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마음 읽기

열매의 꿈

중앙일보

입력 2021.09.08 00:28

업데이트 2021.09.08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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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문태준 시인

문태준 시인

가을에 들어섰지만, 유난히 비가 잦다. 땅이 마르는가 싶으면 또 어느새 비가 다녀간다. 비가 다녀가면 풀은 밤도 잊고 자란다. 그러나 이제는 풀의 기세도 약해진 듯하다. 가을의 공기와 바람을 쥐는 손아귀 힘이 좀 빠진 듯하다. 풀도 조금씩 그 끄트머리와 둘레와 가장자리가 시드는 느낌이다. 가을이 확장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이 아무리 부지런해도 풀의 용맹한 군사를 이겨낼 수 없다. 그러나 계절이 바뀌니 풀의 대군도 뿔뿔이 오합지졸처럼 흩어지는 형국이다. 시간을 이기는 것은 없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무질서하게 모인 듯한 이 형세가 곧 차차 쇠하고 시들고 떨어지는 가을의 살림살이 형편이 아닌가도 싶다.

이웃집 무화과 밭에는 무화과가 검붉게 익었다. 구순의 할머니는 이른 아침마다 무화과 가지를 당겨 무화과 열매를 따서는 둥글고 속이 깊숙한 바구니에 담으신다. 시장에 내다 파신다는 얘기를 들었다. 할머니의 부지런한 일과는 해가 뜨는 시간 이전에 벌써 시작된다.

가을은 잘 무르익은 열매의 시간
열매는 후일에 펼쳐질 꿈의 낟알
열매 속 씨처럼 희망을 가꿨으면

바야흐로 가을 열매를 얻는 때가 된 듯하다. 길에서 집까지 나 있는 좁은 골목인 올레에 깨를 베어 널어놓은 집도 있다. 나는 평소에 알고 지내던 분으로부터 누런 금빛 호박 두 덩이를 받았다. 푹 삶아 으깨어 호박죽을 해 먹어 보라고 했다. 집 곳곳에 자생한 동백나무에는 동백나무 열매가 익었다. 주변에서는 동백나무 열매 속에 있는 씨로 기름을 짜 툇마루 나무 바닥에 자주 바르라고 일러줬다. 제주 애월읍 장전리에 와서 살면서 한동안 잊고 살았던 가을 열매들을 다시 눈앞에서 보고, 또 두 손으로 받게 되었다. 물론 아직 백일홍은 다 지지 않았고, 또 이제 막 피려는 꽃도 없지 않다. 그제는 조천읍에 있는 절인 선래왓에 갔더니 정원에 꽃무릇이 피어 있었다. 꽃무릇의 그 고운 빛깔을 한참 넋 놓고 바라보고 있었더니 주지 오성 스님께서 꽃무릇 구근을 캐서 주셨다. 꽃을 통째로 캐서 주지 않고 대신 구근을 캐서 주신 뜻이 없지 않을 듯했다. 선인선과(善因善果)이니 선한 원인을 심어 선한 과보를 받으라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볕이 잘 드는 곳에 핀 봉선화 열매도 얻었다. 열매의 겉에는 털이 나 있는데, 다 익으면 터지면서 씨가 튀어나온다고 했다. 씨가 익은 것도 있고, 아직 무른 것도 있어서 손으로 일일이 만져보고선 골라서 씨가 차 있고 여문 것을 따 주셨다. 해바라기 씨앗도 주셨으니, 한꺼번에 너무 많은 열매를 얻었다. 절의 마당가에는 새가 날아와서 먹을 수 있도록 해바라기 몇몇을 남겨 두었다고 하셨다. 열매들을 손안에 받아서 드니 마치 한 해의 시간을 품으로 한 아름 받아 안은 것처럼 넉넉해졌다. 열매에는 내일의 시간에 자라날 씨가 들어있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다.

“물의 눈인 꽃과/ 물의 손인 잎사귀와/ 물의 영혼인 그림자와/ 나무여/ 너는 불의 꿈인 꽃과/ 이 지구의 춤인 바람과/ 오늘은 어디에서 만나/ 서로의 손가락에/ 반지를 끼워주고 오느냐”

이 시는 작고한 오규원 시인의 시 ‘나무에게’ 전문이다. 나무를 우두커니 바라볼 때면 이 시가 떠오른다. 물과 불의 몸이요, 물과 불의 영혼인 나무가 한없이 자유롭고 의젓해 보인다. 오규원 시인이 산문에서 “숲에 있는 한 그루 나무를 보라. 그 나무는 숲의 부분이거나 종속적 존재가 아니라 그 자체로 진리며 실체인 완전한 개체이다”라고 말한 맥락도 이 시의 대강의 의미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나무에게도 이제 색(色)이 입혀지고 있다. 가을이 나무에게 바람처럼 가볍고 화려한 옷을 입히고 있는 것이다. 단풍은 점점 구체적으로 낱낱의 잎사귀에 올 것이다. 단풍이 곳곳에 오면 열매도 더 영글 것이다. 이후엔 낙엽의 시간이 도래하겠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하나가 간다는 것은 하나가 새로이 생겨나 다가온다는 뜻에 다름 아니다.

윤동주 시인의 산문에 이런 대목이 있다. “봄이 가고, 여름이 가고, 가을, 코스모스가 홀홀히 떨어지는 날 우주의 마지막은 아닙니다. 단풍의 세계가 있고-이상이견빙지(履霜而堅氷至)-서리를 밟거든 얼음이 굳어질 것을 각오하라가 아니라, 우리는 서릿발에 끼친 낙엽을 밟으면서 멀리 봄이 올 것을 믿습니다”

계절의 바뀜은 완전히 무너지고 신축되는 것이 아닐 터이다. 이 바뀜은 건너서 올 다음의 세계를 예비하는 것일 테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의 열매로부터 어떤 끝을 얻는 것이 아니라 열매 속에 딴딴하게 들어차 있는 씨앗의 꿈을 얻는 것일 테다. 그러니 이 가을의 시간에는 우리가 잊지 않고 심어서 키워야 할 희망에 대해 얘기해보아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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