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변 재가동 눈감은 정부, 3년 전엔 “북 폐기 제안 큰걸음”

중앙일보

입력 2021.09.09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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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북한이 이번에 동창리 미사일 엔진 시험장과 발사대 폐기와 함께 영변 핵시설의 영구적인 폐기까지 언급한 것은 상당히 중요한 큰 걸음을 내디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9·19 평양 공동선언에 합의하고 돌아온 직후인 2018년 9월 20일 ‘방북 성과 대국민 보고’에서 한 발언이다. 평양 공동선언에 ‘북측은 미국이 상응조치를 취하면 영변 핵시설의 영구적 폐기와 같은 추가적인 조치를 계속 취해나갈 용의가 있음을 표명했다’는 내용이 포함된 데 대한 의미 부여였다.

영변 핵단지.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영변 핵단지.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하지만 그로부터 약 3년 뒤 북한의 영변 핵시설 재가동 정황이 포착된 데 대한 정부 입장은 “남북 합의 위반은 아니다”였다.

최종건 외교부 1차관은 지난 7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서 북한의 영변 핵시설 가동 정황을 담은 국제원자력기구(IAEA) 보고서와 관련, ‘남북 정상 간 합의에 어긋나느냐’는 질문에 “그것은 아니다”고 답했다. 같은 날 청와대 관계자도 “최 차관이 정부를 대표해 말한 것”이라며 정부의 공식 입장이라고 확인했다.

그러나 북한이 영변 핵시설 폐기를 제안했을 때는 이를 남북 정상 간 합의의 큰 성과로 강조한 정부가 영변 핵시설 재가동은 합의 위반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실제 공동선언 1주년을 맞은 2019년 9월 19일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평양 선언의 성과는 북측으로부터 영변 핵시설 폐기 제안을 확인한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북한의 영변 핵시설 폐기는 남북 정상이 2018년 4·27 판문점 선언에서 합의한 ‘완전한 비핵화’와도 직결되는 문제다.

문 대통령 영변 핵시설 관련 발언

문 대통령 영변 핵시설 관련 발언

문 대통령은 2019년 6월 세계 6대 뉴스통신사 합동 서면 인터뷰에서 “영변은 북한 핵시설의 근간으로, 완전히 폐기된다면 북한 비핵화는 되돌릴 수 없는 단계로 접어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문 대통령은 “북한의 비핵화가 되돌릴수 없는 단계(영변 핵시설 폐기)에 왔다는 판단이 선다면 유엔 제재를 완화해야 한다”(2018년 10월 한·프랑스 정상회담)는 입장도 밝혔다.

이 같은 문 대통령의 발언을 종합하면 영변 핵시설은 김 위원장의 ‘완전한 비핵화’ 의지의 핵심이다. 그런데 현재 정부는 ‘북한이 영변을 재가동하더라도 완전한 비핵화를 약속한 합의에 위반하지는 않는다’고 주장하는 셈이다.

차두현 아산정책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북·미 비핵화 협상에서 영변은 중요한 상징성이 있기 때문에 이를 재가동하는 것은 2018년 이전으로 돌아간다는 상징적 제스처로 봐야 한다”며 “그런데도 이게 합의 위반이 아니라고 하는 것은 ‘북한이 이런 행동을 할 수밖에 없도록 미국이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는 이야기를 하는 게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신범철 경제사회연구원 외교안보센터장은 “영변을 돌리지 않겠다는 명확한 문구가 합의문에 없다고 합의 위반이 아니라는 논리라면 북한의 핵무기 실전 배치를 명시적으로 금지하는 문구도 없으니 역시 합의 위반이 아니라고 봐야 하느냐”고 되물었다.

한편 미 국무부는 7일(현지시간) 최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대북제재 완화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는 일부 보도에 대한 미국의소리(VOA)의 서면 질의에 “대북 유엔 제재는 유지되고 있다”며 “우리는 유엔 및 북한 주변국들과 외교를 통해 대북제재를 지속해 이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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