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엿가락과 담배 연기-박정근 개인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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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부터 헷갈렸다. 도무지 접점을 찾을 수 없는 물건 둘. 엿가락과 담배 연기.

한 노인의 4·3과 6·25를 기억하는 방법

01. 여자생각 안나게 하는 담배_pigment print_100X,140cm_ⓒ 박정근_2021

01. 여자생각 안나게 하는 담배_pigment print_100X,140cm_ⓒ 박정근_2021

안압지_pigment print_100X,140cm_ⓒ 박정근_2021

안압지_pigment print_100X,140cm_ⓒ 박정근_2021

10년 넘게 제주도에 살며, 오가며 바다와 해녀, 4·3사건 등 자연과 사람, 역사를 사진과 영상으로 기록해 온 박정근이 서울에서 개인전을 열고 있다.

02. 잃어버린 손가락_pigment print_100X,140cm_ⓒ 박정근_2021

02. 잃어버린 손가락_pigment print_100X,140cm_ⓒ 박정근_2021

03. 예미산_pigment print_100X,140cm_ⓒ 박정근_2021

03. 예미산_pigment print_100X,140cm_ⓒ 박정근_2021

‘엿가락과 담배 연기’는 4·3사건 취재 중 만난 1931년생 오태경 할아버지의 기억 속에서 느닷없이 불려 나왔다. 4·3사건의 피해자인 할아버지는 동시에 6·25전쟁 참전용사다. 국가폭력의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나라를 지킨 참전 용사다. 제주 출신으로 한국 현대사의 아픈 굴곡의 한가운데를 온몸으로 헤쳐 나온 그의 기억 속에 두 사건이 혼재돼 있다는 사실을 작가는 발견했다. 그리고 4·3사건을 덮기 위해 6·25전쟁에 뛰어들었던, 끔찍한 비극 속에서 스스로 위로가 되었던 작고 사소한 것들에 대한 기억에 그는 특별한 애착을 보였다. 끔찍하고 비참했던 기억을 그는 필사적으로 인간적이고 일상적인 기억으로 치환하려는 듯 보였다. 엿가락과 담배 연기를 통해.

04. 영웅_pigment print_100X,140cm_ⓒ 박정근_2021

04. 영웅_pigment print_100X,140cm_ⓒ 박정근_2021

05. 세상에 없는 나무_pigment print_100X,140cm_ⓒ 박정근_2020

05. 세상에 없는 나무_pigment print_100X,140cm_ⓒ 박정근_2020

작가는 제주도는 물론 강원도 산골과 경주 등 4·3사건과 6·25전쟁 도중 할아버지의 발길이 닿았던 역사의 현장을 되밟아 보고, 기억의 매개체가 될 만한 것들을 수집하고 기록했다. 격전지의 돌멩이와 화랑 담배, 녹슨 탄피와 바람구멍이 숭숭 뚫린 엿가락, 인민군이 버리고 간 돈뭉치를 발견했던 동굴과 무심한 듯 말없이 자리를 지키는 나무 등.

06.동굴_pigment print_100X,140cm_ⓒ 박정근_2021

06.동굴_pigment print_100X,140cm_ⓒ 박정근_2021

“이번 작업은 한 노인의 삶과 기억을 되짚으며 발견한, 우리의 의식 속에 각인된 한국 근현대사의 모호성에 대한 탐구”라는 작가는 “우리 주변의 모든 사물과 사건, 현상은 얼핏 견고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모호하게 뒤엉켜 있어 명확히 경계를 구분 지을 수 없다. 역사도 기억도 마찬가지”라고 말한다.

박정근/

박정근/

엿가락과 담배 연기는 작고 사소하지만, 할아버지의 삶을 지탱하는 위대한 일상이었다.

서울 종로구 서이갤러리, 9월 20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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