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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크로커다일이 저격한다

'의사' 신현영 의원님, 전국민 이마에 카메라 달자 하십시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크로커다일 헤비메탈 록커 겸 유튜버
의사 출신으로 CCTV 설치법안에 앞장선 더불어민주당 신현영 의원.

의사 출신으로 CCTV 설치법안에 앞장선 더불어민주당 신현영 의원.

이재명 경기지사, 그리고 의사 출신인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 보세요.

얼마 전 두 분께서 사실상 진두지휘하여 통과시킨 의료용 CCTV 법안 말입니다. 올해 2월만 해도 수술실 입구 설치만 동의하고 내부는 자발적으로 하자는 식이었는데, 국민의힘이 이준석 당 대표 체제가 되고 나니 갑자기 "6월 국회에서 처리가 시급하다"며 진행하셨지요?

저는 정말로 궁금합니다. CCTV를 왜 그렇게까지 설치하려고 하는 것인지. 이렇게 물으면 수술과정을 다 녹화하니까 대리수술도 막을 수 있고, 나중에 의료사고 밝혀내기도 편하고, 성추행도 막을 수 있다, 뭐 이런 소리들을 하시겠지요? 그런데 제가 볼 때는 전혀 아닙니다. 이 지사나 신 의원이나 CCTV가 무용지물이라는 걸 너무나 잘 알 거라는 겁니다. 모를 리가 없어요. 하나씩 따져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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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용지물 CCTV 

첫째, 성추행을 막겠다고요?
수술실이 어떤 환경인지 모르는 사람만 할 수 있는 말입니다. 신현영 씨는 국회의원이기 전에 의사 아닌가요? 수술을 혼자 하는 경우가 있습니까? 특히 대학병원 수술방에는 사람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마취과 의사에 외과 의사 3~4명, 수술실 간호사에 순환 간호사, 이렇게 7~8명이 상주를 하고, 학기 중에는 실습 의대생과 간호대생까지 우글댑니다. 소속과 직종이 다른 너무 많은 사람이 지켜보기 때문에 성추행하기 위해서는 자기 목을 거는 대단한 모험을 해야 합니다.

수술포로 가리기는 하지만, 수술실 안에서 환자는 나체가 기본입니다. 소독하거나 체위를 변경할 때면 전신이 다 노출될뿐더러 의료진과의 접촉이 있을 수밖에 없지요. 이런 걸 전부 성추행이라고 하면 수술을 하지 말라는 이야기나 다름없습니다. 만약 비정상적 접촉이 있었다면 내부고발로 잡아내는 게 정상적입니다. 이걸 제삼자가 CCTV로 적발하겠다는 발상은 정말이지 일반적인 상식에 어긋나는 말일 것입니다.
무엇보다 병원이 내 나체 영상을 관리하는 게 저는 싫습니다. 나중에 USB에 원본을 받아온다고 해도 찝찝해요. 그게 왜 찝찝한지 궁금하면 한번 자기 알몸을 찍어서 USB로 일주일만 갖고 있어 보세요. 엄청 불안할 겁니다.

SNS에 요즘 돌고 있는 외국 수술실 CCTV 영상 캡처. 알몸 환자 모습이 그대로 보인다.

SNS에 요즘 돌고 있는 외국 수술실 CCTV 영상 캡처. 알몸 환자 모습이 그대로 보인다.

심지어 길어야 한 달쯤 뒤 삭제되는 일반적인 CCTV도 아니고 의료용 CCTV입니다. 최소 몇 년은 의무적으로 보관해야 합니다. 관리를 병원에서 직접 할 리도 없습니다. 아마 CCTV 업체가 하겠지요. 만약 수술실에 연예인이나 유명인이 들어왔을 때 그 CCTV 관리하는 직원이 유출하는 걸 막을 수 있나요?

둘째, 대리 수술? 절대 못 막습니다.
그동안 대리수술 걸린 병원 대부분이 이미 수술실 CCTV가 있던 병원들입니다. 대리수술로 나중에 밝혀진 사건들에서 수술을 한 게 의사인지, 의료기기 영업사원인지, 불법 PA 간호사였는지 어떻게 알았을 거 같아요? 대부분 의료진이 내부고발을 해서 밝혀진 겁니다. CCTV가 잡아낸 게 아니에요.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세요. 가운 입고 마스크 쓰고 있는데. 누가 누군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대리수술이 없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있어요. 가령 척추 수술할 때 기구를 많이 쓰는데, 렌트를 많이 합니다. 보통 빌려주는 기구상이 수술실에 들어와요. 수술실에 수백, 수천 번을 들어온 기구상이 경험이 부족한 의사보다 기구 사용법을 더 잘 아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렇게 가끔 옆에서 도와주는 일이 생깁니다.
특히 척추 수술은 수가가 낮아서 수술해도 남는 게 별로 없어서 고의로 기구상 손을 빌리기도 합니다. 일부 공장형 성형 전문병원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의도적으로 대리수술 의혹이 있는 병원엔 CCTV를 설치해도 대리수술을 막기 어렵습니다. 처음부터 기구상에 수술복 입혀서 들여보내면 되니까요. 누가 누군지 알 수가 없거든요.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수술실에서의 외과 수술은 외과 의사의 자존심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대체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습니다. 경력있는 간호사가 손재주가 좋을 수는 있겠지요. 하지만 수술실에서 수도 없이 일어나는 돌발 상황에서 외과 전문의를 다른 사람이 대체할 수 있는 경우는 단언컨대 없습니다.
셋째, 의료사고요? 그것도 못 잡습니다.
CCTV는 천장 구석에서 수술실을 찍는데 환부가 어떻게 보이나요? 그걸로 어떻게 의료사고를 찾아낸다는 건가요? 차라리 의사들 머리 위에 액션캠을 전부 다는 게 맞는 거 아닙니까?

영상이 유출되면 의사들이 곤란해지나요? 아닙니다. 의사들은 수술실에서 꽁꽁 싸매고 있으니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지금 돌아다니는 수술실 CCTV 영상들만 봐도 수술실에 옷 벗고 있는 건 환자밖에 없어요. 내 은밀한 부분이 영상으로 남는 건데, 환자 입장에서 좋을 일이 도대체 뭐가 있습니까.

선진국이 찾은 더 나은 대안

다른 의료 선진국 중 단 한 나라도 수술실에 CCTV를 설치한 사례가 없습니다. 의사들이 이걸 지적하니까 이재명 지사가 의료 사대주의라고 성질을 내셨더군요. 우리나라가 선도하면 되는 거 아니냐면서 말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생각 못하신 게 있어요. 수술실 CCTV라는 게 다른 나라들이 전부 멍청해서 미처 생각해내지 못한 그런 획기적인 방법이 아니라는 겁니다.
미국이나 캐나다 같은 곳에서도 대리 수술은 물론 수술실에서 의료진끼리 환자 뒷담화를 하는 등 문제가 똑같이 있었어요. 그런데 그 친구들은 왜 수술실 CCTV 설치 법안을 통과시키지 않았을까요. 미국 의원들이 바보거나, 뭐 의사 집단한테 로비 받아서 통과 안 시켰겠습니까? 아니에요. 환자들의 사생활 보호와 효용성에 문제가 있어서 그런 겁니다. 미국에서 대리수술 문제가 생기면 그 병원에 재앙에 가까운 징벌적인 손해배상을 가해서 병원을 망하게 만든단 말이에요. 반면 우리나라는 솔직히 수술 수가가 너무 낮아서 불법 PA 없이는 수술을 못 할 지경입니다.

결론적으로, 그럼 그냥 이대로 두자는 이야기냐? 아닙니다.
환자의 알몸 노출 말고는 별다른 기능이 없는 CCTV 말고 더 좋은 방법을 찾으려 노력해야죠. 캐나다는 CCTV 대신 수술실 블랙박스로 의료진의 대화나 환자 상태를 자동으로 기록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영상 없이 소리만 녹음하고 수술 중 쓰이는 각종 기계에 붙어있는 신호 데이터를 수집 하는 겁니다. 영상 촬영이 안 되니까 프라이버시 문제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고, 환자 상태 체크도 CCTV보다 훨씬 더 정확한 기록이 가능합니다.
그래서 더 의아합니다. 왜 이재명 지사와 신현영 의원은 그렇게 CCTV가 아니면 어떤 해결방법도 없는 것처럼 구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다는 겁니다. CCTV를 꼭 설치해야만 하는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 건가요?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2020년 7월 수술실 CCTV 의무 설치 관련 간담회에서 CCTV 설치 의무화의 중요성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2020년 7월 수술실 CCTV 의무 설치 관련 간담회에서 CCTV 설치 의무화의 중요성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미 CCTV 설치를 마케팅 포인트로 삼는 병원들이 있습니다. 본인 알몸이 유출될지도 모르는 찜찜함을 무릅쓰더라도, 그런 곳에서 수술을 받겠다면 누가 뭐라고 하겠습니까?
그러나 의무화는 다릅니다. 모든 병원이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합니다. 촬영에 동의하지 않는 환자는 대체 어디에 가야 합니까. 죽든지, 내 알몸을 영상으로 남기든지 둘 중에 하나만 선택해야 합니다. 촬영은 환자의 선택이라고요? 카메라가 수술실에 달린 상태에서는 불안에 떨 수밖에 없습니다. 안 찍는다고 해놓고 몰래 찍으면 어떻게 하나요? 오히려 기록에 남지 않기 때문에, 유출 여부를 확인하기 어려울 겁니다. 그렇게 내 알몸 영상이 유출되면 누가 책임을 집니까? 나라에서 지나요? 아니면 이 지사랑 신 의원이 반반씩 나눠서 책임질 생각입니까?

의료사고나 대리수술 방지를 위한 수많은 방법이 있는데 왜 이런 문제투성이에 범죄에 이용당할 우려만 있는 CCTV에 꽂힌 겁니까. 블랙박스는 의사들도 찬성하고, 수술실 입구 CCTV 설치도 괜찮다고들 하는데 말입니다.

사실 대리수술은 의사들이 먼저 고발합니다. 대부분의 대리수술은 의사가 아닌 PA나 의료기기 기사가 하기 때문입니다. 의협에서 의사 면허 안 뺐고 솜방망이 처벌을 하기 때문에 고쳐지지 않는다고요? 무슨 소리입니까. 면허는 보건복지부 말고는 빼앗을 수 있는 권한이  없어요. 보건복지부가 애초에 강력하게 처벌했으면 그만인 이야기입니다.

개인 사생활 침해하는 무서운 발상 

의사들이 헛짓거리 하는 게 무서워서 CCTV를 꼭 달아야겠다는 분들. 그렇다면 당신 직장, 당신 책상 바로 앞에도 CCTV를 다십시오. 아이들은 어떻게 믿어요. 학교도 교실마다 다 달아야지요. 학교폭력 해결하려면 달아야 하지 않을까요? 이게 대리수술만큼 심각한 일 아닌가요?

직장 갑질, 성희롱, 직장 내 괴롭힘. 전부 CCTV만 달면 모든 게 해결됩니다. 아예 고프로를 이마에 달고, 서로 감시하고, 일거수일투족을 전부 기록합시다. 전 국민이 다 달면 범죄율도 뚝 떨어질 테니 가정폭력도 왕따도 다 사라질 겁니다. 완전히 천국 그 자체네요. 사생활? 그런 게 어딨습니까. 의사나 환자 프라이버시를 그런 식으로 취급할 거면, 똑같이 다 내려놔야 하는 게 사리에 맞는 일 아닐까요?
설마 나의 사생활은 보호받아야 하고 남의 사생활은 침해해도 된다는 입장은 아니시겠지요?

원래 정책이라는 건 서로 충돌하는 가치에 대해 접점을 찾아가는 과정 아닙니까. 지금처럼 한편의 사생활과 의료의 질, 다른 한편의 대리수술 같은 범죄가 충돌하는 경우 좋은 해결책을 모색하는 게 아니냐고요. 더 좋은 방법이 있다면 그걸 택하는 게 맞지 않겠습니까? CCTV를 불변의 정의로 상정하고, 반대하면 예비 범죄자에 기득권 프레임 거는 게 무슨 놈의 정치고 정책입니까?

마지막으로 수술하는 의사들 한테 자꾸 이런 거 들이밀면. 누가 외과 의사 하겠습니까? 지금도 저수가 때문에 턱없이 부족하고 사람을 살리는 사명감만으로 택하는 직업이 된 지 오래입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왜 자꾸 이런 짓을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틈만 나면 적폐몰이 하고 의사들 기득권 프레임 씌워서 공격하면, 표에 좀 도움 됩니까? 정말 그래요? 특히 신 의원은 비록 외과의는 아니지만 본인도 의사면서 그렇게 하고 싶으신가요? 정말 답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