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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에 선 '9·11 테러범'…희생자 가족 눈 앞에서 싱글벙글

중앙일보

입력

붉은빛이 감도는 긴 턱수염. 파슈툰 스타일의 모자. 흰색 상의 위에 두른 남색 스카프.
2001년 9월 11일, 2976명의 목숨을 앗아간 테러범 칼리드 셰이크 모하메드의 현재 모습이다. 모하메드가 7일(현지시간) 쿠바 관타나모 미국 해군기지 ‘캠프 저스티스’ 법정에서 열린 공판 전 심리에 출석했다. 9·11 테러 20주년을 사흘 앞둔 날이었다.

9·11 테러 주범 칼리드 셰이크 모하메드 자료사진. [AP=연합뉴스]

9·11 테러 주범 칼리드 셰이크 모하메드 자료사진. [AP=연합뉴스]

알카에다의 전 작전 사령관인 모하메드는 9·11 테러를 설계한 혐의로 피고인석에 섰다. 공모자로 지목된 왈리드 빈 아타시, 람지 빈 알시브, 무스타파 알 아우사위, 아마르 알 발루치 등 4명도 출석했다. 모두 9·11 테러를 계획·실행한 혐의를 받는다.

CNN에 따르면 이날 2시간 30분 동안 진행된 심리에서 모하메드는 연신 싱글벙글하였다. 두 번의 휴정 시간에는 의자 등받이에 팔을 걸치고는 옆에 앉은 빈 아타시와 수다도 떨었다. 법정을 떠날 땐 참관석에 앉은 기자들을 향해 여유 있게 손도 흔들었다고 한다. 모하메드의 변호사는 “코로나19로 인한 오랜 격리 끝에 법정에 다시 설 수 있게 된 것에 기뻐한 것”이라고 대변했다.

하지만 9·11 테러 희생자 가족들은 방탄 유리 뒤 참관석에 앉아 테러범이 웃는 모습을 고스란히 지켜봐야 했다.

모하메드 등 피고인 5명은 지난 2002~2003년 체포됐다. 2003년 파키스탄 자택에서 붙잡힌 모하메드는 9·11 테러를 포함해 대니얼 펄 월스트리트저널(WSJ) 기자 참수 사건, 1993년 세계무역센터 테러, 2002년 인도네시아 발리 나이트클럽 폭발사건 등 혐의를 인정했다. 미 중앙정보국(CIA)도 심문 과정에서 증거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죄가 인정되면 사형에 처할 수 있다.

7일(현지시간) 쿠바 관타나모 미국 해군기지 ‘캠프 저스티스’ 법정에서 열린 모하메드의 법정 심리 모습 그림. [AP=연합뉴스]

7일(현지시간) 쿠바 관타나모 미국 해군기지 ‘캠프 저스티스’ 법정에서 열린 모하메드의 법정 심리 모습 그림. [AP=연합뉴스]

하지만 정식 공판이 열리지 않고 있다. 2012년 관타나모 특별군사법정에서 재판이 결정됐지만, 공판 전 심리만 40여 차례 열렸다. 그마저도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연기됐다가 18개월 만에 재개됐다.

전문가들은 버락 오바마 행정부 때 개설된 군사위원회 시스템을 문제로 지목한다. 이 시스템이 모든 문제를 논쟁 대상으로 떠올려 발목을 잡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판사와 변호사도 자주 바뀌었다. 지금까지 9·11사건 관련 심리를 맡은 재판장만 8명이다.

그 사이 피고인들은 CIA가 확보한 증거가 고문에 의한 증거라며 재판에서 활용되면 안 된다는 논리를 펼치고 있다.

이번 공판 전 심리 절차는 이날부터 17일까지, 11월 1일부터 19일까지 예정돼있다. 하지만 이런 상태라면 앞으로 심리 절차에만 10년이 더 걸릴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매들린 모리스 듀크 법대 교수는 “재판이 아예 열리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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