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레반 내무장관은 '현상금 116억'…총리는 UN 제재 대상

중앙일보

입력 2021.09.08 16:55

업데이트 2021.09.08 17:56

7일 탈레반 대변인 자비훌라 무자히드가 새 내각과 구성원에 대해 발표했다. 연합뉴스

7일 탈레반 대변인 자비훌라 무자히드가 새 내각과 구성원에 대해 발표했다. 연합뉴스

강경파 올드보이들의 귀환, 여성 없음, 파슈툰족 일색. 7일(현지시간) 베일을 벗은 ‘탈레반 2.0’ 과도정부의 면면이다. 미국 연방수사국(FBI)의 일급 수배자, 유엔 제재 대상 등 요주의 인물들까지 포함됐다. 9·11 테러 20주년을 나흘 앞두고 공개된 아프가니스탄 내각 명단을 두고 국제사회는 "아프간인과 서방 국가의 뺨을 때린 격"이라고 비판과 우려를 나타냈다.

유엔 제재 대상이 총리, FBI 1급수배자 내무부장관

탈레반 최고 지도자는 예상대로 히바툴라 아쿤드자다(60·추정)다. 그가 권력의 정점에서 국정 전반을 총괄한다. 그는 이날 탈레반 지도부를 대표해 성명을 발표하며 "지난 20년간 투쟁은 두가지 주요 목표로 이뤄졌다. 첫째는 외국의 점령과 침략을 종식하고 완전한 해방을 이루는 것, 둘째는 완전히 독립한 나라에서 이슬람 체제를 완성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두 원칙에 따라 앞으로 아프간 통치와 모든 삶의 문제는 신성한 샤리아법(이슬람경전)에 의해 규제된다"고 선언했다.

탈레반의 최고지도자 히바툴라 아쿤드자다. 7일 새 내각 구성을 내놓으며 성명을 통해 "앞으로 샤리아법을 통해 모든 통치와 삶의 문제를 규제한다"고 발표했다. 연합뉴스

탈레반의 최고지도자 히바툴라 아쿤드자다. 7일 새 내각 구성을 내놓으며 성명을 통해 "앞으로 샤리아법을 통해 모든 통치와 삶의 문제를 규제한다"고 발표했다. 연합뉴스

아쿤드자다는 새 정부의 총리로 물라 모하마드 하산 아쿤드(60대 중반·추정)를 임명했다. 당초 물라 압둘 가니 바라다르(53·추정)가 예상됐지만 그는 2명의 부총리 중 한명이 됐다. 하산은 과거 탈레반 통치기(1996~2001)에 외무부 장관과 부총리를 역임했다. 미국의 아프간 침공 이후 20년 동안은 탈레반 최고 위원회인 레흐바리 슈라를 이끌었다. 유엔(UN) 제재 대상 명단에 오른 인물로, 유엔 보고서는 그를 '(탈레반의 창시자) 오마르의 친밀한 동료이자 정치 고문"으로 묘사했다.

내무부 장관엔 시라주딘 하카니(40대 후반·추정)가 올랐다. 탈레반의 분파인 '하카니 네트워크'를 이끌며 지난 20년간 수많은 폭탄테러와 납치극을 주도했다. 하카니는 FBI가 현상금 1000만 달러(약 116억원)를 내건 일급 수배자다. AP통신은 하카니가 현재도 최소 1명의 미국인 인질을 구금하고 있다고 전했다. 벤 새스 네브래스카주 상원의원은 하카니에 대해 "피에 굶주린 테러리스트이자 무장한 위험인물"이라며 "우리가 방금 떠나온 나라를 그가 다스리게 됐다"고 비판했다.

탈레반 창설자 모하마드 오마르의 아들 물라 모하마드 야쿠브(30대 후반·추정)는 국방부 장관으로 내정됐다. 압둘 하크 와시크 정보국장, 물라 누룰라 누르 국경·부족부 장관 등 미국의 쿠바 관타나모 수용소에 수감됐던 전력이 있는 4명도 고위직에 포함됐다.

여성 인사 0명…UN "경악스러운 인사"

애초 탈레반은 "포괄적 정부 구성"을 약속해 왔지만 내각 구성에 여성 인사는 단 한명도 없다. 아쿤드자다의 성명에도 소외계층 보호에 대한 내용은 있었지만 여성의 권리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이에 대해 프라밀라 패튼 유엔여성기구 총장 대행은 "아프간 여성과 소녀들의 권리를 보호하고 존중한다는 탈레반의 약속과 정면 배치되는 이같은 전개에 실망과 경악을 금할 수 없다"고 말했다. 내각은 또한 과거 집권 당시 가장 논란을 샀던 부처이자 샤리아법의 극단적 해석을 집행하는 '미덕 촉진·악덕 방지부'도 되살렸다. 자비훌라 무자히드 탈레반 대변인은 "이번 임명은 일시적인 형태"라며 과도정부임을 강조했지만, 이 체제를 얼마간 유지할 것인지는 설명하지 않았다.

탈레반, 아프가니스탄 새 내각 공개.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탈레반, 아프가니스탄 새 내각 공개.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AP통신과 뉴욕타임스(NYT),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서구 언론이 "탈레반의 노병들이 권력을 잡았다"고 일제히 보도한 가운데 현지 및 주변국 언론은 이번 내각이 "탈레반 내 정파 간 권력다툼과 타협의 산물"이라고 분석했다. 인도의 NDTV는 "그간 바라다르와 추종자, 하카니 네트워크, 칸다하르 정파, 동부지역 반독립 조직 등이 치열한 권력 투쟁을 벌여왔고 이번 인선은 최종 타협의 결과물"이라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아프간인과 국제사회에 뺨을 때린 격"이라고 비판했다. 바네트 루빈 뉴욕대 교수는 "탈레반 강경파를 고스란히 옮겨놓은 것뿐이며, 어떤 의미에서도 포괄적이라고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아스판디아르 미리 스탠퍼드대 국제안보센터 연구원은 "특히 하카니의 임명은 탈레반이 국제사회의 우려를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는 의미"라며 "탈레반은 국제사회에 '당신들은 우리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면 된다'는 일방적인 신호를 보내고 있다"고 우려했다.

외신 "국제사회 지지 얻기 힘들 것"

CNN은 "세계 각국과 금융기관들은 여전히 탈레반이 반대파와 여성, 소수 종교, 소수 민족을 어떻게 대하는지 지켜보고 있다"고 경고하며 "이번 내각 발표로 인해 탈레반은 국제 사회의 지지를 얻지 못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보도했다. 아프간은 전체 예산의 80%를 미국과 국제사회의 지원으로 충당할만큼 대외 의존도가 높다. 앞서 미국 재무부는 탈레반이 아프간을 장악하자 곧바로 아프간 중앙은행이 미국에 예치한 90억 달러를 동결했고, 국제통화기금도 4억4000만 달러 규모의 지원금을 중단했다. 린다 토머스 그린필드 유엔 주재 미국 대사는 "국제 공약을 준수하고 인권 기준에 걸맞는 행동을 하지 않으면 미국은 탈레반 정부를 결코 승인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탈레반에 대한 각국 정부의 승인이 늦어지면 아프간은 금융위기에 내몰리게 된다.

인도와 쿠웨이트 순방을 위해 26일 미국 워싱턴DC 인근 앤드루스 공군기지에 도착한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 [AP=연합뉴스]

인도와 쿠웨이트 순방을 위해 26일 미국 워싱턴DC 인근 앤드루스 공군기지에 도착한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 [AP=연합뉴스]

한편,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은 8일 20여개 국과 함께 아프간 사태 후속 대응을 위한 화상 회의를 개최한다. 아프간에서 미처 나오지 못한 각국 국민의 대피를 포함해 탈레반 과도 정부 구성에 대한 평가와 공동 대응 방안 등이 논의될 가능성이 크다. 화상 회의에는 한국도 참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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