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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억 어선·1억 새집 빌려드려요” 도시인 유치 사활건 농어촌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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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경북 문경시가 도시민 유치를 위해 귀농·귀촌인들에게 임대할 계획인 이동식 경량철골조 모듈형 주택 모습 예시. 사진 문경시

경북 문경시가 도시민 유치를 위해 귀농·귀촌인들에게 임대할 계획인 이동식 경량철골조 모듈형 주택 모습 예시. 사진 문경시

도시민 발길 잡아라…귀농·귀촌 지원책 다채

소멸 위기에 처한 지방 지자체들이 ‘귀농·귀촌인 모시기’에 앞다퉈 뛰어들고 있다. 지방 시·군의 경기 침체와 인구감소로 지자체의 생존까지 위협받게 되자 외지인 유치에 사활을 건 모양새다. 귀농·귀촌인에 대한 이사비 지원이나 세금할인 혜택부터 고가의 집이나 선박까지 빌려주는 공격적인 정책들도 쏟아지고 있다.

6일 경북 문경시에 따르면 귀농·귀촌인들을 대상으로 집을 지어 빌려주는 사업을 전국 최초로 추진 중이다. 귀농이나 귀촌을 준비하는 이들의 가장 큰 고민거리가 바로 ‘집’ 문제라는 점에서 착안한 정책이다.

문경시는 농촌 지역에 노는 땅을 빌려 이동이 가능한 ‘경량철골조 모듈형 주택’을 지은 뒤 귀농·귀촌인에게 빌려준다. 농촌의 집값이 도시보다는 저렴하지만 제대로 된 집 한 채에 1억~2억원이 들어간다는 점을 감안했다. 집값 등 목돈을 들여 귀농·귀촌을 했다가 자칫 적응하지 못하고 도시로 돌아갈 때 발생하는 손실을 크게 줄이는 효과도 있다.

모듈형 주택 100동…1년간 무상 임대 

문경에 들어설 모듈형 주택은 부품을 자유롭게 떼고 붙일 수 있는 공법이 적용된다. 공장에서 제작한 뒤 주거지로 옮겨 조립하는 형태다. 철근 콘크리트나 목조 주택에 비해 건축기간이 짧고, 단열 효과도 좋다. 인건비도 절감돼 다른 형태의 건축물보다 건축비가 적게 드는 장점도 있다.

문경시는 1동에 8000만~1억원을 들여 총 100여동의 모듈형 주택을 제작할 방침이다. 귀농·귀촌인들은 1년 정도를 무상으로 살아본 뒤 적당한 수준의 임대료만 내고 살면 되는 형태다. 문경시는 2015년 개최한 세계군인체육대회 당시에도 이동식 카라반 숙소로 선수촌 문제를 해결해 주목받기도 했다.

지난 4일 전남 신안군 안좌면 구대리에 태양광 발전 집적화 시설이 설치돼 있다. 신안군이 주민들에게 태양광 발전 이익을 매년 배당금 형태로 지급하자 지난 6월 7년 만에 인구 증가도 발생했다. 프리랜서 장정필

지난 4일 전남 신안군 안좌면 구대리에 태양광 발전 집적화 시설이 설치돼 있다. 신안군이 주민들에게 태양광 발전 이익을 매년 배당금 형태로 지급하자 지난 6월 7년 만에 인구 증가도 발생했다. 프리랜서 장정필

지역에서 나오는 신재생에너지 개발이익을 주민들과 공유해 인구 유입을 이끈 사례도 있다. 전남 신안군은 2014년 이후 7년 만에 인구가 처음으로 증가했다. 신안군은 올해 6월 들어 인구가 79명 증가한 배경에 태양광 배당금을 지급하는 ‘신재생에너지 개발이익 공유제’가 있다고 본다.

신재생에너지 개발이익 공유제는 일조량이 풍부한 신안 지역에 태양광 발전시설을 집적화 단지 형태로 유치한 뒤 개발 수익을 태양광 개발업자와 주민이 나눠 갖는 제도다. 신안군민들은 발전시설로부터 500m 내에 위치한 가구는 1인당 매년 204만원, 1㎞ 이내는 136만원, 1㎞ 이상은 68만원을 지난 4월부터 배당받고 있다.

태양광 발전시설서 나온 수익 주민과 나눠 

신안군 관계자는 “태양광 배당금을 1인당 12만~51만원을 받은 안좌면은 1분기에 비해 2분기 인구가 38명 증가했고, 다음달 배당금을 받을 지도읍은 51명이 유입됐다”며 “줄곧 감소하던 인구가 늘어난 데는 태양광 이익공유 정책이 큰 역할을 한 것으로 분석됐다”고 말했다.

지난 4일 전남 신안군 안좌면 구대리에 태양광 발전 집적화 시설이 설치돼 있다. 신안군이 주민들에게 태양광 발전 이익을 매년 배당금 형태로 지급하자 지난 6월 7년 만에 인구 증가도 발생했다. 프리랜서 장정필

지난 4일 전남 신안군 안좌면 구대리에 태양광 발전 집적화 시설이 설치돼 있다. 신안군이 주민들에게 태양광 발전 이익을 매년 배당금 형태로 지급하자 지난 6월 7년 만에 인구 증가도 발생했다. 프리랜서 장정필

귀어를 꿈꾸는 청년들에게 고가의 어선을 빌려주는 사업도 호응을 얻고 있다. 신안군은 2019년부터 ‘청년이 돌아오는 어선 임대사업’을 시작해 8척의 어선을 청년 어업인에게 임대했다.

어선은 중고선박이더라도 고가의 어업권이 포함돼 있어 9t급 선박 가격이 7~10억원에 달한다. 이 배를 신안군이 청년 어부들을 대신해 매입한 후 이자가 포함된 임차료 형식으로 매월 30~50만원을 받는다. 배를 싼값에 임대한 청년들은 신안에 정착해 살아간다.

농사 기술도 전수…마을 잔치 비용까지

이사하면 공짜로 땅을 빌려주고 농사 기술도 가르쳐주는 마을도 있다. 경남 남해군 고현면은 지난해 7월부터 마을주민과 학교가 중심이 돼 귀농 가구를 모으기 위한 추진위원회를 만들었다. 마을 빈집 24채를 수리해 귀농·귀촌인에게 무상으로 빌려주고,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땅도 제공했다. 현재는 시금치와 마늘 등 지역특산품을 키울 수 있는 농사 기술을 전수하고 있다.

이곳 주민들이 ‘귀농가구 모으기’에 나선 건 빈집과 폐교가 늘어나면서 마을이 사라질 위기에 처해서다. 고현면에서는 2019년 중학교가 폐교한 것을 비롯해 10집 중 1집꼴로 빈집이 급증했다. 하지만 귀농 가구 모으기 후에는 마을에 활기가 돌기 시작하면서 올해 고현초 전교생이 20명, 도마초는 24명이 늘어났다.

남해군 청년혁신과 남해정착지원팀 고은주 주무관은 “코로나19 상황에서도 학교와 주민들이 캠페인 등을 하는 모습을 보고 문의가 쇄도했다”며 “실제로 현장을 방문해 마을 분위기와 학교 프로그램 등을 보고 귀농·귀촌을 선택하는 사례도 이어졌다”고 말했다.

지난 6월 25일 서울 서초구 at센터에서 열린 '2021 귀어귀촌 박람회'에서 시민들이 참가 부스를 둘러보고 있다. 뉴스1

지난 6월 25일 서울 서초구 at센터에서 열린 '2021 귀어귀촌 박람회'에서 시민들이 참가 부스를 둘러보고 있다. 뉴스1

귀농·귀촌인과 마을 주민의 화합을 돕기 위해 ‘마을 잔치’ 비용을 지원하는 지역도 있다. 수도권과 2시간 거리이자 서해안과 인접한 충남 부여군이 대표적이다. 양송이, 표고버섯, 밤 전국 생산량 1위인 부여군은 귀농·귀촌인들이 들어오면 신청을 받아 ‘지역주민 융·화합 프로그램’ 지원금 100만원 지급하고 있다.

부여군 농업기술센터 이주현 주무관은 “마을 잔치가 열린 뒤에는 귀농·귀촌인들과 마을 주민 간 공동체 의식이 생겨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게 한결 수월해지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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