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살 권리가 있습니다"…극단선택후 남겨진 그들 이야기[밀실]

중앙일보

입력 2021.09.08 16:01

업데이트 2021.09.08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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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락은 안 되고, 초인종을 눌러도 반응이 없었어요. 대낮이라 잠을 잘 시간도 아닌데...그때 생겼던 불안한 기운이 아직도 기억나요. 어떤 예감 같은 걸 확인하는 느낌. 열쇠수리공을 불러서 문을 따고 들어갔고, 그렇게 엄마를 발견했죠."

A(29)씨는 중학교 3학년 시절, 사랑하는 이를 영원히 잃었습니다. 10년도 더 지난 일이지만, 그날만은 또렷하게 기억합니다. 그리고 A씨의 인생도 그날을 기점으로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황웃는돌 작가의 인스타툰 '나는 자살생존자입니다'의 한 장면. 인스타그램 캡쳐

황웃는돌 작가의 인스타툰 '나는 자살생존자입니다'의 한 장면. 인스타그램 캡쳐

2003년부터 15년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은 자살률을 기록했던 한국 사회. 지난 10년간 극단적 선택으로 세상을 떠난 사람만 15만명이 넘습니다. 한 사람이 극단적 선택으로 숨졌을 때 영향을 받는 주변인은 최소 5명에서 최대 10명이라고 합니다. 지난 15년 동안 최소 75만명이 고통을 받았다는 건데요. 그런데 이상합니다. 정작 우리 주변에는 누구도 그런 일을 겪었다고 말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밀실]<제72화>
극단적 선택 그 후, 유가족을 만나다

"사람들은 뉴스에서나 볼 법한 얘기라고 생각해요. 대부분 유가족이 숨기기 때문이겠죠. 병이나 사고로 돌아가셨다고 말하는 경우도 많은 걸로 알아요." 인스타툰 '나는 자살생존자입니다'의 작가 황웃는돌(30·필명)씨가 그 이유를 설명합니다.

사회적 낙인과 편견은 이들이 겪은 아픔을 속으로만 삭이게 만듭니다. 밖으로 털어낼 수 없으니 곪아갈 수 밖에 없죠. 밀실팀은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아들을 잃은 유가족들이 가슴 한켠에 숨겨둔 이야기를 조금이나마 열어봤습니다.

후회 : "뭔가 할 수 있었지 않았을까" 

황웃는돌 작가의 '나는 자살생존자입니다'의 일부 장면. 인스타그램 캡쳐

황웃는돌 작가의 '나는 자살생존자입니다'의 일부 장면. 인스타그램 캡쳐

보건복지부의 2016년 연구에 따르면 극단적 선택 유가족이 우울증에 빠질 위험은 일반인의 7배, 극단적 선택을 할 위험은 8.3배 이상 높습니다. 사랑하는 이의 상실을 이겨내야 하는 한편, 자신도 죽음의 유혹에서 벗어나 생존하기 위해 싸워야 하는거죠. 이들을 '자살생존자’라고 부르는 이유입니다.

'내가 그때 무언가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자살생존자들이 가장 많이 하는 생각입니다. 한 번이라도 더 만났다면, 한 번이라도 더 따뜻한 말을 했더라면 그 사람이 살 수 있었다는 후회와 죄책감이 대부분의 생존자를 따라다닙니다.

"내가 금수저로 태어나서 금수저로 대접했어도 아들이 죽었을까 생각해."

6년 전 어린 나이의 손주를 남겨두고 세상을 떠난 아들. 그의 아버지인 이모(67)씨는 자주 생각합니다. 후회는 가끔 원망을 낳기도 합니다. "명절 같은 때에 생각나면 다 원망스럽지. 저런 손주 놔두고 어떻게 갔나 하고."

황웃는돌씨도 아버지가 떠나기 2주 전, 함께 가자고 한 콘서트에 가지 못한 게 한(恨)으로 남았습니다. "아빠는 뭔가를 함께 하자고 하는 분이 아니었다. 지금도 그때 내가 뭔가 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털어놨죠.

자살 생존자는 우울증과 또다른 극단적 선택의 위험에 노출된다. pixabay

자살 생존자는 우울증과 또다른 극단적 선택의 위험에 노출된다. pixabay

편견 : "돌아가신 지 얼마나 됐다고"

주변의 손가락질은 안 그래도 힘든 이들의 삶을 더욱 힘들게 합니다. '아버지 돌아가신 지 얼마나 됐다고 저렇게 놀러 다니지' '쟤는 분명 지금 엄청 힘들 거야'…. 황웃는돌씨가 실제로 들었던 이야기입니다. 그는 "생존자들도 삶이 있고 일상으로 복귀할 자격이 있다. 사람들은 진심으로 걱정해서 저런 말을 하는 게 아니라 '가십'처럼 우리의 아픔을 소비한다"고 토로했습니다.

A씨는 "솔직하게 그 일에 관해서 이야기하면, 사람마다 반응이 다르긴 하지만 대부분 내가 우울할 거라는 편견이 있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이씨도 "'부모 앞에 간 놈은 불효자식이니 잊어버리라'고 친구들이 그러더라. 하지만 그 말이 사람을 더 죽이더라"고 털어놨습니다. 섣부른 위로도 이들에겐 독이 되는 셈입니다.

그러다 보니 그 일을 함께 겪은 가족들 사이에서도 먼저 떠난 이에 대한 얘기는 쉽게 나오지 않습니다. 마음이 너무 아프기 때문입니다. 이씨는 "얘기 꺼내면 우느라 밥이 안 넘어간다. 부부 간에도 그 얘기를 함부로 꺼내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자살 유족 대다수는 주변에 사망 사실을 숨긴다. [자료 심리부검 면담 결과 보고서]

자살 유족 대다수는 주변에 사망 사실을 숨긴다. [자료 심리부검 면담 결과 보고서]

공감 : "부끄러운 일이 아니면 좋겠다"

'그 일' 후 가슴 시리고 참기 힘들만큼 아픈 시간. 그래도 생존자들은 주변 사람들과 아픔을 나눴기 때문에 어려운 과정을 넘어 살아남았다고 입을 모읍니다. 심지어 친척에게조차 말 못한 이들에게 가장 큰 도움이 됐던 건 자조모임이라고 합니다. 자신을 돕는다는 뜻을 가진 이 모임은 같은 일을 겪은 사람들과 모여서 터놓고 얘기하는 자리입니다.

이씨는 "가슴에 담는 것도 한계가 있다"면서 "모임에서 아들 얘기를 하다 보면 조금씩 마음이 풀리고 서로 위로가 돼 준다"고 설명합니다. A씨도 부모를 잃은 유가족들이 모이는 자조모임에 자주 참여했다고 해요. A씨는 자조모임뿐 아니라 친구들에게 자신이 겪은 일을 털어놓는 과정에서 오히려 상처를 치유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황웃는돌씨는 인스타툰 '나는 자살생존자입니다'를 연재하면서 자신과 같은 사람들이 더 많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고 합니다. 그로 인해 상처가 아무는 경험도 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는 "아빠 얘기를 그만 하라는 얘기도 많이 들었다. 그래도 이게 부끄러운 일이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림을 그만 그릴 생각은 없다"고 강조합니다. 그러면서 힘을 줘 말했죠.

"생존자들이 세상에서 더는 고립되지 않도록 내가 그린 만화를 보고 힘냈으면 좋겠어요."

서울 마포대교에 설치된 생명의 전화. 뉴스1

서울 마포대교에 설치된 생명의 전화. 뉴스1

매년 돌아오는 9월 10일은 '자살 예방의 날'입니다. 자살생존자들은 이 시기만 되면 가슴이 시려온다고 하는데요. 이제 우리 사회도 극단적 선택 예방만큼 남은 이들이 아픔을 꽁꽁 싸매고 아파하지 않는 데 세심한 관심을 보여야 하지 않을까요.

밀실은 '중앙일보 레니얼 험실'의 줄임말로 중앙일보의 20대 기자들이 도있는 착취재를 하는 공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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