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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크 벗고 손주들 얼굴 보고 싶어요" 90세 할머니의 소원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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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1년 8개월.  

지난해 1월 20일 국내에 첫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한 이후 멈춘 시간이다. 바이러스의 정체를 알만한 시간인데도 여전히 코로나에 압도당하고 있다. 그동안 가만이 있지만은 않았다. 백신으로 반격을 시작했다. 한국은 백신 조기 도입 실패로 애를 먹었지만 최근에 속도를 올리고 있다. 다른 나라와 달리 백신 거부자가 14%에 불과할 정도로 적극적으로 팔을 걷고 있다. 잘 하면 추석 후 또는 다음달에 긴 터널에서 벗어날 수도 있다는 기대감이 번진다.

지난 6월 1일 오전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경희재활요양병원에서 아내 이모씨와 입소자인 남편 김모씨가 대면 면회하고 있다. 연합뉴스. (기사 내용과 연관 없음)

지난 6월 1일 오전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경희재활요양병원에서 아내 이모씨와 입소자인 남편 김모씨가 대면 면회하고 있다. 연합뉴스. (기사 내용과 연관 없음)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은 7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위드 코로나(With corona)’ 전환 시점 질문을 받자 “10월 말부터는 전환을 적용해볼 수 있다고 판단한다”고 답했다. 그동안 정 청장은 전체 접종률 80%, 고위험군 90%를 위드 코로나 전환 시기로 잡는 듯 했다. 시점은 11월이다. 이날 국회 답변에서 전환 시기를 당긴 것이다. 중앙사고수습본부(중수본) 설문조사에서 응답자 10명 중 7명이 ‘위드 코로나’ 전환에 찬성한다고 답했다. 위드 코로나에 꿈꾸는 일상의 모습은 무엇일까.

90대 할머니 “마스크 벗고 자식들 얼굴 보고파”

‘마스크 없는 삶’을 가장 먼저 상상한다. 위드 코로나로 가더라도 상당 기간 그런 삶이 찾아오지는 않을 수 있다. 그래서 더 절실할 수 있다. 화이자 백신 2차 접종을 완료한 허찬(90ㆍ경기도 과천)씨는 여전히 집에서 두문불출 중이다. 허씨는 "고령이라 감염 위험 때문에 복지관에 가는 것도 친구들을 만나는 것도 망설여진다"고 말했다. 위드 코로나나 그 이후에 가장 절실한 것은 뭘까. 허씨는 “마스크를 벗고 자식들 얼굴을 편안하게 보고 싶다”고 답했다. 허씨는 "지금은 손주들을 봐도 마스크를 쓴 채 눈으로만 아이들의 모습을 담고 있다"며 “가족들과 다 같이 둘러앉아 마스크를 벗고 맛있는 식사 한 끼 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2학기 전면 등교가 확대된 6일 오전 대전 서구 둔산초등학교 3학년 교실에서 담임교사가 학생들에게 손소독을 하고 있다. 뉴스1 (기사 내용과 연관 없음)

2학기 전면 등교가 확대된 6일 오전 대전 서구 둔산초등학교 3학년 교실에서 담임교사가 학생들에게 손소독을 하고 있다. 뉴스1 (기사 내용과 연관 없음)

올해 5살인 박수연양도 마스크 때문에 친구들과 편하게 말할 수 없는 상황이 힘들다고 말했다. 박양은 "마스크를 벗을 수 있다면 친구들한테 입을 보여주고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다”고 답했다.

고등학교 3학년 담임 교사인 안정희(43)씨는 혹시 코로나에 감염돼 제자들에게 피해가 갈까봐 식당이나 호프집에 발길을 뚝 끊었다. 필요한 모든 걸 배달로 해결하고 있다. 안씨는 “마스크를 쓰니 아이들 얼굴을 잘 모르겠다. 일상으로 돌아간다면 마스크를 벗고 한명 한명 아이들 얼굴을 익히고 싶다”고 말했다.

뮤지컬 배우 “관객 꽉 찬 무대 그리워”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은 사람에게 위드 코로나는 더없이 반갑다. 뮤지컬과 연극 무대에서 활동하던 강민주(31)씨는 꿈을 잃은 지 1년 8개월이 흘렀다. 강씨는 코로나가 장기화되면서 공연이 취소되는 일이 잦았고 수입이 줄어들다보니 결국 다른 일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여전히 공연계로 돌아갈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고 말했다. 강씨는 “공연 중 접촉하면 안 되니 관객과 하이파이브조차 못 했다. 비대면 공연을 한 적도 있지만, 관객과 직접 소통하는 만큼 에너지를 받을 수는 없었다”며 “2층 객석까지 꽉 찼던 무대가 그립다”고 말했다.

2019년 10월 이예성 승무원이 항공기 점검을 하고 있다. [이예성씨 제공]

2019년 10월 이예성 승무원이 항공기 점검을 하고 있다. [이예성씨 제공]

5년차 승무원인 이예성(27)씨는 지난해 누구보다 힘든 시간을 보냈다. 운이 좋게 코로나19 직전에 다른 항공사로 이직해 직장을 잃는 일은 없었지만, 항공 업계가 어려워지면서 순환 휴직을 들어가게 됐고 월급을 받지 못한 적도 있었다. 처음엔 당황스러웠지만, 지금은 오히려 휴식의 시간으로 생각하고 있단다. 이씨는 “지금은 사람이 없어 유령공항 같다”며 “얼른 코로나를 극복해 사람들로 북적이는 공항을 보고 싶다”고 말했다.

코로나에 헌혈 수급도 줄어

코로나19 의료 현장 못지 않게 애타는 데가 있다. 대한적십자사 혈액관리본부다. 감염 우려 때문에 혈액 수급에 비상이 걸린 오래다. 26년째 간호사로 일하고 있는 강순석 과장(51·헌혈의집 망우센터)은 “사회적 거리두기 상향 등으로 헌혈자 방문이 많이 줄었다”고 말한다. 센터에 따르면 망우센터의 헌혈 실적은 2019년 상반기 8154건에서 지난해 7217건, 올해 1~6월 6955건으로 급감했다.

지난 8월 23일 원주혁신도시 공공기관(혈액관리본부) 단체헌혈 참여 장면이다. [대한적십자사 제공]

지난 8월 23일 원주혁신도시 공공기관(혈액관리본부) 단체헌혈 참여 장면이다. [대한적십자사 제공]

재택근무가 일상화되면서 단체헌혈도 크게 줄었다. 대한적십자사에 따르면 1~8월 기준 단체헌혈 실적은 2019년 56만3751건에서 2020년 44만5192건, 2021년 41만9929건으로 줄었다. 강 과장은 “하루빨리 팬데믹 이전으로 돌아가 서로 웃는 얼굴로 대면했으면 좋겠다”며 “그때에는 더 많은 국민들이 헌혈에 동참해주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10월 결혼을 앞둔 예비신부 문희수(28)씨도 가슴이 조마조마하다. 거리두기 정책이 계속 바뀌는데다 웨딩 업체 측에서는 기존 정책을 유지하다 보니 손해를 많이 봤다고 한다. 문씨는 "지인들에게 초대장을 보내는 것조차 망설여진다"고 말했다. 문씨는 "원래 많은 사람을 초대하기보다 친한 지인들에게 소소하게 축하를 받고 싶었다. 코로나19 상황이 얼른 좋아져 일상을 회복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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