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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블라인드"라는데 이탄희 '판사 1/8 김앤장 방지법'논란

중앙일보

입력

더불어민주당 이탄희 의원. 오종택 기자

더불어민주당 이탄희 의원. 오종택 기자

이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달 31일 국회 본회의에서 법관 임용 최소 법조 경력을 10년→5년으로 낮추는 법원조직법 개정안 부결을 주도한 데 이어 '김앤장 판사 독식 방지법'을 발의하겠다고 나섰다. "전국 신규 판사의 8분의 1이 김앤장 (법률사무소) 출신"이라는 게 이유다. 이에 법원은 신규 법관 임용은 소속 로펌 등 개인정보를 기재하지 않는 ‘블라인드 채용’이라고 반박했다. 국내 최대 로펌인 김앤장 출신 변호사가 올해 신규 판사 임용 예정자의 8분 1을 차지한 걸 놓고 법관 임용 제도로 논란이 번진 셈이다.

이탄희 “판사 필기시험 성적 선발 금지하는 김앤장 방지법 발의”

앞서 이 의원은 지난달 31일 국회 본회의에서 법원조직법 개정안 반대 토론자로 나서 "올해 판사 임용 예정자 157명 중에 상위 7개 로펌 출신이 무려 50명, 법원 로클럭 출신이 67명이다. 전국 신규판사 8분의 1(12.5%)이 김앤장 출신"이라며 “전국 신규 판사 8분의 1을 하나의 로펌에서 충당하는 이런 나라가 또 있겠냐고”고 주장했다. 결국 이날 김명수 대법원의 숙원 과제였던 법원조직법 개정안은 이 의원 주도 반란에 여당 의원 수십여명이 동조하면서 무산됐다.

이 의원이 판사의 최소 법조 경력을 10년에서 5년으로 줄일 경우 김앤장 등 대형 로펌의 변호사시험 성적 우수자 입도선매→5년 후 법관 임용→일정기간 뒤 로펌 복귀로 전관예우와 법관서열화로 되돌아가게 될 것이란 반대론이 먹힌 때문이었다. 최근 김명수 법원의 김경수 전 경남지사 드루킹 포털댓글조작 유죄 확정, 조국 일가 항소심 유죄 등도 영향을 줬다는 평가도 나왔다.

이 의원은 지난 2일 여기서 더 나아가 "이제 '김앤장 판사 독식 방지법' 발의를 추진하겠다"고 했다. 그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신규 판사 선발을 필기시험 성적 중심으로 하지 못 하게 하겠다"며 "법관선발위원회를 만들어서 시민이 원하는 인재들이 판사로 임용될 수 있는 길을 열겠다"고 썼다.

대법원 "김앤장이라 뽑은 게 아니라, 블라인드로 뽑고 보니 김앤장"

대법원이 6일 배포한 법관 선발 절차 설명자료에 따르면 법관 지원자는 출신지역, 가족관계, 학력(대학, 대학원 및 법학전문대학원 포함), 소속 로펌 등을 기재하지 않도록 하고 이를 위반할 경우 임용 과정에서 불이익을 주도록 규정하고 있다.

특히 자기소개서에 로펌 명 기재와 관련해 "'○○ 법무법인'과 같이 기재하면 법무법인의 명칭이 드러날 수 있으므로 그 경우에는 단순히 '법무법인' 또는 복수의 기재를 요하는 경우에는 'A법무법인', 'B법무법인' 등의 방식으로 (익명) 기재해 주기 바란다"고 명시돼 있다. 개인 사무소나 기업 사내 변호사 근무 경력 역시 '개업 변호사' 또는 '사내변호사', 'C기업의 사내변호사' 등의 방식으로 기재하도록 안내하고 있다.

법조계의 한 관계자는 "법원이 김앤장 출신이라서 법관으로 뽑은 게 아니라, 뽑아놓고 보니 김앤장 출신이 많았었던 것인데 이 의원이 사실관계를 호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지난 7월 29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 회의에 앞서 박은정 위원장, 박범계 장관을 비롯한 대법관후보추천위원들을 접견하고 있다. 뉴스1

김명수 대법원장이 지난 7월 29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 회의에 앞서 박은정 위원장, 박범계 장관을 비롯한 대법관후보추천위원들을 접견하고 있다. 뉴스1

“필기 성적순 채용 아냐…필기는 70~80% 통과 자격시험”

이 의원이 문제를 제기하는 "필기시험 성적 중심"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도 대법원은 사실과 다르다고 했다. 법관 임용에 지원하기 위해서는 '법률서면작성평가'라는 필기시험을 사전에 통과해야 한다. 이 평가는 통과제 방식으로 통과할 경우 법관에 지원할 자격이 생기는 것일 뿐 해당 점수는 임용 심사에 반영되지 않는다는 게 법원 측 설명이다.

대법원은 "필기시험을 잘 보는 순서대로 법관을 선발하는 것은 전혀 아니다"라며 "법관 임용 전 최소한의 능력을 검증하는 오픈북 통과제 시험이고, 통과율이 70~80%에 달한다"고 설명했다.

현직 판사 “무서운 발상…국회 의석 수로 판사 선발하자는거냐”

대법원 전경. 연합뉴스

대법원 전경. 연합뉴스

이 의원이 제기하는 국회와 시민사회가 시험 없이 법관을 뽑자는 주장에 대해서는 법원 내부에 공개 반발이 터져 나왔다.

김용희 울산지법 부장판사(사법연수원 34기)는 지난 4일 자신의 페이스북과 6일 법원 내부망인 코트넷에 이 의원의 법안에 반대하는 의견을 올렸다. 그는 "심지어 어떤 분은 지금처럼 사법부가 시험, 면접 등의 절차를 통해 판사를 뽑게 하지 말고, 국회와 시민사회가 시험 없이 지원자들을 헤아려서 뽑자는 주장까지 했다"며 "그럴싸해 보일 수 있지만, 참 무서운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전쟁을 벌이고 있는 국회에서 시험이라는 객관적인 기준도 없이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중립적으로 판사를 뽑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설마 국회 의석수에 비례해서 각자 성향에 맞는 판사를 선발할 권한을 나누어 가지자는 것인가"라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해서 현행 법원조직법은 법관 임용 결정에 외부 의견을 더 반영하도록 규정돼 있다. 법관 임용을 위한 현 법관인사위원회는 11명 위원 중 법관은 3명에 불과하다. 나머지 8명의 외부 위원은 법무부 장관이 추천하는 검사 2명, 대한변호사협회장이 추천하는 변호사 2명, 한국법학교수회장과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 이사장이 추천하는 법학 교수 2명 등으로 구성된다.

대법원은 최소 법조 경력을 낮추는 것이 법조일원화 도입 취지를 무색하게 한다는 주장에 대해 "동의할 수 없다"며 "오랜 논의를 거쳐 법제화된 법조일원화가 우리의 현실에 맞게 정착되도록 하기 위해 법관 임용의 '최소' 법조 경력의 '문턱'만 낮추고자 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 당시 사법개혁추진위원회, 사법개혁위원회도 법관 임용 법조 경력을 '5년 이상'으로 할 것을 건의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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