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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델 일 했다고, 결혼 지참금 적다고…죽음 내몰린 여성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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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2015년 집단 결혼식을 하는 인도 무슬림 커뮤니티. 신부가 신랑 측에 지참금을 내는 관행이 있다. [AP=연합뉴스]

2015년 집단 결혼식을 하는 인도 무슬림 커뮤니티. 신부가 신랑 측에 지참금을 내는 관행이 있다. [AP=연합뉴스]

#1. 아프가니스탄 탈레반은 지난 4일 사립대학에 다니는 여성들은 눈을 제외한 얼굴 전체를 가리는 니캅을 쓰도록 했다. “여성들이 히잡을 착용하는 것도 허용될 것”이라는 지난달 수하일 샤힌 대변인의 공언과는 배치되는 것이다.

#2. 지난달 초 인도 남부 마두라이시에서 임신 2개월이었던 열아홉 신부 판디에스와리는 등유를 끼얹고 불을 붙였다. 남편과 신부 지참금 문제로 갈등을 빚어오던 와중이었다. 인도에서는 2019년 한해 지참금 분쟁으로 7115명의 여성이 살해되거나 스스로 삶을 마감했다.

#3. 파키스탄 패션모델 나야브 나딤(29)은 지난달 의붓오빠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모델 일을 해 가문의 명예를 더럽혔다”는 이유였다. 파키스탄에서 명예살인으로 참수·화형·총살당하는 여성은 연간 약 1000명으로 추정된다.

여성으로 구성된 노르웨이 육군 특수부대 ‘예거트론’의 훈련 모습. [사진 노르웨이 특수부대 사령부]

여성으로 구성된 노르웨이 육군 특수부대 ‘예거트론’의 훈련 모습. [사진 노르웨이 특수부대 사령부]

여성에게만, 여성이라는 이유로 행해지는 ‘여성을 향한 폭력’을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CEDAW)는 ‘남성에 대한 여성의 종속적 위치와 성 역할을 영속시키는 사회·정치·경제적 수단’으로 규정한다. CEDAW는 이 중 지참금 범죄, 명예살인, 아동 강제결혼(조혼), 여성 성기절제 등을 “지구 상에서 사라져야 할 악습 중의 악습”으로 꼽는다.

인도는 1961년 지참금 금지법을 도입했지만 근절되지 않고 있다. 올 6월 세계은행은 “인도에서 여아는 곧 경제적 부담으로 여겨져 남아 선호사상을 강화하고 여아 낙태를 부추긴다”고 지적했다.

파키스탄·인도·예멘 등에서 보고되는 명예살인은 여성의 정절과 복종을 남성의 명예와 동일시하는 인식에서 비롯됐다. 한해 전 세계에서 5000명에서 많게는 2만 명이 죽임을 당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한 국내 연구에 따르면 남편의 식사를 늦게 차렸거나 “꿈속에서 아내가 남편을 때렸다”는 이유로 살해당하기도 했다.

그래픽으로 보는 여성 폭력.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으로 보는 여성 폭력.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파키스탄에서 명예살인은 심각한 사회 문제다. 명예살인은 최고 사형에 처하고, 대법원은 최근 “명예살인에 더는 ‘명예’라는 수식어를 붙이지 말라”는 판결도 했다. 임병필 한국교육과정평가원 박사는 “부정행위를 한 남녀에 대한 ‘샤리아(이슬람의 율법)’ 규정을 일부 남성들이 극단적으로 해석해 여성 폭력과 살인을 정당화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유니세프가 올 2월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중·서부 아프리카에서 여아의 강제결혼 결혼 비율은 39%였다. 15세 미만도 13%나 됐다. 짐바브웨에서는 지난달 동부 마랑주에서 열 네살 소녀가 아이를 낳다 사망하면서 만 18세 미만 아동 결혼을 금지하라는 여론이 고조됐다.

‘135.6년.’ 올해 세계경제포럼(WEF)의 성(性)격차지수(GGI)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성별 격차를 완전히 없애는데 걸리는 시간이다.

WEF 조사 대상 156개국의 의회 의석 3만 5500석 가운데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은 26.1%. 각국 3400여 명의 행정부 장관 가운데 여성은 22.6%에 불과했다. 이대로라면 정치 영역에서 양성평등을 달성하는 시점은 145.5년 이후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유럽 등 선진국의 양성평등 논의는 여성의 동등한 참여를 보장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노르웨이는 2016년부터 양성 징병제를 시행하고 있다. 노르웨이는 지난해 유엔개발계획(UNDP)의 여성발전지수(GDI) 순위에서 189개국 중 1위다.

그래픽으로 보는 여성 폭력.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으로 보는 여성 폭력.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노르웨이는 여성 징집 도입에 앞서 사회 전반에서 양성평등을 달성하기 위한 조치를 도입해왔다. 2003년에는 모든 공기업 이사회의 40%를 여성으로 채워야 한다는 할당제를 도입했다. 지난해 기준 노르웨이 의회 의석의 절반 가까이(44%)가 여성 의원이다.

아이슬란드는 여성의 정치적 권한이 가장 많은 국가다. 지난 50년 간 여성 수반의 재임 기간(23.5년)이 다른 국가에 비해 길었다. WEF는 “미국·스웨덴·스페인 등 81개국은 지난 50년 간 여성 지도자를 단 한 명도 배출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국제성평등지수별 상·하위 5개국

국제성평등지수별 상·하위 5개국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를 높이기 위해 임금 격차를 줄이고, 남성 육아 휴직 등 복지제도를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지난해 38개 회원국의 성별 임금 격차는 12.53%로 집계됐다. 한국(31.48%)의 임금 격차가 가장 큰 반면 룩셈부르크는 여성 임금이 더 높은 것(-3.13%)으로 조사됐다.

국제노동기구(ILO)가 2017년 발간한 ‘세계 사회적 보호 보고서’에 따르면 육아 휴직 규정을 둔 나라는 1995년 40개국에서 2015년 94개국으로 크게 늘었다.

BBC는 영국은 부모가 최대 50주의 육아 휴직을 쓸 수 있는 제도를 2015년 도입했지만 2018년 기준 90만 명의 영국 부모 가운데 약 9200명만 이 제도를 이용했다고 지난 7월 보도했다. 반면 스웨덴에서는 자녀를 둔 남성의 90%는 육아 휴직을 신청했고, 총 기간의 96%를 쓰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영국 엑서터대 클라 모겐로스는 “육아 휴직을 쓰는 남성은 직장 내에서 큰 반발에 직면하며 업무 몰입도가 떨어지는 사람으로 취급된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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