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5년안에 잡는다”는 인텔CEO의 깜놀 반전 어린시절

중앙일보

입력 2021.09.07 16:04

인텔의 CEO 팻 겔싱어. 2014년 사진이다. 로이터=연합뉴스, 무단전재 배포 금지

인텔의 CEO 팻 겔싱어. 2014년 사진이다. 로이터=연합뉴스, 무단전재 배포 금지

팻 겔싱어. 삼성전자 등 주식투자에 관심있다면 찾아봤음직한 이름이다. 1961년생인 겔싱어는 인텔의 최고경영자(CEO)다. 올해 1월 취임하면서 삼성전자뿐 아니라 대만의 TSMC 등을 공개 거론하며 공격적 경영을 펼쳐왔다. 그런 그를 영국의 권위있는 경제 전문지 이코노미스트가 6일(현지시간) 집중조명했다. “겔싱어의 전략은 성공한다면 6000억 달러(약 694조원)에 달하는 (반도체) 시장의 판도를 바꿀 것”이라며 “급속히 디지털화해가는 글로벌 경제를 개선할 수도 있다”고 평하면서다.

겔싱어의 취임 일성은 “인텔이 돌아왔다”로 요약된다. “미국이 돌아왔다”며 백악관에 입성한 조 바이든 대통령과 취임 시점과 메시지가 비슷하다. 호흡도 척척이다. 바이든은 반도체 독립을 목표로 선언했고, 겔싱어는 “(삼성과 대만의 TSMC 등) 아시아에 (유리하게) 기울어진 운동장을 되잡아야 한다”며 워싱턴 로비 활동에 적극적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달 “겔싱어가 지난달 바이든 정부 인사들과 만나 공장 증설을 논의했고 보조금도 받게 됐다”고 전했다.

인텔의 드론 기술을 활용했던 2018년 평창 겨울올림픽 개막식. [중앙포토]

인텔의 드론 기술을 활용했던 2018년 평창 겨울올림픽 개막식. [중앙포토]

겔싱어는 과거의 영광을 되찾겠다며 삼성전자의 주력인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foundry) 진출을 일찌감치 선언했다. 이코노미스트가 주목한 겔싱어의 전략은 삼성엔 긴장의 대상인 셈. 실제로 그는 지난 5월 CNBC와 인터뷰에서 “TSMC와 삼성전자를 앞으로 5년 내 따라잡겠다”고 선언했다. 삼성에 대한 인텔의 도전장과 그 경제정책적 함의는 아래 기사에서 자세히 볼 수 있다(https://www.joongang.co.kr/article/240194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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겔싱어의 승부수는 그의 적극적 성격에서 기인한다. 미 경제전문지 포천(Fortune)은 그의 취임 소식을 전하며 “겔싱어는 보이스카웃 같은 이미지에서 탈피하고 싶어했다”고 전했다. ‘바른생활 사나이’ 이미지를 떨치기 위해 그가 했던 일은? 문신이다. 그는 VM웨어 CEO였을 당시 임직원들에게 “내 의지를 더 강하게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이 뭘까 하다, 바로 시내로 가서 ‘나쁜놈(Bad-Ass) 타투샵’에 갔다”고 말했다고 한다. 포천은 “겔싱어의 부인은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지만 어쨌든 겔싱어는 강력한 인상을 주는 데 성공했다”고 전했다. 영구 타투는 아니었다는 후문이다.

인텔 로고. 로이터=연합뉴스

인텔 로고. 로이터=연합뉴스

미국판 고졸신화, 특이한 어린시절  

그의 적극적 성격은 인텔 입사 후에도 빛을 발했다. 그는 인텔에 품질관리 기술자로 입사했다. 스무살도 채 안 된 18세 신입사원으로, 당시에 최종학력이 고교 졸업이었다. 그러다 반도체 관련 기술을 공부할 필요를 느껴 인근 샌타클라라대학에 진학해 주경야독으로 우등으로 졸업했고, 이어 명문 스탠퍼드대에서 컴퓨터공학으로 석사를 받았다. 이후 그는 인텔 프로세서 핵심 개발자로 입지를 굳히며 30년 이상 일했다. 영원한 ‘인텔맨’으로 남으리란 예상을 깨고 그는 2009년 EMC 최고운영책임자(COO)로, 이후엔 VM웨어 CEO로 이직한다. 그사이 인텔의 호시절은 가고, 위기의 늪에 빠진 인텔은 겔싱어에게 SOS를 쳤다. 그렇게 그는 올해 1월 CEO로 금의환향했다.

흥미로운 건 겔싱어의 어린 시절이다. 그는 펜실베이니어주 토박이로 나고 자랐는데, 현대 문명과 자발적으로 단절하고 과거의 전통을 지키며 살아가는 기독교 단체인 아미쉬(Amish) 대가족의 일원이었다. 그가 미국 컴퓨터역사박물관(Computer History Museum)과의 2019년 데이터베이스 구축용 인터뷰에서 직접 밝힌 바다. 정통 아미쉬 가족들은 자동차 대신 마차를 모는 등, 미국 내에서도 독특한 공동체로 꼽힌다. 현대문명을 거부한 이들의 후손이 현대문명의 최첨단 산업을 이끌고 있는 것이다. 그의 아버지가 10남매 중 아홉번째여서 농장을 물려받는 행운을 누리지 못했고 그 덕에 그는 도시에서 일자리를 구해야 했다고 한다. 그 일자리가 인텔이었다.

미국 아미쉬 마을의 사진. 지난달 17일(현지시간) 촬영된 사진이다. AP=연합뉴스

미국 아미쉬 마을의 사진. 지난달 17일(현지시간) 촬영된 사진이다. AP=연합뉴스

그는 당시 인터뷰에서 “동이 트기도 전에 가축우리로 가서 먹이를 주는 게 내 주요 임무였는데, 뒷다리에 채이지 않으려고 무척이나 조심했던 기억이 있다”며 “인텔에 처음 합격 통지를 받았을 때도 부모님께 ‘전 도시로 안 가요’했었다”며 웃었다. 그런 그가 반도체 산업의 주요 승부사로 삼성전자에 진검 승부를 청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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