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이상언의 시시각각

범죄로 가는 낙하산

중앙일보

입력 2021.09.08 00:37

업데이트 2021.09.08 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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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이상언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박용석 화백의 중앙만평

박용석 화백의 중앙만평

“캠프 내 계급은 가입된 단톡방의 인원수로 결정된다.” 최근에 만난 유력 대선주자 캠프 인사가 말했다. “30인 방에 들어있으면 성골, 100인 방에 끼어 있으면 6두품쯤 된다”고 덧붙였다. 캠프마다 전ㆍ현직 의원을 포함한 정치권 인사, 대학교수, 전직 언론인, 각종 단체 간부가 문전성시를 이뤄 생긴 현상이다. 온라인 커뮤니케이션이 보편화하고, 코로나19 사태로 대면 모임이 어려워 단톡방이 정보 전달과 의견 취합의 핵심 수단이 된 탓이기도 하다.

5년마다 판 깔리는 정치 도박에
한탕 노리는 '이익 카르텔' 형성
사실상 사후 보상이나 뇌물 해당

여야의 1등 주자 캠프는 합류하겠다는 사람 걸러내기에 바쁘다고 한다. 여권 주자의 캠프 인사는 “기분 나쁘지 않게 에둘러 거절하거나 딱히 역할이 없는 자문단 같은 곳에 이름을 올려주는데, 난감한 때가 많다. 이번 선거에는 특히 지방대 교수의 비율이 높다. 비대면 수업을 해서 지방에 머무르지 않아도 되기 때문인 듯하다”고 말했다. 그의 말이 맞는다면 코로나19가 캠프 문화까지 바꾼 셈이다.

각자 본인들은 ‘나라를 위한 봉사’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 데 낄 마음이 없었는데 그쪽에서 하도 오라고 해서 잠깐 도와주려고”라는 말을 여러 번 들었다. 하지만 정말 사심이 없어 보이는 사람은 없었다. 여야의 대선주자가 20명이 넘으니 아무 캠프에도 속하지 않은 전직 언론인이나 사회활동이 활발한 대학교수가 괜스레 자기 변호를 하는 현상까지 나타났다. 묻지도 않았는데 “얘기가 좀 오간 데가 있지만 정치판에 끼지 않기로 했다”는 식이다.

비트코인이든, 이더리움이든, 그것도 아니면 잡코인이라도 사둬야 하지 않겠느냐는 투기 심리가 선거판을 움직이는 느낌이다. 시기가 늦어서 수익률이 그리 높지 않을 것 같다는 사람도 있고, 지금이라도 베팅을 해야 나중에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지식인 사회가 선거 도박판에 휩싸였다.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시간과 비용의 ‘합리적 투자’로 볼 여지도 있다. 서일준 국민의힘 의원이 39개 정부 부처 산하 370개 공공기관의 올해 임명된 임원을 전수조사해 보니 106명(14.4%)이 문재인 대통령 대선캠프, 더불어민주당, 청와대, 대통령 직속 위원회 출신이었다. 과거 정부와 비교할 때 가장 높은 비율이다. 경력이 확인되지 않은 경우도 많아 실제로는 그 수가 이보다 훨씬 클 것으로 추정된다. 공공기관 외에 금융기관, 각종 정부 위원회로 ‘낙하산’ 타고 하강한 ‘캠코더’(캠프ㆍ코드ㆍ더불어민주당) 인사도 부지기수다. 지방정부 산하 기관에도 낙하산 잔재가 즐비하다. 총선 공천에서 탈락했거나 낙선해 국회 언저리에서 사라진 사람들이 정부 입김이 통하는 기업의 고문 또는 감사의 명함을 들고 나타나는 것도 요새는 특별한 일이 아니다.

야당과 언론은 정실 인사라고 비판하지만, 정권은 적임자 발탁이라고 한다. 황현선 전 청와대 민정수석실 행정관을 20조원의 뉴딜펀드를 운용하는 한국성장금융의 투자운용본부장으로 지명할 때도 그랬다. 논란이 일면 대통령 국정 철학에 대한 이해가 높고 업무 추진력이 좋다고 한다. “우리 편이라서”는 말과 다르지 않다. 대학교수는 남이 하면 ‘폴리페서’고 내가 하면 ‘앙가주망’이다. 나랏일을 온통 망쳐 놓았어도 다시 대학으로 돌아가면 그만이다. 조국ㆍ김수현ㆍ박능후ㆍ변창흠 전 장관이 그랬다.

낙하산 하사는 엄밀히 따지면 선거 조직을 관리하고, 선거용 정책을 만들고, 선거운동을 한 사람들에 대한 사후 보상이다. 청와대에서 일한 사람들에 대한 입막음용 뇌물이다. 자기들끼리의 ‘이익 카르텔’ 형성이다. 실정법 위반은 아니더라도 범죄적 행위다. 정권 막바지에 이르자 보은·알박기 인사가 노골적이다. 개전의 정이 보이지 않는다. 현재의 대선주자 캠프를 보면 다음 정권도 더하면 더했지 덜할 것 같지가 않다. 지금의 권력구조가 유지되는 한 5년마다 벌어지는 전국적 도박이 청산될 가능성은 없다. 공적으로 용인되는 범죄가 정치라는 허울을 쓰고 계승 발전하고 있다.

     이상언 논설위원

이상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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