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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언의 '더 모닝'] 이재명 시대의 예고편, 일산대교

중앙일보

입력

 안녕하세요? 오늘은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공공 정책(public policy)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지난 3일 일산대교 통행 무료화를 선언한 이재명 경기도지사. [뉴스1]

지난 3일 일산대교 통행 무료화를 선언한 이재명 경기도지사. [뉴스1]

13년 전인 2008년에 경기도 고양시 법곳동과 김포시 걸포동을 잇는 1.8㎞ 왕복 6차선의 일산대교가 완공됐습니다. 민간자본 1910억원과 경기도 예산 340억원이 공사비로 쓰였습니다. 1999년에 정부가 계획을 세울 때 민간자본에 의한 건설을 결정했습니다. 수혜자가 제한적이라 공공사업의 우선순위에서 한참 밀리는데 인근 지역 주민의 요구는 많아 유료 다리를 짓기로 했습니다. 나랏돈이 무궁하지는 않아서, 이것보다 시급히 해결할 게 많아서 그렇게 됐습니다. 대림산업 등 5개 건설사가 투자하고 30년간 운영권을 갖는 조건으로 사업이 시작됐습니다.

처음에는 통행료로 1000원(소형차 기준)을 받았습니다. 현재는 1200원입니다. 개통 때부터 요금 논란이 있었습니다. 다른 한강 다리들은 다 무료인데 왜 이 다리를 건널 때는 돈을 내느냐는, 또는 요금이 너무 비싸다는 불만이 꾸준히 제기됐습니다. 이 다리를 이용해 출퇴근하는 사람은 한 달에 5만∼6만원이 드니 부담이 제법 되는 게 사실입니다. 동네 다리 건널 때 서울 사람은 돈 안 내는데, 경기도 사람은 왜 돈을 내느냐는 볼멘 소리가 나왔습니다. 차별이라고 합니다. 그런 심정이 드는 것, 충분히 이해됩니다.

하지만 애초에 이 다리는 수혜자가 보편적이지 않다는 전제로 ‘수익자 부담’의 민자 사업으로 진행됐습니다. 교통량 분산으로 혼잡을 줄여 수도권 생산성을 높인다는 뜻에 따라 추가 건설이 계속 이뤄진 서울의 한강 다리와는 성격이 다릅니다. 일산대교는 개통 초기에 하루 통행량이 약 2만대였습니다. 지난해 평균은 하루 7만2000대(서울 한남대교의 약 3분의 1)입니다. 주 이용자는 김포 신도시와 일산 신도시 사이를 오가는 사람입니다. 고양ㆍ김포ㆍ파주시 주민 외의 이용객은 많지 않습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지난 3일 일산대교 무료화를 선언했습니다. 이르면 다음 달부터 무료 통행이 이뤄진다고 합니다. 경기도와 고양ㆍ김포ㆍ파주시가 운영권을 인수해 무료로 개방하겠다는 것입니다. 이 다리를 자주 이용하는 사람은 당연히 환영합니다. “역시 이재명”이라는 칭찬이 나옵니다. 누이 좋고, 매부 좋고 입니다.

그런데요, 생각해 볼 문제가 있습니다. 현재 일산대교 운영권은 국민연금공단이 보유 중입니다. 2009년에 약 2000억원을 주고 권리를 샀습니다. 연 8%의 수익이 보장된 사업입니다. 통행료 수입이 그에 미치지 못하면 경기도가 보조(지난해에는 7억 3900만원)를 해주게 돼 있습니다. 그러니 경기도와 3개 시가 2038년까지의 예정 수익을 포함한 운영권의 현재 가치에 맞는 대금을 치러야 공정한 거래(국민연금공단 입장에서)가 됩니다. 경기도와 3개 시가 수천억원을 국민연금공단에 건네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 돈은 어디서 나올까요? 경기도와 3개 시의 재정에서 마련해야 합니다. 경기도 주민들이 낸 세금(지방세)이 투입되는 것입니다. 평생 한두 번 그 다리를 건널까 말까인 화성, 양평, 안성 등지의 시민이 낸 세금도 쓰입니다. 경기도 전체 인구가 약 1300만 명이므로 1인당 몇만원 정도가 됩니다. 지방 재정에는 국세도 투입이 되니 전 국민이 조금씩 보태는 것이기도 합니다. 일산대교 이용자들이 내는 통행료를 대신 지불하는 셈이 됩니다.

대부분의 경기도민과 국민은 일산대교 무료화에 관심이 없습니다. 이재명 지사의 결정에 대한 불만도 없습니다. 당장 얼마씩을 내라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한두 가지 문제가 더 있습니다. 앞으로 민자 사업에 나서는 기업이 줄어들 가능성이 있습니다. 괜히 ‘악덕 업자’처럼 비치게 되고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갑자기 사업권을 내놓으라고 할지 모른다는 생각을 갖게 될 듯합니다. 그리고 국민연금공단에 정확히 셈을 치르고 운영권을 넘겨받을지도 지켜볼 일입니다. 만약 제값을 주지 않으면 국민의 노후 자금에 손을 대는 것이 됩니다.

이재명 지사의 ‘화끈한’ 정책에는 이런 일들이 깔려 있습니다. 선택은 국민의 몫입니다. 주민의 민원을 시원하게 처리한다고, 좀 더 공평한 세상을 만든다고 보는 유권자는 그를 지지할 것입니다. 반면 그런 일에 드는 돈이 과연 어디에서 나는 것인지, 나라를 이런 방향으로 이끌어도 되는 것인지를 생각하는 유권자는 시각이 다를 수 있습니다. 일산대교 무료화가 그 선택의 갈림길을 상징합니다.

중앙일보 사설은 이재명 지사가 대선을 의식해서 ‘선심 정책’을 펴는 것 아니냐고 묻습니다.

일산대교 무료화, 이재명 ‘지사 찬스’ 남용 아닌가

2000억으로 일산대교 운영권 회수 결정
국민연금공단, 손실 예상되는데도 침묵

국민연금공단이 지분 100%를 보유한 일산대교 운영권을 경기도와 고양·파주·김포시가 막대한 세금을 투입해 회수하고 10월부터 통행료를 무료화할 예정이어서 선심 정책이란 비판을 받고 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 측은 주민의 교통 기본권을 앞세우지만, 유력 대선주자가 지사직을 선거에 이용하는 이른바 ‘지사 찬스’를 쓴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 지사가 지난 3일 “도민의 교통 기본권 회복과 통행료 무료화를 위해 일산대교에 공익처분을 결정했다”고 발표하면서 논란이 촉발됐다. 공익처분은 공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지자체가 보상금을 지급하고 민간 사업자의 운영권을 회수하는 조치를 말한다. 고양시 법곳동과 김포시 걸포동을 잇는 길이 1.84㎞인 일산대교는 민간자본 등 1784억원이 투입돼 2008년 5월 개통했다. 2038년까지 운영권을 보유한 일산대교㈜가 2009년 국민연금공단에 지분을 모두 넘겼다.

그런데 한강 위에 건설된 교량 중에 유일하게 일산대교만 통행료를 받다 보니 이 다리를 출퇴근길에 이용하는 고양·파주·김포 일대 경기도민들은 그동안 무료화를 촉구해 왔다. 일산대교 통행료는 소형차 기준 1200원인데, ㎞당 652원이어서 인천국제공항고속도로(189원)보다 약 3배 비싸다.

경기도 측은 2000억원으로 추산하는 보상금의 50%를 경기도가, 나머지를 3개 시가 분담할 계획이다. 문제는 경기도와 3개 시가 공익처분을 내세워 일산대교 운영권을 회수하면서 막대한 세금을 쓴다는 점이다. 공익처분을 강행하면 사실상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민연금공단에 큰 손실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 더 문제다. 보상금 2000억원은 국민연금공단의 투자금과 2038년까지의 기대수익(약 7000억원)에 크게 못 미치기 때문이다.

국민연금공단이 공적 자산을 지키려는 의지가 있다면 이처럼 큰 손실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민사소송 제기 등 강하게 반발하는 것이 상식적이다. 하지만 국민연금공단 측은 침묵하고 있다. 공단의 책임자는 문재인 정부에서 기획재정부 2차관으로 발탁된 뒤 지난 4·15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경기 이천 지역구에 출마했던 김용진 이사장이다. 여당 유력 대선주자의 눈치를 살피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방만한 재정 운용에다 선심성 공약이 남발되면서 올해 나랏빚은 1000조원을 넘을 것으로 우려되고, 주요 공기업 50곳의 부채도 500조원을 돌파할 전망이다. 국민연금 등 4대 연금도 밑 빠진 독처럼 적자가 쌓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지자체는 예산을 펑펑 쓰고, 공기업은 손해를 알고도 침묵하는 것은 도덕적 해이가 아닐 수 없다. 유권자들은 사탕발림 같은 무료화 조치에 현혹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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