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지리뷰] "중고 거래보다 이웃이 더 좋아" MZ세대 기획자 감동시킨 이 서비스

중앙일보

입력 2021.09.07 12:00

국내 유수의 지도 앱에서 ‘우리 동네 도장집’을 검색했다. 스마트한 AI는 태권도장을 안내해줬다. 이 순간 내가 정말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우리 동네를 잘 아는 이웃들의 깨알 정보다. 시대가 바뀌고, 기술이 발달해 우주여행을 한다지만 ‘사람’을 완벽히 대신할 순 없다. ‘당근마켓’은 그 지점을 정확히 채워주는 따뜻한 서비스다. 중고물품 거래 플랫폼에서 출발해 순식간에 대한민국 사람의 일상에 파고든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얼마 전 시리즈D 투자를 마무리 짓고 기업가치 1조원 이상의 유니콘 기업이 되었다는 당근마켓. 이제 더 견고한 이웃과 동네를 만들겠다는 이들의 미래가 더 궁금해진다.

당근마켓의 '동네생활'

동네 기반 커뮤니티 서비스 당근마켓. 단순 중고거래 플랫폼을 뛰어넘어 위성위치확인시스템을 도입해 지역 커뮤니티를 구축한 점이 성장 포인트다. [사진 당근마켓]

동네 기반 커뮤니티 서비스 당근마켓. 단순 중고거래 플랫폼을 뛰어넘어 위성위치확인시스템을 도입해 지역 커뮤니티를 구축한 점이 성장 포인트다. [사진 당근마켓]

반갑네요, 당근마켓. 어떤 부분에 주목했나요.

‘당신 근처의 마켓’ 너무 익숙하죠. 2015년 7월 판교를 중심으로 시작한 당근마켓은 지금 지역 기반의 커뮤니티 서비스로 확장하고 있어요. 2018년 1월 전국으로 서비스 지역을 확장했고, 가입자 수는 2000만 명을 넘어섰죠. 주간 이용자 수만해도 1000만 명이 넘어요. 지난해엔 글로벌 버전인 '캐롯'이 영국·미국·캐나다에 진출했답니다.
주목하고 싶은 부분은 ‘동네 생활’ 기능의 기회와 가치입니다. 지금 ‘이웃을 소개해주세요’란 부탁을 받는다면 떠오르는 사람이 있나요? 나는 유년 시절을 소도시에서 보냈어요. 맞벌이하는 부모님이 바쁘시면 옆집 할머니가 대신 나와 동생의 식사를 챙겨주셨어요. ‘이웃’ ‘동네’란 말이 너무 자연스러웠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아 안타까워요. 도시가 커지고 거주 형태가 달라지더라도 이웃의 필요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당근마켓은 우리에게 ‘당신 근처에 당신의 도움(물건)이 필요한 사람이 있어요’ ‘동네 철물점 위치를 알려줄 이웃이 있어요’란 메시지를 줘요. 나에게 이웃이 있다는 걸, 나도 누군가에게 좋은 이웃이 될 수 있다는 걸 알려줍니다.

동네에서 이웃과 중고 물건을 직거래 하는 서비스에서 출발한 당근마켓. 지금은 지역 중심의 이커머스, 커뮤니티 서비스까지 영역을 확장했다. [ 사진 이혜원, 당근마켓]

동네에서 이웃과 중고 물건을 직거래 하는 서비스에서 출발한 당근마켓. 지금은 지역 중심의 이커머스, 커뮤니티 서비스까지 영역을 확장했다. [ 사진 이혜원, 당근마켓]

사실 동네생활 분야에서 당근마켓은 후발주자잖아요. 다른 회사 대비 어떻게 차별화했나요.

개인이 중고거래를 하던 플랫폼으로는 번개장터, 중고나라, 온라인 카페 등이 있었어요. 이들과는 다른 차별점이자 성공 포인트는 ‘이유 있는 좁힘’과 그로 인해 형성된 신뢰와 배려라고 생각해요. 사실 온라인은 지역·시간의 경계를 허물지만, 당근마켓은 역발상으로 소통하는 지역을 좁혔어요. 전혀 모르는 사람이지만 내가 잘 아는 공간(동네)에 같이 사는 사람을 만나기 때문에 신뢰와 배려심이 생길 수밖에 없어요. ‘우리는 지역 기반 커뮤니티예요’라고 구호도 내세우지 않아요. 정기적으로 GPS 인증을 해서 동네를 확인하고, 이용자별 ‘매너온도’라는 위트 있는 거래 매너 그래프를 보여줘요. 거래 후 인사 메시지 발송도 그렇고요. 상대를 배려하는 여러 장치 덕에 따뜻한 서비스가 됐어요.

중고 거래 외에도 당근마켓을 많이 이용하나요.

처음 알게 된 건 2019년이었어요. 과천에 살고 강남에서 일하던 때였는데 두 동네에 올라오는 물건이 서로 달랐어요. 과천엔 아기용품이, 강남엔 패션 잡화가 많았어요. 그땐 단순히 ‘이 서비스 재밌네’ 정도였어요. 본격적으로 당근마켓에 빠진 건 올 3월 ‘동네생활’ 덕분이에요. 인감도장을 잃어버려 새로 만들어야 했는데 도장 파는 집을 아무리 찾아봐도 없는 거예요. 필요할 때 찾으면 안 보이는 것들 있잖아요. 회사 근처에서 찾아볼까 싶었지만 이직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쪽 지리도 잘 몰랐어요. 평소 자주 쓰는 지도 어플에서 ‘도장집’을 검색하니 태권도 도장이 나오더라고요. 문득 당근마켓 동네 생활이 생각났어요. 그곳에서 도장을 검색하니 나와 같은 마음으로 질문을 남긴 사람이 있더라고요. 그 게시글 덕분에 점심시간에 회사 근처에서 도장을 만들 수 있었어요. ‘나에게 지금 필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특별함이 확 와 닿는 순간이었어요. 정보와 함께 긍정적 감정을 모두 선물 받았다고 할 수 있어요.

좋았던 부분은요.

장점은 동네 기반이란 확실한 서비스 정체성, 쉬운 이용법과 디자인, 이용자들이에요. 당근마켓이 핫한 서비스로 떠오를 때 한편으로 궁금했어요. 동네 기반으로 서비스하면 확장 폭이 좁아 곧 서비스를 넓히지 않을까, 사용자가 많아도 중고거래 수수료가 없이 수익을 어떻게 낼까, 개인당 지불할 수 있는 비용 규모가 적은 지역사업자 광고 시장을 생각할 때 곧 대기업 광고를 받지 않을까. 그런데 이런 모든 것을 ‘동네 기반’이란 철학에 맞춰 진행하더군요.
예를 들어 ‘내 근처’란 메뉴를 보면 동네 가게들과 주민을 이어주는 ‘쿠폰북’이나 ‘맛집’ 등의 서비스가 있어요. 외부 기업과 협업도 동네 기반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편의점과 진행합니다. 당근마켓 서비스 성격에 맞고 고객이 원하는 방향으로 협업하는 거죠. 또 학생·직장인부터 할머니까지 누구나 편히 이용할 수 있도록 이용법과 디자인이 간편해요. ‘당근이’라는 귀여운 캐릭터 중심으로 밝은 주황색을 사용하고, 친절하고 쉬운 문구를 사용해요. 누구나 환영받는 느낌을 주죠.

이용자는 거래하고 싶은 상품을 게시글 형태로 올리고, 구매를 희망하는 이용자와 채팅을 통해 소통한다. 지난 겨울 옷장 정리를 하면서 당근마켓을 처음 이용했다. [사진 이혜원, 당근마켓]

이용자는 거래하고 싶은 상품을 게시글 형태로 올리고, 구매를 희망하는 이용자와 채팅을 통해 소통한다. 지난 겨울 옷장 정리를 하면서 당근마켓을 처음 이용했다. [사진 이혜원, 당근마켓]

서비스 기획자로서 감탄한 게 있다고요.

이용자마다 보는 화면이 다른 거 아세요? 중고거래나 동네 생활 등 큰 메뉴는 같지만요. 내가 클릭해 본 상품과 글, 거주 지역, 관심사 설정에 따라 각자에게 더 필요한 내용을 추천해줍니다. 어떻게 알게 되었냐면 각자 사는 지역이 다르고 결혼 여부가 다른 친구들과 우연히 서로 당근마켓 화면을 열어놓고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어요. 그때 보니 서로 보이는 화면이 다르더라고요. 친근하고 편한 서비스 화면 뒤에는 최적화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기획자와 개발자가 엄청 고민했다는 걸 알 수 있었어요.
‘동네’의 범위도 지역마다 달라요. 이 점이 궁금해 당근마켓 서비스 기획자에게 물으니 동네의 지형, 대중교통 상황, 이용자의 비율을 종합해 범위를 설정한다고 하더군요. 마치 대동여지도 그리듯 당근마켓만의 이웃지도를 자체조사를 하면서까지 고민하고 그려낸 거죠. 아무리 같은 5km 거리라도, 강남역에서 사당은 2호선 지하철로 15분 이내 갈 수 있고, 강남역에서 이태원은 한강을 건너 버스로 최소 30분은 걸려요. 내 동네란 느낌이 들지 않아요.
또 당근마켓에만 있는 ‘매너온도’라는 개념도 재밌어요. 매너온도는 다른 이용자로부터 받은 칭찬과 후기, 그리고 신고받은 내역 등을 종합해 만들어져요. 이 지표는 간접적으로 ‘매너를 지키는 이웃이 되어주세요’란 메시지를 전해요. 또 이걸 통해 상대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고요. 매너 온도는 1년이 지난 피드백은 반영하지 않아요. 과거엔 시간 약속을 잘 지켰지만, 지금은 아닐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비매너 평가는 당사자에게 바로 노출하지 않아 부정적 평가에 대해선 철저하게 익명성을 보장해줘요. 이용자가 걱정할 수 있는 부분까지 세심하게 고려하고 있어요.

동네 사람만 알 수 있는 우리 동네의 세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사진 이혜원, 당근마켓]

동네 사람만 알 수 있는 우리 동네의 세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사진 이혜원, 당근마켓]

당근마켓의 서비스 철학에 공감하는 부분은요.

유튜브 채널 ‘네고왕’에 당근마켓을 다룬 적이 있어요. 프로그램 진행자인 방송인 황광희가 ‘거주 지역과 거래 지역이 다른 사람을 위해 지역을 풀어달라’고 요청하자, 당근마켓 직원은 ‘저희는 동네 이웃이 소통하는 서비스를 지향합니다’라며 거절하죠. 황광희는 이에 굴하지 않고 대표에게 같은 요청을 했지만, 역시 같은 대답을 듣죠. 그냥 웃고 넘길 수 있는 짧은 에피소드를 보며 이 서비스가 지키려는 철학이 무엇이고, 또 모든 직원이 하나가 되어 그것을 추구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중고 거래나 동네 소식을 볼 수 있는 지역을 최대 2개까지 선택할 수 있다. 당근마켓에서 정의하는 동네의 범위는 지형, 대중교통 상황, 이용자의 비율에 따라 달라진다. [사진 이혜원, 당근마켓]

중고 거래나 동네 소식을 볼 수 있는 지역을 최대 2개까지 선택할 수 있다. 당근마켓에서 정의하는 동네의 범위는 지형, 대중교통 상황, 이용자의 비율에 따라 달라진다. [사진 이혜원, 당근마켓]

이용 만족도는 몇 점일까요. 

10점 만점에 11점을 줄 수 있나요. 만족도 점수라는 건 서비스에 대한 현재까지의 경험으로 점수를 주는데 당근마켓은 앞으로 서비스를 어떻게 전개해갈지 미래에 대한 기대까지 보태서 11점을 주고 싶어요.

바라는 점이 있을까요.

당근마켓을 이용하면 15년도에 미국에서 인턴십하던 때가 떠올랐어요. 스탠퍼드대학교에서 공부하는 친구를 만났는데 시간과 재능을 나누는 비즈니스 모델을 연구하고 있다고 했어요. 당시 내가 상상할 수 있는 모델은 에어비앤비와 우버 정도였는데, 이를 뛰어넘는 모델을 구상하는 게 신기했죠. 당근마켓은 이 개념을 실행하는 곳이라고 생각해요. 이미 금전적 거래 그 이상의 가치를 나누는 장을 만들 준비를 하고 있지 않을까요. 그래서 이들이 그리는 미래가 더 궁금해집니다.

민지리뷰는...
자신의 가치관과 세계관이 소비로 표현되는 시대. 소비 주체로 부상한 MZ세대 기획자·마케터·작가 등이 '민지크루'가 되어 직접 자신이 좋아하는 물건·공간·서비스 등을 리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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