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1조 사기’ 15년형인데…美는 다단계 150년, 보험은 850년

중앙일보

입력 2021.09.07 05:00

업데이트 2021.09.29 17:03

[5회] 금융사기공화국, 미국의 형벌 체계는 〈시즌1 끝〉

“우리나라의 관대한 처벌이 금융사기 피해를 키웠다.”

최근 발생한 대형 금융사기 사태를 두고 이민석 변호사는 이렇게 진단을 내렸다. 이 변호사는 “보험회사를 상대로 한 4억 5000만 달러(약5000억원대) 사기를 친 혐의로 뉴욕 사업가 숄람 와이스는 미국에서 845년형을 받았다”며 “한국과 게임이 안 되는 형량”이라고 지적했다. 1조 원대 금융사기 범죄를 저지른 ‘제2의 조희팔’ 김성훈 IDS 홀딩스 대표는 징역 15년을, 김재현 옵티머스 대표는 25년형을 선고받았다.

지난해 10월 VIK 사건 2심에서 법원이 12년 중형을 선고한 이후 금융사기 범죄자들은 형량을 줄이고 사회적 관심을 돌리기 위해 전방위 로비 폭로전을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10월 VIK 사건 2심에서 법원이 12년 중형을 선고한 이후 금융사기 범죄자들은 형량을 줄이고 사회적 관심을 돌리기 위해 전방위 로비 폭로전을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美 사기범 메이도프 70세에 징역 150년형…올 4월 옥중 사망

해외에서는 금융범죄에 어떻게 대처할까. 미국에선 대규모 금융사기가 발생하면 백 년 이상의 징역형도 흔히 볼 수 있다. 2008년 ‘메이도프 사건’이 대표적이다. 나스닥 증권거래소 위원장을 지낸 버나드 메이도프는 자신의 금융계 평판을 이용해 매달 10% 이윤을 돌려주겠다며 투자자 3만7000여명을 상대로 650억 달러의 사기 행각을 벌였다. 미국 법원은 이듬해 메이도프에게 70세 고령임에도 150년 형을 선고했다. 그는 가석방 없이 12년 수감 생활 끝에 지난 4월 노스캐롤라이나의 한 교도소에서 82세로 생을 마감했다.

70억 달러 규모의 다단계 금융사기를 벌인 혐의를 받은 앨런 스탠퍼드 전 스탠퍼드 인터내셔널그룹 회장 역시 징역 110년형을 선고받았다. 검찰은 스탠퍼드가 스탠퍼드 인터내셔널뱅크 산하 은행 등을 앞세워 고수익 보장을 미끼로 투자자에게 70억 달러 상당의 양도성예금증서(CD)를 판매하는 등 20년 동안 금융 사기극을 주도했다고 보고 징역 230년을 구형하기도 했다.

최고경영자(CEO)도 미국 법망을 피해 가지 못했다. 미국 법원은 에너지 대기업 엘론의 파산을 부른 회계 부정 및 공금 착복 스캔들의 주역인 전 CEO 제프리 스킬링에게 징역 24년에 달하는 중형을 선고했다. 스킬링은 미국 7위 기업인 엔론의 분식 회계 스캔들을 일으켜 2001년 12월 회사를 파산시키고, 600억 달러의 주식 가치와 종업원 연금 20억여 달러를 날리게 만드는 등 미국 사회를 충격에 빠트렸다.

미국이 금융사기범에 수백년 이상 징역을 선고할 수 있는 건 사기범이 자본시장법 위반, 형법상 사기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등 여러 범죄를 저지른(경합범인) 경우 개별 범죄마다 형을 매긴 뒤 합산하는 병과주의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유기징역 상한(50년)도 없다. 우리나라는 저지른 개별 범죄 가운데 형이 가장 중한 특경가법상 사기죄로만 처벌하거나 이종의 다른 범죄를 고려해 가중처벌한다.

전 나스닥증권거래소 위원장 버나드 메이도프. 사진 블룸버그

전 나스닥증권거래소 위원장 버나드 메이도프. 사진 블룸버그

금융사기 연루 은행엔 징벌적 배상도 뒤따라 

미국의 경우 무거운 형량 이외에 징벌적 벌금이나 배상이 뒤따를 수 있다. 2016년 미국 웰스파고 은행은 고객 동의를 받지 않고 200만개가 넘는 예금계좌와 신용카드 계좌를 만든 사실이 적발되자 벌금 3조6000억원을 부과받았다. 존 스텀프 웰스파고 회장 역시 450억원을 몰수당했다. 사건에 연루된 직원 5000여명은 해고됐다.

이렇듯 미국에선 경제범죄를 살인만큼이나 엄격히 다루고 있다. 실제 미국의 폰지사기(신규 고객 돈으로 기존 고객에게 매달 수익을 제공하는 금융사기)방지 전문 웹사이트 폰지트랙커에 따르면 2019년 미국 법원은 폰지형사기 영업행위를 벌인 43명에 대해 총 500년에 가까운 징역형을 선고했다. 사실상 1인당 평균 11.6년 형을 내린 셈이다.

금융 사기 피해 막으려면.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금융 사기 피해 막으려면.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총 피해액 50억 넘으면 무기징역 처벌해야”

반면 한국은 여러 명을 상대로 한 금융범죄가 일어날 경우 형량이 오히려 반감된다는 지적이 제기돼왔다. 법무법인 강남의 이필우 변호사는 “우리 형법은 한 사람이 여러 죄를 저지르면 가장 큰 형량에 2분의 1을 가중하는 ‘가중주의’를 택한다”며 “예를 들어 100명에게 2억원의 손해를 끼치면 총 200억원의 피해를 준 것이지만 일반 형법상 사기죄(10년이하 징역)의 제일 무거운 형의 2분의 1만 가중되다 보니 합산형제를 취하는 미국과 달리 형이 감경되는 모양새가 된다”고 설명했다.

이를 두고 이 변호사는 “특경법에서 50억 이상 사기를 치면 무기징역도 할 수 있다고 하지만 우리나라에선 (경합범 가중에 따라) 1만명에게 1조를 사기를 치더라도 그중 50억 이상의 피해를 본 사람이 없으면 1명에게 50억원 사기 친 것보다 형이 적게 나온다”며 “현실적인 문제가 뒤따르는 만큼 총 피해 금액이 50억원을 넘으면 무기징역을 선고할 수 있도록 법을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민 꿈 짓밟은 금융사기공화국 시즌1

서민 꿈 짓밟은 금융사기공화국
선진 금융감독 시스템을 도입했다던 외환위기(IMF) 이후 25년, 대한민국은 거꾸로 금융사기공화국(www.joongang.co.kr/series/11478)으로 전락했습니다. 조희팔부터 IDS홀딩스·VIK·라임·옵티머스 등 5대 사건의 피해자만 12만명, 피해 금액은 10조원이 넘습니다. 평생 번데기를 판 돈, 남편 사망보험금까지 빼앗긴 서민들의 목소리를 시작으로 금융사기공화국을 만든 이들을 중앙일보 사회1팀 기자들이 총 10회에 걸쳐 추적합니다. 금융사기를 예방할 솔루션도 찾아봅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Innovation Lab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