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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조원 시장' 집사 자처하는 중국인들

중앙일보

입력

차이나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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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선전(深圳) 출신 반(闆)씨는 베이징에서 일하고 있는 ‘고양이 집사’다. 그는 “집이 작아 활발한 강아지를 키우기에 적합하지 않다”며 “매일 산책 시키는 등 해야할 일이 많은 강아지보다 고양이가 관리하기 쉬울 것 같다는 생각에 ‘집사’ 역할을 자처했다”고 말했다.

요즘 중국 대도시에서는 반씨와 같이 작은 셋집에서 혼자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이 대폭 증가했다.

[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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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대도시, 강아지보다 고양이가 대세

베이징에서 일하는 샤오린(小林)도 주변 동료들 중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이 부쩍 늘었다고 느꼈다. 심지어 혼자 사는 동료들은 반려동물로 고양이를 입양하기 위해 준비하는 중이란 사실에 깜짝 놀랐다. 그의 고향 둥베이(東北) 지역 소도시에서는 대부분 강아지를 키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고양이를 기르는 가정은 거의 없으며, 펫샵에서도 강아지와 관련된 상품이 대다수다.

샤먼(廈門)에서 펫샵 3곳을 운영하고 있는 쉬(徐)씨는 “요즘 대도시에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이 강아지를 키우는 사람보다 많다”고 밝혔다. 그가 소유한 가게에서는 고양이 용품과 강아지 용품을 모두 판매하고 있지만 최근 고양이 사료·간식·청결용품 등 고양이 용품이 훨씬 더 잘 팔리고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베이징에 있는 한 동물병원에서 근무하고 있는 점원도 “고양이 사료나 통조림이 잘 팔린다”고 귀띔했다.

상하이에 있는 고양이돌봄센터 관계자는 중국 현지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대도시에서 일하고 있는 젊은이들이 많아지며 이들 사이에서 고양이 양육이 늘고 있다”고 밝혔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요즘 MZ세대가 다른 연령층보다 고양이 기르는 것을 훨씬 선호한다는 것이다.

[사진 Radii Ch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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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도 좁고, 시간도 없지만 '외로우니깐' 동물은 키우고 싶어

이들이 강아지보다 고양이를 선택하는 이유는 생각보다 간단하다. 고양이는 산책할 필요가 없으며 강아지처럼 활동 반경이 넓지도 않기 때문이다. 앞서 소개한 반씨도 이와 같은 이유로 고양이를 기르고 있다.

그는 월세 4500위안(약 80만 원)을 내고 규모 35㎡에 불과한 원룸에 살고 있다. 좁은 주거 환경은 넓은 활동 공간이 필요한 강아지를 키우기에 적합하지 않다.

[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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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뿐 아니라 ‘시간’을 고려해도 마찬가지다. 상대적으로 고양이보다 강아지가 사람과 어울리기를 좋아한다. 그러나 일하기 위해 어렵게 베이징으로 상경한 이들에게 시간은 ‘금’과 같다.

반씨의 사례를 살펴보자. 그의 근무시간은 오전 9시에서 저녁 7시로 여느 직장인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자주 야근을 해 저녁 10시 퇴근은 기본인 점을 고려, 강아지 대신 고양이를 택했다. 손이 덜 간다는 이유에서다.

광저우(廣州)에서 골든 리트리버를 키우는 천(陳)씨는 중국 매체 란차이징(燃財經)과의 인터뷰에서 잦은 야근 때문에 강아지를 돌보기 어려운 점에 대해 호소했다. 그는 “(시간이 부족해) 자정에 강아지를 산책시킬 때도 있다”며 “매주 거의 이틀은 외근으로 집을 비우기 때문에 룸메이트나 친구에게 강아지 산책을 부탁할 때가 많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강아지를 키우는 이유는 ‘외로워서’라는 게 그의 답변이다.

중국 차량공유업체인 디디추싱(滴滴出行)이 2020년 10월 공개한 통계에 따르면 중국 1선 도시(베이징·상하이·광저우·선전) 직장인들이 야근 후 대중교통이 중단되는 경우가 많아 디디추싱과 같은 차량공유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 1선 도시 직장인들이 야근에 시달리고 있는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조사 결과다.

‘2020 중국 반려동물업계백서(2020年中國寵物行業白皮書)’에 따르면 2017년부터 중국 전역에서 고양이를 기르는 사람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2020년 중국 각 도시에서 고양이를 양육하는 비율은 2019년보다 10.2% 늘었다. 도시별로 살펴보면 1선 도시에서 고양이를 양육하는 사람이 강아지를 양육하는 사람보다 확연히 많은 반면, 2·3·4선 도시에서는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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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베이징, 상하이, 광저우에서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이 많았다. 세 지역에서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 비율은 각각 14.4%, 12.8%, 9.6%로 강아지를 키우는 사람 비율(각각 10.7%, 11.6%, 5.4%)보다 높은 편이다.

이러한 상황 속 중국 반려동물 시장규모도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중국 시장조사업체 아이미디어 리서치에 따르면 2019년 2212억 위안(39조 6169억 원)의 시장 규모에서 2020년 2953억 위안(52조 8882억 원)으로 증가했다. 이는 작년 동기 대비 33.45% 증가한 수치로 향후 2023년에는 5928억 위안(106조 1704억 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자본도 고양이를 포함한 반려동물 상품 시장에 몰리고 있다. 증권일보에 따르면 지난달 31일 기준 올해 반려동물 관련 소비 섹터에 28차례 펀딩이 이뤄졌다. 그중 7월 한 달에만 6차례가 몰린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7월 자금 조달에 성공한 ‘고양이가 온다(小貓來了)’는 고양이 사료 판매부터 간단한 진료와 돌봄 서비스까지 제공하는 고양이 전문 서비스 제공 업체다. 이 업체는 상하이, 선전, 광저우 등 1선 도시 중심으로 매장 확장에 나서고 있다. 중국 기업정보사이트 36kr에 따르면 각 매장 월 매출은 최고 약 60만 위안(1억 858만 원)으로, ‘고양이가 온다’는 성장 가능성을 눈 여겨 본 투자자로부터 러브콜을 받고 있다.

고양이 전문 서비스 제공 업체 ‘고양이가 온다(小 貓來了)’ 내부 모습. [사진 36kr]

고양이 전문 서비스 제공 업체 ‘고양이가 온다(小 貓來了)’ 내부 모습. [사진 36kr]

이 밖에도 고양이 상품을 전문적으로 생산하는 식품 브랜드 ‘유위(有魚)’, 고양이 생활용품 브랜드 ‘마오룽파이(毛絨派)’도 자본 시장에서 환영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터넷 기업들도 이 시장에 주목하고 있다. 지난 7월 14일 징둥 자체 브랜드 징둥징자오(京東京造)에서는 두 종류의 고양이 사료를 내놓았다. 알리바바 산하 알리페이는 반려동물 보험, 반려동물 신분증 기능에 이어 지난 7월 15일 ‘반려동물 분실 방지’ 기능을 선보였다.

업계 관계자는 “고양이를 키우는 소비자가 강아지를 키우는 소비자보다 반려동물 제품에 더 돈을 쓰는 편”이라며 “캣타워, 자동 급수기 등 고가 제품 구매가 점차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고가제품 시장은 아직 걸음마 단계에 머물러 있는 상황이다. 란차이징이 조사한 내용에 따르면 고양이를 기르는 사람 대부분은 고양이 관련 상품에 매달 약 500위안(10만 원)씩 지출하고 있다. 값비싼 스마트 기기보다는 주로 사료나 간식, 배설물 관리 용품 등 소모품에 돈을 더 많이 쓰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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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중국 반려동물업계백서’에서도 고양이 식품(사료·간식·영양식) 소비가 전체 고양이 상품 소비에서 57.2%로 가장 높다고 지적했다.

다만 2019년보다 식품 소비 비중이 5.3% 감소한 반면, 장난감 등 고양이용품 소비는 1.2% 증가, 치료비는 6.1% 증가했다는 사실은 눈 여겨 볼 만 하다. 이는 반려동물 소비시장이 단순한 의식주 용품에서 고가의 스마트 제품으로 차츰 넘어가고 있다는 것을 반증한다.

업계는 반려동물을 키우는 소비자들 사이에서 한층 더 성숙한 문화가 자리잡고 있는 것으로 내다봤다. 단순하게 동물을 ‘키우는’ 게 아니라 ‘함께 사는 반려자’로 인식, 반려동물의 품격 있는 생활에 관심을 갖게 됐다는 분석이다.

한국에서도 반려동물에 대한 인식이 한층 더 성숙해지고 있다. 심지어 서울에서는 ‘반려인능력시험’이 진행되고 있다. 서울시와 반려동물 관련 업체가 손잡고 지난 2019년부터 시작된 이 시험은 자격 있는 반려인이 되도록 공부하는 기회를 마련하자는 취지에서 진행됐다. 시험 문제는 반려인이 꼭 알아야 할 내용이 영역별로 출제된다.

서울시 시민건강국장도 반려인능력시험 참여를 독려하며 “시 정부 차원에서 올바른 반려동물 문화를 전파하기 위해 시민이 동참할 수 있는 다양한 사업을 추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유로모니터 관계자도 “성숙한 반려동물 돌봄 문화를 동반한 질적 성장을 꾀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차이나랩 이주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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