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김동호의 세계경제전망

전 세계가 금융허브 위해 뛰는데 한국만 멈춰서 있다

중앙일보

입력 2021.09.08 00:32

업데이트 2021.09.08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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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김동호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김동호의 세계경제전망

김동호의 세계경제전망

돈은 국경을 넘어다닌다. 한때 '해가 지지 않는 나라'였던 영국은 지금도 금융에 관해서는 해가 지지 않는 지위를 갖고 있다. 아시아 증시가 문을 닫을 무렵 런던 금융시장이 문을 열고 뉴욕에 바통을 넘겨준다. 글로벌 금융 투자자들로서는 끊김 없이 시장의 흐름을 탈 수 있는 최적의 장소가 바로 런던이다. 글로벌 금융시장이 사실상 24시간 돌아가는 효과를 거둔다. 그러나 올해 막을 올린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로 런던의 위상에도 변화의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홍콩 사태가 촉발한 금융허브 전쟁
홍콩 불안해지자 싱가포르 급부상
영국 브렉시트로 유럽 유치전 가열
한국,감독 허술하고 관치금융 오명
금융을 경쟁력 갖춘 산업으로 키워야

유럽연합(EU)은 2022년 중순까지 유로화 표시 자본을 런던에서 모두 철수하라는 방침을 세웠다. 이에 따라 은행과 증권거래소뿐만 아니라 금융인력의 대이동이 진행되고 있다. 런던증권거래소에 상장된 유럽연합 회원국의 주식과 채권의 이동이 불가피해지면서다. 메이리드 맥기네스 유럽집행위원회 금융서비스국장은 “거대한 변화가 불가피하다”고 로이터 인터뷰에서 밝혔다.

실제로 그런 변화가 일어난다면 지각변동이 아닐 수 없다. 런던의 금융업은 350년이 넘는 역사와 경험을 갖고 있다. 런던은 1666년 9월 2일 시내 중심부 빵 공장에서 시작된 대화재 발생을 계기로 금융시장이 꽃피기 시작했다. 화재에 대비해 보험회사들이 하나둘 모여들어 세계적인 금융허브가 된 곳이 바로 런던 중심부 ‘시티 오브 런던(시티, the City)’이다. 런던은 시티를 중심으로 동쪽에 카나리 워프, 서쪽에 메이페어까지 금융구역이 퍼지고 있다. 이들 지역은 금융산업이 발달하면서 쇼핑과 명품 거리가 형성되고 금융부터 부동산에 이르는 핵심 기업이 들어서 있다. 특급호텔과 레스토랑이 즐비해 세계에서 가장 임대료가 비싼 상업지역으로 꼽힌다.

시티는 유럽의 금융 슈퍼마켓이다. 5000개 넘는 글로벌 금융회사가 영국 정부에 떨구어 놓는 세금은 연간 760억 파운드(110조원)에 달한다. 이 거대한 금융산업을 놓고 영국과 유럽연합 회원국 간 경쟁이 격화하고 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이 강력한 경쟁 도시로 떠오르고 있다. 프랑스도 벌써 2년 전 법인세 인하를 내세워 ‘파리 금융허브’ 청사진을 내놨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런 도전에 시티도 그 충격을 피해가긴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하루아침에 런던의 장점이 사라지기는 어렵다. 은행을 비롯한 금융회사와 그 고객은 자신의 금융 비즈니스를 한 장소에 모아두기를 선호한다. 한 곳에서 관리해야 투자 및 위험관리의 효율성을 극대화할 수 있다. 그야말로 집약산업이라는 얘기다. 실제로 시티에는 재보험부터 청산ㆍ결제, 주식공개(IPO)와 채권 거래까지 모든 금융 거래가 이뤄진다. 그 결과 자연스럽게 금융 전문인력이 차고 넘치는 것도 금융허브의 조건이다. 특히 유럽 기업들은 환금성이 가장 높은 시장을 원한다. 국경을 넘나들 때 막힘이 없어야 하고 사회 혼란 같은 불확실성은 금물이다.

국제금융센터지수

국제금융센터지수

홍콩의 금융회사 엑소더스 가능성도 금융허브의 이런 특성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사회가 조금이라도 불안하면 금융회사는 바로 보따리를 싼다. 최대 수혜자는 싱가포르로 꼽힌다. FT는 “최근 글로벌 금융회사들이 홍콩을 속속 빠져나오면서 대체지로 싱가포르를 찾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동안 홍콩을 거점으로 하고 싱가포르에는 인력을 많이 두지 않았던 글로벌 금융회사들이 싱가포르 인력을 크게 늘리고 나섰다”면서다. 일본은 눈독을 들이고 있다.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은 도쿄 금융허브의 가능성을 진단하면서 오사카·후쿠오카도 후보로 꼽았다.

중국은 크게 개의치 않고 있다. 중국 동부의 상하이와 남부의 선전을 진작부터 홍콩의 대체 시장으로 육성해왔기 때문이다. 상하이 증권시장의 규모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4차 산업혁명 바람을 타고 빅 테크 기업들이 속속 중국 증시에 상장하면서다. 금융허브로서 홍콩의 위상이 낮아져도 상하이와 선전을 더 크게 키울 기회가 되는 셈이다. 홍콩을 사회적으로 통제하기도 쉬운 데다 상하이·선전에 상장할 유망한 기업들이 많아 아쉬울 것도 없다.

글로벌 금융회사들도 홍콩을 완전히 떠나지는 않고 있다. 자본에는 국적도, 국경도 없기 때문이다. 돈만 벌 수 있으면 독재국가에도 들어가는 것이 자본의 논리다. 최대한 홍콩에서 버티되 위험 분산을 위해 대체지로서 싱가포르의 비중을 높이고 있다고 보는 게 적절하겠다.

요컨대 금융허브의 관건은 얼마나 돈을 벌 기회가 제공되느냐와 함께 그럴만한 환경이 갖춰져 있느냐에 달려 있다. 이런 점에서 규제 많은 곳은 결코 금융허브가 될 수 없다. 런던이 결정적으로 글로벌 금융허브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1930년대 프랭클린 루스벨트 정부 시절 미국의 금융규제 강화의 영향이 크다. 글래스ㆍ스티걸 법안에 따라 미국은 은행의 업무영역을 투자은행과 소매은행으로 분리했다. 친노조 성향의 정책 도입으로 법인세와 소득세도 대폭 강화하면서 은행들이 대거 런던으로 사업 근거지를 옮기고 부유층도 계좌를 트면서 급성장할 수 있었다.

한국이 금융허브에 도전한 것은 벌써 20년이 넘는다. 한국은 2003년 노무현 정부 때부터 ‘동북아 금융허브 로드맵’을 제시했다. 이명박 정부에서도 서울과 부산을 후보지로 제시하면서 ‘금융중심지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다국적 기업을 대상으로 성공 요건에 대한 조사도 벌였다. 그러나 한국은 관심을 끌지 못했다. 싱가포르·홍콩·상하이를 따돌릴 장점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들 경쟁 도시는 일찍이 국제도시의 매력을 갖췄다. 한국은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지정학적 위치가 좋으니 글로벌 금융회사들이 몰려들 것이란 판단은 오산이다. 금융산업의 육성, 법인세 인센티브, 인건비 등 요소비용, 외환 및 금융, 외국인 거주 환경이 모두 강화돼야 한다.

무엇보다 금융은 고부가가치 첨단산업이다. 지금 세계를 돌아보면 금융허브 구축에 나서지 않는 곳이 없다. 케냐는 수도 나이로비를 앞세워 아프리카 금융허브 구축에 열을 올리고 있을 정도다. 노무현 정부 이후 18년째 제자리걸음하고 있는 한국도 이제 행동으로 보여줘야 할 때다.

2003년부터 동북아금융허브 유치에 나선 노무현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유치 방안 논의에 앞서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그로부터 18년이 흘렀지만, 한국은 여전히 금융허브 경쟁력이 취약하다.[청와대 사진기자단]

2003년부터 동북아금융허브 유치에 나선 노무현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유치 방안 논의에 앞서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그로부터 18년이 흘렀지만, 한국은 여전히 금융허브 경쟁력이 취약하다.[청와대 사진기자단]

금융인프라 분산,주52시간…불확실성 높은 한국

서울시는 해외 금융기관 서울 유치를 위해 런던·홍콩·뉴욕·싱가포르 등을 대상으로 줄곧 온라인 설명회를 개최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15일에는 유럽과 싱가포르 소재 금융회사를 대상으로 설명회를 가졌다. 여기엔 뱅크오브아메리카 싱가포르지사, 글로벌 핀테크 기업 트랜스워프, 글로벌 보험회사 텍셀그룹, 영국 투자 매니저연합회 등 30여 금융회사 임직원 50여명이 참석했다. 서울시는 글로벌 금융회사 유치를 위해 여의도 서울국제금융센터(One IFC) 16층에 조성 중인 ‘서울시 국제금융오피스’의 입주조건과 지원정책을 홍보했다. 국내외 금융기관을 유치하기 위한 전용공간이다. 입주기업에는 사무·회의·네트워킹 공간과 함께 최대 5년간 임대료와 관리비의 70% 이상을 지원한다. 법률·투자·컨설팅, 외국인 임직원 지원, 여의도 내 기존 금융사와 네트워킹 등 다양한 프로그램도 마련된다.
앞서 지난해 11월에는 금융감독원과 함께 홍콩 소재 금융기관을 대상으로 온라인 투자설명회를 열었고, 지난해 12월 10일에는 싱가포르 핀테크 페스티벌에 온라인으로 참여해 서울의 핀테크 산업 지원정책을 홍보했다. 서울시는 안전한 도시, 금융허브로서 준비된 도시라는 점을 강조한다.

애를 쓰고 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지난해 12월 파이낸셜타임스는 사기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는 사모펀드 라임·옵티머스 사태를 거론하며 한국의 금융감독 체계에 구멍이 뚫렸다는 사실을 전 세계 금융기업에 타전했다. 더구나 한국은 금융 인프라가 서울·세종·부산·전주에 분산돼 있다. 금융회사는 모두 서울에 몰려 있지만, 경제사령탑은 세종시에 있고 금융위원회는 서울 세종로 정부청사에 입주해 있다. 금융감독원은 여의도에 들어섰다. 또 국민연금공단은 전주로 본사를 옮겼다. 올해 2분기 기금 적립금이 900조원을 돌파했지만, 골드만삭스·블랙록 등 글로벌 금융 큰손들의 방문이 뜸해지고 펀드매니저조차 구하기 어려워졌다.
더구나 대통령이 금융위원장에게 연체자 200여만명의 연체 기록을 없애주는 금융사면을 지시했다. 코로나 사태로 어려움을 겪는 개인이나 사업자가 연체 금액을 다 갚으면 혜택을 주겠다는 것이지만, 금융시장 질서를 왜곡하는 관치금융의 생생한 현장이다. 획일적인 주 52시간제 역시 외국 금융회사의 진출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원화가 비 기축통화라는 점도 핸디캡이 되고 있다. 북한 리스크를 빼더라도 금융회사의 가장 큰 적인 불확실성을 모두 갖추고 있다.서울이 아시아 금융허브가 되기 위한 대수술이 시급하다.

김동호 논설위원

김동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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