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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촌인이 마을잔치 열면 100만원 주는 부여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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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최경호 기자 중앙일보 광주총국장
최경호 내셔널팀장

최경호 내셔널팀장

“앞집 박씨네 집 좀 봐요. 마당이 온통 잡초투성이네.”

최근 전남의 한 농촌마을에서 70대 아내가 남편에게 건넨 푸념이다. 올해 초 서울에서 귀촌한 부부가 마당에 난 풀을 그냥 둔다는 얘기였다. 도시에선 상상도 못할 참견이지만 농촌 사람들은 잡초를 그만큼 언짢게 여긴다. “집에 난 풀조차 뽑지 않을 정도면 얼마나 게으르냐?”는 사고다. 마을사람과 달리 종일 논밭 일을 하지 않는 데 대한 일종의 텃세이기도 하다.

주민들의 속내를 보면 사정이 좀 다르다. 자신들이 평생 살아온 마을에 들어와 전혀 소통을 않는 귀농·귀촌자가 많아서다. 2~3개월이 넘도록 인사조차 없이 지내다 이웃 간 불화로 번지는 경우도 적잖다. 결국 잡초에 대한 타박에는 소통을 않는 도시사람에 대한 서운함이 담겼다.

충남 부여군은 농촌마을로 이주해 잔치를 하면 비용을 대준다. 귀농·귀촌인과 마을 주민의 화합을 꾀하는 차원이다. 귀촌인이 들어온 마을 중 잔치 신청을 받아 100만원을 주는데 주민들 반응이 괜찮다. 마을잔치를 열기 전보다 귀농인과 주민들 간 이해의 폭이 확실히 좁혀졌다는 평가다.

지난 4월 ‘귀농귀촌 박람회’ 중 충남 부여군 부스 모습. [연합뉴스]

지난 4월 ‘귀농귀촌 박람회’ 중 충남 부여군 부스 모습. [연합뉴스]

식지 않는 귀농·귀촌 열풍에 지원책도 진화하고 있다. 이사비 지원이나 세금할인 혜택을 넘어선 맞춤형 유인책이 속속 나온다. ‘농촌에서 먼저 살아보기’처럼 실속형 대책도 느는 추세다. 큰맘 먹고 귀농·귀촌을 했다가 뜻밖의 상황에 발을 돌리는 불상사를 막기 위해서다.

희망자들은 농촌에 6개월 정도를 머물며 이른바 ‘맛보기 체험’을 한다. 귀농을 염두에 둔 곳에 먼저 가 주민들에게 작물 키우는 법을 배우거나 영농실습을 한다. 덕분에 주민과의 불화나 막막한 생계 걱정에 귀농을 접었던 사람들이 생각을 바꾸는 경우도 늘고 있다고 한다.

목돈이 드는 집이나 선박을 빌려주는 유인책도 쏟아진다. 경북 문경시는 가구당 1억원의 주택을 지은 뒤 이를 임대하는 사업을 도입한다. 귀농의 가장 큰 걸림돌이 집이라는 점을 겨냥해 주택 100채를 짓는다.

전남 신안군은 2019년부터 어선 8척을 귀어를 꿈꾸는 청년들에게 빌려주고 있다. 작은 중고 어선도 고가의 어업권이 붙으면 7억~10억원을 줘야 하는데, 이 제도로 청년 어부들은 매월 30만~50만원을 내고 어촌에서 살 수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귀농·귀촌가구는 35만8591가구로 사상 최대치를 찍었다. 귀촌인(34만5205가구)이 1년새 8.7% 늘어난 가운데 직접 농사를 짓는 귀농인(1만2489가구)도 9.3% 증가했다.

코로나19 이후 귀농·귀촌 발길은 늘었지만 “막막하고 불안하다”는 호소는 여전하다. 화려한 구호성 대책보다 귀촌자와 주민들의 속부터 편안케할 묘책이 많이 나와야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