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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영변 핵시설 재가동도 문제 없다는 외교부 차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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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최종건 외교부 1차관이 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최종건 외교부 1차관이 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명백한 비핵화 역행 행위에도  

항의는커녕 북한 감싸기 급급

최종건 외교부 1차관이 지난 7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북한의 영변 핵시설 재가동이 남북 합의 위반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북한에 유화적인 노선으로 일관해 온 학자의 주장이라면 몰라도 외교부 차관의 국회 공식 답변이 그렇다고 하니 놀라울 따름이다. 영변 핵시설 재가동은 핵물질 생산, 나아가 핵무기 추가 제조와 직결된다. 엄중 항의와 함께 당장 가동을 중단하라고 촉구해도 모자랄 지경인데 정부 고위 당국자가 북한 감싸기에 여념이 없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도 “청와대도 (외교부와) 일단 맥을 같이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일단’ ‘보인다’ 등 ‘영혼 없는’ 단어로 빠져나갈 여지를 두긴 했지만, 그 역시 사안의 심각성을 모르는 것은 마찬가지다.

최 차관의 논리는 2018년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 합의문 조항에 영변 핵시설이 특정돼 있지 않아 명백한 합의 위반으로 보기 힘들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너무나 소극적이고 협소한 자구 해석이며 북한을 감싸려는 의도가 빤히 드러나는 해석이다. 문구를 따져봐도 최 차관의 해석은 옳지 않다. 4·27 판문점 선언에는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핵 없는 한반도를 실현한다’고 규정돼 있다. 영변 핵시설 재가동은 명백하게 비핵화에 역행하는 행동인데 어떻게 합의 위반이 아니라 할 수 있나. 설령 비핵화 협상이 결렬된 상태란 점을 감안하더라도 현상 유지라면 모를까 비핵화에 역행하는 일을 감싸면 안 된다. 판문점 선언은 또 ‘이미 채택된 남북 선언들과 모든 합의들을 철저히 이행한다’고 규정했다. 이미 채택된 선언에는 1991년의 남북 비핵화 공동선언이 포함돼 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연례 이사회 보고서에 따르면 영변 원자로의 냉각수 방출 정황이 포착된 것은 7월 초의 일이다. 그에 앞서 폐연료봉 재처리 시설이 2월부터 7월까지 가동됐다고 한다. 한·미 간의 정보 협력이나 상업용 위성 정보의 구독 등을 통해 우리 정부가 이런 사실을 몰랐을 리 없다. 그런데 정부가 핵시설 재가동에 대해 항의했다는 소식은 전혀 없다.

대신 정부가 한 일은 7월 27일 남북 통신연락선 복원이 남북 정상 간 친서 교환의 성과물이라고 대대적으로 홍보한 것이다. 뒤이어 여당 의원 70여 명이 북한의 요구를 덥석 물어 한·미 연합훈련을 연기하자고 연판장을 돌렸다. 실제로 정부는 8월 연합훈련의 규모를 대폭 축소했다. 청와대·정부·여당이 한목소리로 남북 관계에 대한 환상을 부풀리고 안보 태세에 손상을 입히는 행위를 하는 사이에 북한은 유유히 핵물질 재고를 계속 늘렸다. 그런데도 정부 고위 당국자는 북한의 잘못된 행동에 대한 항의는커녕 협소한 논리로 합의 위반이 아니라고 두둔했다. 아집에 가까운 북한 감싸기이자 눈치보기다. 이런 저자세로 어떻게 북한의 비핵화를 이끌어낸다는 것인지 알 길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