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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비디아의 ARM 인수 반대한 빅테크…이유는 '반도체 독립'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달 13일 독일 베를린의 테슬라 공장을 살펴보고 있는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AFP=연합뉴스]

지난달 13일 독일 베를린의 테슬라 공장을 살펴보고 있는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AFP=연합뉴스]

빅테크 기업의 '반도체 독립 선언'이 거세다. 애플·테슬라·아마존·구글 등 미국 기업뿐만 아니라 바이두와 같은 중국 기업까지 반도체 독자 개발에 나서고 있다.

빅테크 업체가 자체 반도체 개발에 나서는 것은 우선 차별화를 통한 경쟁력 강화가 가장 큰 이유다. 인텔 등이 만드는 보편적인 비메모리 반도체가 아닌 자사 제품에 특화한 지능형반도체(PIM) 개발에 힘을 쏟고 있다.

경영 컨설팅업체 액센추어의 시드 알람 글로벌 반도체 책임자는 미 CNBC 방송에 “자사 앱에 적합한 반도체를 원하는 빅테크가 점점 늘고 있다”며 “맞춤 제작된 칩으로 소프트웨어(SW)와 하드웨어의 통합을 쉽게 제어하고 경쟁 업체와 차별화도 꾀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비용과 에너지 소비를 줄이기 위한 목적도 있다. 영국의 팹리스(반도체 설계업체)인 다이얼로그세미컨덕터의 러스 쇼 전 사외이사는 “(빅테크의) 맞춤형 칩은 더 적은 비용으로 기존 칩보다 뛰어난 처리성능을 보인다”며 “스마트폰이나 클라우드 서비스 제품에서 에너지(전력) 소비를 줄여주는 것도 장점”이라고 분석했다.

리옌훙(오른쪽) 바이두 CEO가 지난달 18일 열린 바이두 연례 컨퍼런스에서 시제품으로 공개한 '로보카'에 탑승해있다. 바이두는 이날 자체 AI 칩 '쿤룬' 2세대의 양산 사실을 공개했다. [사진 바이두]

리옌훙(오른쪽) 바이두 CEO가 지난달 18일 열린 바이두 연례 컨퍼런스에서 시제품으로 공개한 '로보카'에 탑승해있다. 바이두는 이날 자체 AI 칩 '쿤룬' 2세대의 양산 사실을 공개했다. [사진 바이두]

맞춤형 수요뿐만 아니라 더 절박한 이유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세계적인 반도체 부족 현상이다. 시장조사업체 포레스터의 글렌 오도넬 연구 이사는 “팬데믹으로 인한 반도체 공급에 차질이 빚어지며 빅테크는 자신들의 혁신 속도가 반도체 제조업체의 일정에 얽매여 있다는 사실에 한계를 느끼며 자체 칩 개발에 나선 것"이라고 말했다.

빅테크의 자체 반도체 개발에는 가속이 붙고 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지난달 19일 자사 ‘인공지능(AI) 데이’ 행사에서 독자 설계한 자율주행 신경망 처리 슈퍼컴퓨터 ‘도조’를 운용할 수 있는 AI 반도체 'D1'을 공개했다.

바이두도 자체 개발한 AI 반도체 칩인 ‘쿤룬(崑崙)’의 2세대 모델을 대량 생산하고 있다고 지난달 18일 발표했다. ‘쿤룬2’는 클라우드 기반 산업용 AI ’바이두 브레인‘에 탑재될 예정이다.

애플이 지난해 11월 공개한 자체 반도체 M1. [애플 홈페이지 캡처]

애플이 지난해 11월 공개한 자체 반도체 M1. [애플 홈페이지 캡처]

애플과 구글은 중앙처리장치(CPU) 반도체 개발에 힘을 쏟고 있다. 애플은 지난해 11월 인텔의 x86 계열 CPU 대신 자체 개발한 M1 칩을 사용하겠다고 선언했다. 이후 신형 맥북·아이패드에 M1 칩을 탑재하고 있다.

구글은 자체 스마트폰 AP ‘텐서’를 오는 10월에 출시할 자사 픽셀6 스마트폰에 넣을 계획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최근 “구글이 2023년부터 자사 크롬 노트북과 태블릿에 자체 개발한 CPU를 탑재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아마존도 그래비톤·인퍼런시아 등 독자 개발한 서버용 프로세서나 AI 반도체를 사용 중이다.

반도체 독립에 열 올리는 빅테크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반도체 독립에 열 올리는 빅테크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다만 빅테크의 ‘반도체 독립 행보’엔 한계가 있다. 이들이 독자 반도체를 만들 수 있었던 건 영국 반도체 설계회사인 암(ARM)이 제공한 기본 설계 플랫폼 덕분이다. 빅테크는 라이선스 비용만 내고 ARM의 설계도를 응용해 자체 반도체를 개발했다.

하지만 미국 반도체 회사 엔비디아가 ARM를 인수하면서 이런 방식의 자체 반도체 생산에 제동이 걸릴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엔비디아가 경쟁사로 여기는 빅테크와 ARM의 거래를 막을 수 있어서다. 빅테크 기업이 일제히 엔비디아의 ARM 인수에 반대하는 이유다.

영국 텔레그래프는 최근 “머스크가 반도체 업계의 경쟁 제한 우려를 들며 엔비디아의 ARM 인수에 반대했다”고 보도했다. 아마존과 구글·마이크로소프트 등도 인수에 반발하고 있다. 이들은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 등 경쟁 당국에 이런 의사를 적극적으로 표명하고 있다.

설계도를 확보해도 빅테크의 반도체 독립은 쉬운 일은 아니다. 자체 생산 기반이 없는 만큼 대만의 TSMC나 삼성전자 같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업체) 눈치도 봐야 한다. TSMC와 같은 규모의 공장을 지으려면, 약 100억 달러의 비용이 들어갈 뿐 아니라 시간도 오래 걸린다. 오도넬 이사는 "TSMC나 인텔 등에 생산을 맡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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