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삶의 향기

크레파스에 눈먼 응원가 ‘저쪽 편은 못 해라’

중앙일보

입력 2021.09.07 00:28

지면보기

종합 28면

전상직 서울대 음대 교수

전상직 서울대 음대 교수

‘새벽종’이 울리는 ‘새 아침’이면 어른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삽이나 곡괭이를 들고나와 신작로를 보수하고 몇 해 전 홍수 때 마을을 휩쓸고 간 개천에 제방을 쌓았다. 일주일에 한 번 졸린 눈을 비비며 빗자루를 들고나온 아이들은 투덜거리며 마을 이곳저곳을 쓸고 학교를 오가며 길가에 코스모스 씨앗을 뿌렸다. ‘잘살아 보세’를 목이 터지라 부르며 그렇게 ‘새마을’을 가꾸던 시절, 태극기와 성조기를 그린 두 손이 마주 잡은 그림의 의미도 모르면서 물에 갠 분유와 빨랫비누 모양의 옥수수빵으로 점심을 대신하던 시절, 가난의 끝자락이 채 가시지 않은 오지 마을에도 가을이면 축제 같은 하루가 있었다.

박을 터뜨려 색종이가 흩날릴 때까지 콩주머니를 던지고, 기마전을 펼치고, 고무신을 양손에 한 짝씩 움켜쥐고 내달을 때면 청군·백군 가릴 것 없이 똑같은 응원가로 목청껏 응원한다. ‘깃발이 춤을 춘다, 우리 머리 위에서. 달린다, 넓은 마당, 푸른 하늘 마시며. 우리 편아 잘해라, 저쪽 편도 잘해라. 우리들은 다 같은 ○○학교 어린이.’ 견물생심(見物生心). 면장님과 이장님이 협찬한 공책과 크레파스에 마음을 빼앗긴 한 아이가 슬쩍 가사를 바꾸어 부른다. ‘우리 편아 잘해라, 저쪽 편은 못 해라.’ 진심이 통했는지 순식간에 모든 아이가 ‘저쪽 편은 못 해라’라고 목이 터지라 노래한다. 잠시 후 본부석 확성기가 귀를 찢는 ‘삐~’ 소리에 뒤이어 찬물을 끼얹는 소리를 토해낸다. “응원가를 당장 멈추세요!” 교감 선생님의 격노한 목소리다.

승리는 수단일 뿐 목적 될 수 없어
상대가 못해 얻은 승리는 무의미
소중한 것을 지켜야 진정한 승자

몇 해 전 하늘로 떠난 그 교감 선생님은 끝내 모르셨다. 그 발칙한 녀석이 다름 아닌 당신의 막내아들이었음을. 그날 저녁, 엄한 선생님이 아니라 아버지로서, 그 아이의 아빠는 ‘저쪽 편도 잘해야 하는 이유’와 ‘이기고 지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에 관하여 열 살배기 아들이 눈꺼풀의 무게를 못 이겨 잠들 때까지 아주 길게 말씀했다. 그 말씀을 이해하기에는 너무 어렸고 그때 이해하지 못한 것을 지금 제대로 기억할 리 만무하지만, 그 아이는 지금 ‘못하는 청(靑)군’ 덕에 이기겠다는 ‘적(赤)군’을 보며 크레파스에 눈이 멀어 ‘저쪽 편은 못 해라’라고 노래하던 그 가을날의 기억을 떠올린다. ‘적군은 더 못 했잖아’라는 청군의 볼멘소리는 그 덕에 정권을 창출하였다(창출되었다)고 자인하는 것과 다름없어 보인다.

그러니 온 나라를 반으로 가르고 상대의 부족함에 기대어 승리를 꿈꾸는 청·적 양 진영의 수준은 백면서생에 불과한 내 눈에도 도긴개긴이다. 그들을 향해 후안무치(厚顔無恥)하다고 말하는 것은 그들이 주고받는 설전에 비하면 점잖은 편 아닌가? 얼마 전부터는 한술 더 떠 편을 가리지 않고 서로 물고 뜯는다. 이러다 조만간 속옷까지 벗길 것이고, 우리는 그 과정에서 이미 만신창이가 되어 존경과 권위를 상실한, 그래서 눈곱만큼의 기대도 할 수 없는 이들 중 한 명에게 마지못해 국정을 맡기고 몇 년을 한숨 쉬며 보내야 할지도 모른다.

부부싸움의 승자는 남편이나 아내 둘 중 하나가 아니라 그 부부다. 잘잘못의 원인과 경중을 떠나 누군가 지기를 자처함으로써 소중한 그 가정을 지켰다면. 그 싸움의 패자는 둘 중 하나가 아니라 그 가족이다. 배우자의 잘못에 분노하거나 견디기 어려운 고통 끝에 가족의 화목을 포기하고 말았다면. 이렇게 우리에게 소중한 모든 것은 표면적인 승자 홀로 이루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지키기 위해, 때로는 파국을 막기 위해 스스로 패자의 길을 택한 이의 희생을 토대로 한다. 더 나아가 패자에 대한 승자의 진심 어린 존중이 없으면 그 어떤 것도 오래가지 못한다. 그러니 오직 이기기 위해 파국에 이르는 것조차 괘념치 않는 이가 넘쳐나고 그런 이들이 이기는 곳에는 희망이 없다. 그곳에 진정한 승자도 없다. 저열한 승자는 패자와 다름없고 그로 인해 희망을 잃은 이들 또한 승자라 할 수는 없으니.

“아기를 반으로 갈라 나눠 가져라.” 한 아기를 놓고 서로 자신의 아기라고 우기는 두 여인에게 솔로몬이 내린 협박성 주문이다. 이 단호하고 끔찍한 주문에 ‘아기를 저 여인에게 주라’며 패소를 자처한 여인과 흔쾌히 ‘그리하자’며 승소를 예감한 여인 중 누가 그 아기의 어머니인 줄 모를 이가 어디 있으랴. 비록 솔로몬의 지혜가 우리에게 없을지라도 가족이나 친구, 우리가 속한 곳, 더 나아가 이 나라를 진정으로 위하고 아끼는 이가 누구인지는 이렇게 쉽게 드러난다. 어떻게든 이기려는 이보다는 지기를 각오하고 소중한 그 무엇을 지키려 희생을 자처하는 이에게, 진정으로 아끼고 사랑하기에 어쩌면 질 수도 있겠다 싶은 길을 스스로 택하는 이에게 축복 있기를….

Innovation Lab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