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시론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다’는 의사들 등 떠밀지 말아야

중앙일보

입력 2021.09.08 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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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연준흠 대한의사협회 보험이사·인제대 마취통증의학과 교수

연준흠 대한의사협회 보험이사·인제대 마취통증의학과 교수

국회에서 수술실 CCTV 설치를 의무화하는 의료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수년 동안 논란을 거듭해온 법안이 의료계의 반대에도 일방적으로 처리된 것은 매우 유감이다. 그동안 의사들은 이 법안이 고도의 집중을 요구하는 의료행위에 방해가 될 뿐만 아니라 생사가 경각에 달린 중환자나 응급환자 수술시 의료진의 심리적 부담을 가중할 것이라며 반대해왔다. 녹화된 영상의 관리가 현실적으로 어려우며 유출되거나 범죄의 대상이 될 때는 그 피해가 치명적일 수 있기 때문에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2년의 유예기간이 붙은 법은 결국 통과됐다.

필자는 마취통증의학과 의사다. 직접 수술칼을 들지는 않지만, 환자가 고통을 느끼지 않고 안전하게 수술을 받을 수 있도록 돕는다. 혈압·맥박·호흡 등 환자의 몸을 최적의 상태로 유지해 외과 의사가 안심하고 최선의 실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마취과 의사의 역할이다. 30년 넘게 하루의 대부분을 수술실에서 보내며 수많은 수술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봐 온 필자가 보기에 CCTV 법안은 환자 생명을 구하고 좋은 수술 결과를 얻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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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취과 의사들도 24시간 카메라의 감시를 받는다고 생각하면 나이가 많거나 각종 질환으로 이미 상태가 좋지 않은 환자의 수술에는 참여하는 것이 꺼려진다. 만에 하나라도 결과가 좋지 않거나 이런저런 이유로 화면을 돌려본다면 수술실에서 있었던 일거수일투족이 어떻게 해석되고 오해를 부를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수술 도중 환자의 상태는 시시각각 변하기 일쑤다. 의료진이 부산스럽게 움직이기도 하고 뛰어다니기도 하며 급하면 수술실 밖에 있던 의료진을 불러 수술에 참여시키기도 한다. ‘잘못한 게 없는지’ 의심하는 눈으로 바라보면 이런 행동은 모두 의심스럽게 비칠 수도 있는 광경이다. 의료진의 과감한 용기는 ‘성급함’으로, 조급한 마음은 ‘부주의’로, 수술실에서 늘 있는 환자의 상태 변화는 ‘사고’로 오인되기에 십상이다. 마취과 의사의 생각이 이러한데 하물며 직접 환자의 몸에 칼을 대고 피를 봐야 하는 외과 의사라면 어떨까.

물론 이런 법안이 나온 배경에는 의사들의 잘못이 있었다. 무자격자를 동원해 대리수술과 대리마취를 하고, 집도의가 누군지 모르게 하는 유령수술을 하고, 명백한 잘못을 저지르고도 은폐하기에 급급했던 일부 의사들의 잘못에 대해서는 같은 의사로서 정말 부끄럽게 생각한다. 비슷한 사건이 반복되는 동안에도 자정하지 못한 의료계는 국민의 질책을 백번 받아도 부족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정상적인 대부분의 의사가 매일 같이 무거운 마음으로 언제든 녹화화면이 내 목을 조를 수 있다는 부담감 속에서 환자를 수술하도록 하는 법을 만드는 것은 너무 멀리 나간 것이다.

암수술·이식수술·심장수술 등 환자의 생명을 구하는 수술을 하는 필수의료 분야의 외과 의사들은 오래전부터 스스로를 "교도소 담장 위를 걷고 있다”고 토로해왔다. 선의를 갖고 하는 의료행위라도 결과가 좋지 않으면 형벌까지 가하니 ‘의사 중의 의사’인 외과 의사들이 설 자리는 점점 좁아지고 있다. 급기야 CCTV 법까지 통과되자 동료 외과 의사는 “안 그래도 젊은 의사들이 지원하지 않는데 이 법안 때문에 외과 의사의 대가 진짜 끊기게 됐다”며 허탈해했다.

우리보다 훨씬 앞서 의학이 발전한 나라들도 우리와 비슷한 고민을 했을 것인데도, 왜 CCTV 법은 우리가 세계에서 처음인지 법률안 거부권을 갖고 있는 대통령은 깊이 고민해 판단하시기 바란다. 환자와 의료진의 사생활을 존중하고 타율이 아닌 자율에 의한 전문성 강화를 지지하는 자유 시민사회의 보편적인 이념에 따르는 것은 현장 의사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 국격과도 닿아있는 중대한 문제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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