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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은주의 아트&디자인

아홉 개의 비엔날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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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이은주 기자 중앙일보 문화선임기자
이은주 문화선임기자

이은주 문화선임기자

‘하루하루 탈출한다.’ 남의 얘기가 아닙니다. 요즘 팬데믹 상황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의 심경을 대변하는 말입니다.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가 이 제목을 달고 8일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에서 개막합니다. 작년에 열려야 했던 행사는 코로나19로 미뤄져 여전히 벗어나지 못한 팬데믹 상황에서 막을 올리고 국내외 작가 41팀의 작품 58점을 선보입니다.

융 마 프랑스 퐁피두센터 전 큐레이터가 예술감독을 맡고 어려운 시국에 열리는 비엔날레는 세계가 마주한 작금의 현실을 그대로 비춥니다. 현실의 제약으로부터 탈출하려는 사람들의 욕망에 주목하고, 팬데믹으로 고통받는 우울한 시대 풍경을 담아내는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선보입니다. 요즘 뜨거운 사회적 화두인 인종주의, 젠더, 계급, 정체성, 이주와 환경 문제 등을 다룬 작품들이 총출동했는데요, 오랜 시간 준비한 전시의 퀄리티가 남다릅니다.

황창배, 무제, 1991, 한지에 혼합재료, 263x165㎝. [사진 전남수묵비엔날레]

황창배, 무제, 1991, 한지에 혼합재료, 263x165㎝. [사진 전남수묵비엔날레]

또 다른 비엔날레는 오는 10일 대구에서 막을 올립니다. 심상용 서울대 미술학부 교수가 예술감독을 맡은 대구사진비엔날레는 ‘누락된 의제-37.5 아래’란 제목으로 32개국 작가 351명의 작품을 선보입니다. 전쟁과 테러, 난민, 인종차별, 사회경제적 양극화 현상 등의 문제를 다루는데요, 같은 기간에 서울대미술관에서 14명 사진작가의 작품을 함께 전시합니다. 8명의 작품은 대구사진비엔날레 주제전과 같고, 6명의 작가는 서울대미술관이 독립적인 큐레이팅으로 소개하는 ‘따로 또 같이’ 축제입니다.

9~10월 두 달간 전국 곳곳에서 아홉 개의 비엔날레가 열립니다. 지난 1일 전남수묵비엔날레와 광주디자인비엔날레가 막을 올렸고, 오는 8일부터 청주공예비엔날레와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가 개막합니다. 대구사진비엔날레 10일,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16일, 강원국제트리엔날레는 30일에 시작하고, 10월엔 경기세계도자비엔날레(1일 개막), 바다미술제(16일 개막)가 열립니다. 코로나19가 끝나지 않은 상황이지만, 오랜 시간 각 도시가 수묵과 디자인·미디어·공예·사진·건축 등 특성화 전략을 갖고 키워온 미술 축제를 관람객이 직접 확인하고 평가할 기회입니다.

각 비엔날레가 얼마나 내실 있게 운영됐는지 점검할 시기이기도 합니다. 2000년 시작된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는 올해로 11회, 2006년 시작한 대구사진비엔날레는 8회를 맞습니다. 그동안 프로그램은 얼마나 더 탄탄해졌는지 엄격하게 돌아보아야 합니다. 단순히 경제적인 파급효과로만 평가할 게 아니라 예술 체험과 더불어 더욱 풍요로워진 시민의 삶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비엔날레를 이끄는 예술감독의 역할과 그 중요성을 인정하고 지원하는 의식도 필요합니다. 비엔날레의 계절입니다. 우리 동네 가장 가까운 비엔날레부터 둘러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