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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오병상의 코멘터리

무한도전 김태호..MBC 오래 다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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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병상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김태호 PD [사진 MBC]

김태호 PD [사진 MBC]

지상파가 창작 걸림돌 되는 세상

더 다양한 제작과 유통위한 독립

1. 스타PD 김태호가 마침내 MBC를 떠나기로 했습니다. ‘무한도전’13년에 이어 ‘놀면 뭐하니’로 예능계를 휘잡아온 김태호가 6일 인스타그램에 글을 올렸습니다. ‘무모한 불나방으로 끝날지언정, 급변하는 콘텐츠 시장 흐름에 몸을 던져보기로 마음먹었다’고. 연말까지는 MBC에서 일하고 떠난답니다. ‘미래에 대해 확실히 정해진 건 없다’고 하니..아마 진로가 확정되진 않았나 봅니다.

2. 김태호의 독립선언은 생각보다 오래 걸렸습니다.
김태호가 지상파를 떠날 것이란 예측은 오래전부터 나왔습니다. 김태호와 자주 비교되는 KBS 스타 PD 나영석은 2012년 지상파를 떠났습니다. tvN으로 옮겨 ‘삼시세끼’‘윤식당’등 참신한 히트작을 연속으로 내놓으면서 연봉 40억원을 받아 부러움을 샀습니다.

3. 사실 김태호가 독립을 생각한 건 오래된 것으로 보입니다.
스스로 ‘2008년부터 그린 큰 그림이 무한도전 스튜디오’라고 말했습니다. 무한도전이 막 떠오르던 13년전 벌써 ‘스튜디오’를 고민했답니다. ‘스튜디오’란 제작업체(프로덕션)를 말합니다. 그러니까 무한도전 출연진과 브랜드를 활용해 여러가지 스핀오프(spin-offㆍ파생)프로그램을 만드는 MBC내 프로덕션을 만들고 싶었다는 얘기입니다.

4. 김태호가 이런 생각을 한 이유는..거대한 지상파가..과거와 달리..창작에 구속으로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첫째, 지상파에 속해 있으면 제작비에 제약이 많습니다. 이를 벌충하는 게 PPL(간접광고)인데..지상파에선 맘대로 못합니다.

둘째, 지상파의 시청층이 나이가 많아 젊은 층이 보지 않습니다. 시청률도 떨어져 많은 사람에게 보여주지 못합니다.

셋째, 지상파는 각종 심의와 규제를 많이 받습니다. 회사 자체도 관료적이고 보수적이라 내부 검열도 만만찮습니다.

5. 김태호가 이런 구속을 나름 돌파해보려 시도한 것이 곧 선보일 새 예능‘털보와 먹보’입니다.
‘털보와 먹보’는 털보 노홍철(개그맨)과 먹보 비(가수)가 주인공..전혀 다른 두 사람이 바이크를 타고 전국 맛집을 돌아다니는 로드다큐 형식입니다. 일종의 스핀오프입니다. 노홍철은 ‘무한도전’, 비는 ‘놀면 뭐하니’출연진이니까요..

6. 그런데 ‘털보와 먹보’는 MBC에서 볼 수 없습니다.
넷플릭스에서 방송합니다. 제작비를 넷플릭스가 냈습니다. 무려 60억원.
그러니까 MBC는 방송사가 아니라 넷플릭스에 프로그램을 공급하는 ‘스튜디오’ 즉 제작사가 된 셈입니다. 김태호가 꿈꾸었던 바로 그 ‘큰 그림’입니다. 제작비 넉넉하고, PPL 맘껏 하고, 넷플릭스를 통해 국내외 젊은 시청자들에게 확실하게 보여줄 수 있게 될 겁니다.

7. 이런 시도에도 불구하고 김태호는 결국 MBC를 떠나기로 결심했습니다. ‘콘텐츠 시장의 흐름’ 즉 ‘시대의 흐름’을 거스르긴 힘드니까요.

김태호는 2020년 인터뷰에서 ‘지상파의 영광을 되돌릴 수 없다. 이미 시청자들의 콘텐츠 소비방식이 변했다’고 진단했습니다. 지상파 예능만 할 수 없다..는 얘기입니다.

8. 김태호가 PD로 살아온 지난 20년간 미디어 환경변화는 상전벽해입니다.
지상파로 예능을 보는 사람, 특히 젊은 시청자들은 거의 사라졌습니다. 젊은층은..핸드폰을 이용해/자신이 필요한 시간에/보고싶은 프로그램을/편리한 플랫폼을 이용해..봅니다. 그래서 김태호는 MBC 대신 넷플릭스나 카카오TV에 적합한 예능을 만들려고 하는 겁니다. 물론 선택은 본인 스스로 할 수 있는 방식으로..

9. 김태호가 더 나은 작품을 선보이길 기대해 봅니다.
물론 시청자들은 돈을 내야할 겁니다. 지금처럼 MBC를 통해 공짜로 볼 수 없을테니까요. 성의도 더 보여야 합니다. 틀면 나오는 채널이 아니라 찾아다녀야 하는 채널이 될테니까요..이미 세상이 그렇게 바뀌었습니다.
〈칼럼니스트〉
2021.09.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