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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헤어지고 나서 연인처럼 지내는 황혼이혼 부부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송미옥의살다보면 (204)

아랫마을엔 할머니랑 같이 사는 작은 아이가 있다. 그의 부모는 이혼했다. 그들이 다녀가면 아이 방엔 장난감이 쌓이고 친구들이 와서 부러워하면 우쭐거린다. “그게 말이지…. 엄마 아빠 따로 살면 좋은 점도 많아. 용돈도 두 배로 받거든. 흐흐.” 깊은 속마음을 감춘 아이의 표정이 애잔하면서도 씩씩하다.

이혼하고 한 발 짝 물러나서 바라보니 힘들고 고달팠던 시간이, 이해할 수 없었던 고집과 집착이 ‘그럴 수 있다’는 이해심을 만들어 주었다. [사진 pxhere]

이혼하고 한 발 짝 물러나서 바라보니 힘들고 고달팠던 시간이, 이해할 수 없었던 고집과 집착이 ‘그럴 수 있다’는 이해심을 만들어 주었다. [사진 pxhere]

오래 사는 세상이다 보니 가깝게 지내는 지인도 황혼이혼을 했다. 남편은 맏며느리로 40년을 살면서 위아래로 시중드느라 샌드위치가 되어 힘들어하는 사랑하는 아내를 놓아주었다. 서로 힘든 일이 생기면 도와주기로 하고 이혼을 한 것이다. 몸이 아픈 아내는 일 년에 12번이 넘는 제사를 어른들의 고집으로 줄이지 못했다. 사람을 잃고서야 법이 바뀌었다. 제사를 안 지내면 죽은 조상들이 벌떡 일어나 쳐들어올 것 같이 불안해했지만, 명절을 빼고 4번으로 줄여도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결혼생활은 두 사람만 소통이 잘 된다고 다가 아니다. 어른들의 고집으로 지켜온 가문의 전통을 사랑만으로는 이길 수 없었다. 안동은 유교 문화가 주축이라 시제(5대조 이상의 조상을 해마다 한 번 묘소에서 받드는 제례)도 성대하고 크다. 시제를 지내고 나면 한 달을 끙끙 앓았다. 대종가의 가장 큰 행사인데도 코로나 발생으로 2년째 못 지내고 있다. 산 사람이 우선이라 해도 어르신은 조상님 생각에 죄인같이 미안하다.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을 자유라 말한다. 이혼하고 한 발 짝 물러나서 바라보니 힘들고 고달팠던 시간이, 이해할 수 없었던 고집과 집착이 ‘그럴 수 있다’는 이해심을 만들어 주었다. 그는 그렇게 자유를 얻었다.

전 남편은 남자가 해야 하는 일을 와서 도와주고, 큰 행사 때는 남자가 머리 숙여 일손 부탁을 하니 마음 편하게 가서 돕는다. 집안 어른들은 두 사람의 이혼을 모르니 며느리 표정이 밝다 말하며 칭찬하고 지인은 일손 돕기에 가서 일당 받듯 수고비를 두둑이 받는다. 억지로 내 일을 하는 것과 남의 일을 도와주는 것은 개념이 다르다.

지인도 남편과 헤어지고 자유인이란 이름으로 다른 사람도 만나보았다. 그러나 투덕거리며 살아온 내력과 외력의 내공이 쌓이다 보니 사람 보는 눈도 높아졌다. 남편이 참 괜찮은 남자라는 걸 깨닫는다. 남편도 아내를 생각하면 그런 여자 또 없다. 재결합을 하든가 말든가는 그때 가서 생각할 일이고, 지금은 타임머신을 타고 40년 전으로 돌아간 듯 마음이 여유롭다. 이전엔 남편과 아내였지만 지금은 친구된 그들은 가끔 반찬도 해다 주고 서로의 소식을 나누며 만남의 시간을 갖는다. 헤어지면 원수가 되던 시절은 옛날이야기다.

출가한 자식들은 부모의 삶이 아리송하다. 같이 있을 땐 죽자고 싸우더니 헤어지고 나서 서로를 챙겨주고 대화도 연인처럼 부드러우니 이해가 안 간다. 그 모습이 그나마 보기 좋아 이쪽저쪽 소식을 전하며 통신원 노릇을 하기도 한다.

‘삶은 계란’ 처럼 같은 울타리 안에서 속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다가 뜨거운 물 같은 환경을 만나면 단단해지는 게 부모다. [사진 pixnio]

‘삶은 계란’ 처럼 같은 울타리 안에서 속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다가 뜨거운 물 같은 환경을 만나면 단단해지는 게 부모다. [사진 pixnio]

우리 집구석은 왜 저럴까? 자식들이 바라보는 부모의 모습은 날마다 불안하고 초조하지만 그래도 그렇게 내공을 쌓으며 계란처럼 단단해지고 있으니 걱정하지 마시라. ‘삶은 계란’이란 농담처럼 같은 울타리 안에서 살아도 속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다가 뜨거운 물 같은 환경을 만나 단단해지는 그 무엇이란 말이 맞다. 자전거 페달을 밟을 때 오르막에서 근육에 힘이 생기듯이 우리 부모의 그 억센 투덕거림은 살아남기 위한 힘찬 페달을 밟는 중이었겠구나 하고 어느 책 구절의 말처럼 그렇게 부모를 이해하면 좋겠다.

앞집 어른도 이혼한 부모 대신 손녀를 키웠다. 떠난 엄마를 미워하지 말라고, 좋은 엄마였다고, 어른들의 사정으로 헤어진 것을 이해시키는 모습에 내가 더 존경한다.

전 남편과 친구처럼 잘 지내는, 윗글에 소개한 지인에게서 전화가 온다. ““불편하게 지내지 마시고 다시 합치시지요?”라며 자식들이 건의하더라. 우리 관계를 이해시키려면 시간이 필요해서 그냥 웃고 말았어. 명절이 다가오니 그것들이 용돈을 두 군데 주는 게 아까운 거지…. 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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