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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신성호의 이코노믹스

수출·성장률·기업이익·고객예탁금 정점 찍고 주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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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한국 증시 왜 상승 탄력 잃었나

신성호 전 IBK투자증권 대표이사

신성호 전 IBK투자증권 대표이사

1월 중반까지만 해도 빠르게 치솟던 주가가 그 이후 정체했다. 지난해 3월의 주가 바닥 이후 올해 1월 초반까지 종합주가지수 상승률은 126%로 세계 최고였다. 주가 상승률이 높으면 통상 향후 주가전망을 낙관한다. 1월 당시에도 완급은 있겠지만 주가 상승이 이어질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1월 중반 이후 종합주가지수는 정체했고, 주식시장을 이끌던 주요 종목들의 주가도 15~25%가량 하락했다.

돌이켜 보면 1980년 이후 주식투자를 할 만했던 시기는 1985년 하반기~1989년 1분기의 3저(低) 호황 기간과 세계적 골디락스(Goldilocks, 경기가 활달한 가운데 물가 안정) 기간인 2003~2007년 정도였다. 물론 해당 기간 이외에서도 화려한 주가 상승이 있었다. 그러나 당시의 주가 급등은 대체로 직전 폭락에 따른 반사적인 것에 불과했다. 제자리로의 회귀를 미화한 것에 불과하다.

증시 여건 좋은 골디락스 끝나가며
올 1분기 이후 정체·하락 본격화해
수출 불투명해 기업 실적도 적신호
기업이 이익 못내면 주가도 힘 못써
저금리 발 주가 상승 기대 접어야

고진감래(苦盡甘來) 격인 장기주식투자 결과도 여의치 않았다. 실제로 2000년대, 2010년대 각 10년간 연평균 주식수익률은 5.1%, 2.7%(배당금 제외)에 불과했다. 적립식 투자의 성과도 신통치 않았는데, 적립 기간이 길어도 수익률은 대수롭지 않았다. 30년간 매월 일정 금액을 주식에 투자했을 때, 2021년 현재 성과는 연율 2.9%에 불과했다.

낮은 장기투자 성과는 우리의 경기확장 기간이 짧기 때문인데, 1970년 이후 우리 경기는 무려 12번이나 순환했다. 그 과정에서 평균 33.7개월간 경기확장, 평균 20.3개월간 경기수축을 경험했다. 동일 기간 중 미국의 경기확장 기간 74.1개월(7회 평균) 및 경기수축 기간 12개월(6회 평균)과 대비된다. 상대적으로 경기확장 기간은 짧고, 경기수축 기간은 길다 보니 주식성과가 낮았다.

추세적 상승 어려워진 징후 뚜렷

신성호의 이코노믹스

신성호의 이코노믹스

올해 주가 흐름이 기대에 못 미치자 일각에서는 한국 증시 특유의 짧은 경기순환과 낮은 장기투자 성과의 재현을 우려한다. 사실 현재의 주식시장 상황은 어디를 봐도 호재를 찾기 어렵다. 주가의 추세상승이 멈추거나 하락 전환할 때의 징후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2000년 이후 최근 21년 동안 증시가 정점을 찍고 주가가 상당한 하락을 보인 것은 여덟 번 있었다. 여기서 눈여겨볼 것은 경제 성장률, 상장사 기업이익, 고객예탁금, 주가행태(주가의 기술적 추이), 종목선정 기준 등 5대 핵심 지표다. 과거 패턴을 보면 이들 다섯 가지 변수가 부정적으로 바뀐 데 따라 주가가 하락 전환 또는 정체했다.

당시 성장률 정점은 주가 정점보다 빠르면 6개월 앞섰다. 늦으면 2개월 후행했는데, 대체로 성장률 정점은 주가 정점을 선행했다. 상장사 이익 정점은 주가 정점보다 빠르면 1개월 선행했다. 늦으면 2개월 후행했는데, 대체로 이익과 주가 추이는 동행했다. 요컨대, 성장률이 낮아지면 기업 이익이 악화하고 뒤이어 고객예탁금도 줄면서 주가도 내려가는 패턴이다. 부연하면 2000년 이후 주가는 이익 규모보다 이익 증감 방향에 따라 등락했는데, 이익 규모가 커도 이익이 줄거나 정체하면 주가도 하락·정체했다. 고객예탁금은 통상 주가 정점 이전부터 정체하거나 감소했다. 물론 성장률은 올해 4%, 내년 3%로 회복세가 전망(한국은행)되고 있지만, 최근 2~3년간 연평균 1%대에 그쳤던 데 따른 기저효과에 불과하다. 성장률 상승에 별 의미를 두기 어렵다는 의미다.

주가가 정점일 때의 현상 보이는 최근 증시

주가가 정점일 때의 현상 보이는 최근 증시

이같이 세 변수(성장률, 기업 실적, 고객예탁금)가 힘을 잃음에 따라 종합주가지수의 기술적 추이도 그간의 상승 추세에서 이탈하곤 했다. 또 주가 정점 내외에서는 투자할 만한 종목을 찾기 어렵다. 대다수 종목이 이미 크게 상승했기 때문이다. 이런 흐름에 따라 증시는 주가 정점을 전후해서 활력을 조금씩 잃는 양상을 보인다. 그런데 올해 성장률 정점과 상장사 이익 정점은 1분기였을 듯싶다. 특히 2분기 상장사 순이익(주요 160사 기준)이 1분기 대비 20.5%나 줄었다. 또 금융데이터를 제공하는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3분기 이익은 2분기보다 다소 적을 것으로 추정된다. 고객예탁금은 1월 중순부터 정체했고, 이미 지난 4월 말 주가의 기술적 추이는 지난해 3월 이후 형성된 상승추세에서 이탈했다. 또 1월 이후에는 주가가 일시적이나마 오르는 기간도 짧아지고 있다. 결국 5대 핵심변수 모두 부담스러운 징후가 발생했다. 상황이 여의치 않아도 주가가 크게 하락하지 않는 것은 여건이 상당히 악화할 때까지 버티기 때문이다.

당장의 상황이 여의치 않기에 향후 주식시장 여건이 중요해졌는데, 이 역시 긍정적 상황을 찾아보기 어렵다. 현재의 주식시장 여건이 상당 기간 주가를 유지하겠지만, 추세적 상승으로 이끌기는 버거워 보이기 때문이다. 상당 기간 주가의 현상 유지는 이익의 계절성에 기인하는데, 분기기준 이익 규모는 대체로 4분기가 가장 적다. 2000~2020년 중 분기기준 4분기 이익이 가장 낮은 횟수는 17번에 달했다. 즉, 올해 4분기보다 내년 1분기 이익이 클 듯한데, 이런 이익 방향에 힘입어 내년 1분기까지 주가는 그런대로 버틸 것 같다.

수출이 지속적으로 늘 때 추세적으로 상승했던 주가

수출이 지속적으로 늘 때 추세적으로 상승했던 주가

그러나 수출 환경이 여의치 않아지면서 주가의 추세적 상승을 저해할 것으로 보인다. 〈그림〉에서 보듯 수출이 활달할 때 기업이익이 증가했고, 기업이익 증가에 따라 주가가 상승했다. 예컨대 앞서 거론한 2003~2007년의 골디락스 기간 중 꾸준한 수출증가가 기업이익을 장기간 증가시켰다. 이에 힘입어 당시 종합주가지수가 512에서 2085까지 올랐다.

그러나 올해 수출 신장세는 이미 누그러졌다. 월별 수출금액 추이는 수출증가율과 달리 지난해 12월 이후 주춤해졌다. 앞으로도 이런 추세가 이어질 듯하다. 우리 수출은 미국이 큰 대외적자를 용인하거나, 세계적 부채 급증(세계 경제가 부채로 소비와 복지를 늘릴 때) 기간에 늘었는데, 두 부분 모두 여의치 않아졌기 때문이다.

우선 미국은 트럼프에 이어 바이든도 ‘아메리카 퍼스트’를 주장한다. 다른 국가도 자국 우선주의에 대해 비슷한 입장이어서 우리의 수출입지가 여유롭지 않다. 또 빨랐던 세계적 부채증가 속도도 꺾일 듯하다. 국제결제은행(BIS)의 주요 44개국 기준으로 볼 때 ‘세계 GDP(국내총생산) 대비 세계 부채’가 2020년에 무려 44.7% 포인트나 늘었기 때문이다. 한 해에 부채가 GDP의 절반가량 늘었는데, 그간 부채의 빠른 증가는 통상 1년을 넘지 않았다. 그러나 2021년에도 부채가 엄청나게 늘어난 것으로 추정되는데, 연이어지는 부채증가는 감내하기 어렵다. 그래서 향후 각국은 부채 증가를 통제할 것 같다. 우리 물건을 살 곳의 형편이 어려워진다는 의미다.

투자자, 방어적 관점 필요한 시점

이 같은 상황을 고려하면 우리 수출의 지속적 증가 가능성은 불투명하다. 부연하면 코로나 이후 늘어난 수출의 상당 부분은 특수(特需)라 여겨진다. 특히 세계 경제가 평이했던 2012~2019년 중 우리의 연평균 수출증가율이 ‘0’% 인 점을 고려하면 2020~2021년에 늘어난 수출은 특수 성격이 짙다. 오래전에 수출의 활력이 떨어졌다고 볼 때 코로나 이후의 수출증가 기대치를 낮춰 잡아야 한다. 이는 곧 지속적 이익증가 가능성이 엷음을 뜻한다. 이익이 꾸준히 증가하지 않으면 주가는 추세적 상승을 이루기 어렵다. 주가는 이익증감 방향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결국 증시를 둘러싼 상황을 종합하면 현재 국내 증시는 2012~2016년 같은 장기정체 국면에 진입하기 직전 상황을 연상시키고 있다.

그야말로 이제는 방어적 관점에서 증시를 바라봐야 할 때가 됐다. 여하튼 지난해 3월 이후 주가가 크게 상승했기 때문인데, 특히 온갖 명목의 테마 덕에 이익대비 주가가 지나치게 높아진 종목은 주의해야 하겠다. 이런 부류는 이익이 조금이라도 줄면 곧바로 폭락한다. 더구나 유동성 장세가 막을 내리면서 낮은 금리가 주가를 상승시킬 것이란 기대는 접어야 한다. 낮은 금리는 이익증가 기간에는 이익증가율 이상으로 주가 상승을 증폭시키지만, 기업이 이익을 내지 못하면 더는 주가 방향에 힘을 쓰지 못한다. 오직 이익만이 주가 등락 방향을 결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