 태도를 보여 심각한 위협에 빠질 것”이라고 경고하고, “즉시 이를 바로잡도록 일깨우는 핵심인물을 북한에 파견할 것”을 호소하고 있다.

당시 미군정은 남한에서 나도는 소련군의 잔학 행위 소문에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였다. 당시 주한미군 정보처장 폴 니스트 대령은 “북에서 온 난민들을 수백 번 심문했지만 이들이 심하게 과장하는 경향이 있어 신중해야 한다”고 존 하지 사령관에게 보고하고 있다. 이런 정황으로 볼 때 미군 측 보고서이긴 하지만 이춘열의 서신은 당시 북한 상황을 객관적으로 평가된 것으로 판단할 수 있겠다.

광복회장이라는 사람은 이어 미 군정이 “남한을 식민지로 써야 한다”는 비밀 보고서를 올렸다고 주장했다. 자신이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장으로 있을 때 대외비 문서를 접할 기회가 많이 있었다면서 보고서의 핵심은 “남한을 겉으로는 독립시키고 실제로는 일본에 이어서 식민지로 써야 한다”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김택곤

김택곤

그가 어떤 보고서를 보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이것 역시 당시 미 군정이 작성한 비밀문서들을 종합할 때 들어맞는 얘기가 아니다. 우선 미군이 남한 땅을 ‘점령’한 지 16일이 지난 1945년 9월 24일 하지 사령관이 더글러스 맥아더 미군 태평양사령부 총사령관에게 보낸 극비 전문을 보자.

“현격히 다른 두 개의 정책을 펴는 두 개의 점령지역으로 갈라놓는 현재의 한국 분단은 앞으로 한국을 하나의 통일국가로 만들 때 넘을 수 없는 장애물이 될 것입니다. (…) 만일 한국을 완전히 통제해 일본처럼 대우하겠다는 제3의 국가들이 있다면, 그 같은 대우를 받지 않겠다는 한국인들의 끝없는 증오를 받게 될 것입니다. (…) 서로 반대되는 사상을 가진 두 편이 서로 나뉘어 분단을 계속한다면 이 나라를 죽음으로 몰아가는 것입니다.”

하지 장군은 이 전문에서 “한반도 분단은 미국과 소련 양국 모두에게 득이 안되며, 미국 소련 양국의 합의에 따른 잠정 정부 수립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남한을 식민지로 써야 한다는 뉘앙스는 결코 읽히지 않는다.

물론 이는 하지 장군의 의견이고, 그의 상관인 맥아더 사령관이 본국에 ‘식민지’ 운운하는 비밀 보고서를 보냈을 수도 있다. 설령 그렇다고 해도 그것 역시 미 본토에서 채택되지 않은 맥아더의 개인 의견에 불과한 것이다. 오히려 미국은 한국이 전략적으로 중요하지 않다고 판단하고 발을 뺄 궁리만 하고 있었다.

1947년 7월 주한미군 군정장관인 아처러치 소장은 워싱턴에서 조지 마셜 국무장관을 비롯한 미 행정부 고위 관계자들과 만난 뒤 하지 장군에게 보고했다. “한국 통치 업무를 전쟁부에서 국무부로 이관하는 문제를 논의했는데, 정작 마셜 장관은 일반적인 검토 수준에 그칠 뿐 이 문제를 깊이 생각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는 거였다.

“전쟁부 핵심 고위층 대부분이 그렇듯 노체 전쟁부 차관보 역시 한국에는 아무런 관심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노체 장군은 미국은 단 두 군데, 즉 독일과 일본에 대해서만 관심을 쏟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 전쟁부 전체의 입장은 ‘한국에서 빠져나오자(Let’s get out of Korea)’입니다.”

미국은 그 유명한 마셜 플랜 외엔 관심이 없었고, 그 안에 한국은 존재하지 않았다. 이후의 역사는 우리가 잘 안다. 미국의 공산주의 팽창 우려에 편승해 1948년 남한만의 단독정부가 수립됐고, 미 CIA의 강력한 “남침” 경고에도 불구, 1949년 주한미군이 철수했으며, 소련과 중국의 지원을 받은 북한군의 남침으로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했다.

광복회장의 말을 예로 들었지만, 귀담아들을 만한 얘기가 아닌 만큼 이 글의 주제가 아니다. 내가 하고 싶은 얘기를 한마디로 말하면 국제사회에서 자비란 없다는 것이다. 상대적인 차이는 있을지언정 절대적인 보호는 꿈도 꾸지 말아야 한다. 모든 국가의 모든 결정은 자국의 이익을 위한 것이다. 당장의 희생이 따르더라도 그것은 궁극적인 이익을 위해 불가피하다고 판단한 결과일 뿐이다.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서 20년 동안 전쟁을 한 것도, 야반도주하듯 철군을 한 것도 다 그래서다.

국제사회에서는 힘이 논리다. 해방이냐 점령이냐를 우리가 판단한들 자빠졌냐 넘어졌냐를 구별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중요한 건 해방이나 점령을 당하지 않도록 힘을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남한이 결코 자립하지 못하고 짐만 될 것”이라던 미군정의 예상을 보기 좋게 뒤엎고 대한민국은 선진국 반열에 당당히 올라섰다. 하지만 현실이 미래를 보장하지 못한다.

종교를 이데올로기로 바꾸면 아프가니스탄의 슬픈 현실에 우리의 미래를 투영해 볼 수 있다.

우리 민족도 외침을 많이 받았지만 우리끼리 많이도 싸우고 많이도 서로 죽였다. 해방 이후의 역사를 보면 더욱 그렇다. 그런 갈등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우리의 미래가 아프가니스탄의 현실처럼 되지 않으려면 ‘어그리 투 디스어그리(agree to disagree)’해야 한다. 서로 생각이 다른 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말이다. 특히 과거의 해석 차이로 미래를 망치지 말아야 한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과거를 이용하는 세력을 경계해야 한다.

김 전 사장은 책에서 결론처럼 말한다. “반목과 대립은 민족 지도자들과 그들을 따르던 어른들이 주도했지만 전쟁은 젊은이들의 몫이었다.”

이 글의 결론과 같다. 이 땅의 반목과 갈등으로 인한 피해는 77세 광복회장이 아니라 MZ세대들의 몫이란 말이다.

미국 극비문서로 벗긴 한국 현대사의 베일
한국 현대사에서 1945~1950년의 5년 만큼 비밀스러운 시간은 없을 터다. 우리 민족의 희망과 비극이 미국과 소련·중국·일본 등 4강의 이해가 얽힌 교차로에서 충돌했지만 신호는 어땠는지, 누구의 과실이 컸는지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더 큰 문제는 7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이 나라가 “역사적 진실을 밝히는 자세로 그 시대를 마주하기 보다 정치적 논란의 도구로 삼거나 아전인수식으로 해석하며 분열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저자는 MBC 워싱턴 특파원으로 근무하던 시절부터 오늘날까지 20년 가까운 세월 동안 틈틈히 워싱턴에 있는 미국 국립문서보관소를 방문했다. 극비로 보관돼온 전문, 보고서들을 찾아 읽으며 한반도 역사의 물굽이가 어떻게 틀어졌는지 살폈다. “당시의 정치적·사회적 소용돌이 가운데 새롭게 살피고 해석을 더해야 할 실마리”를 찾았다.

그렇게 나온 책이 『미국 비밀문서로 읽는 한국 현대사 1945-1950』다. 여기에는 당시 미군정과 하지 사령관의 시각과 판단, 백악관과 마샬 국무장관의 관점, 좌우 합작의 실패 과정, 남한 정치 지도자들의 권력 투쟁 같은 현대사의 주요한 대목뿐 아니라 일본군 위안부로 버마에 끌려간 조선 처녀 김연자, 한국전쟁에 참전한 한국계 미국인 에녹 리 등 민초들의 애절한 사연까지 들어있다.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주관적인 해석은 최대한 자제하는 대신, 독자들이 극비 문서들을 읽고 현대사의 한 장면을 스스로 판단할 수 있도록 길잡이가 돼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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