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점씩 사모은 그의 컬렉션에 차세대 유망작가 총집결

중앙일보

입력 2021.09.06 14:03

업데이트 2021.09.06 16:56

서울 북촌로 원앤제이 갤러리에서 컬렉션 전시를 열고 있는 설원기 작가..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서울 북촌로 원앤제이 갤러리에서 컬렉션 전시를 열고 있는 설원기 작가..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요즘 미술시장엔 '억'소리 나는 작품이 넘쳐난다. 부동산이나 주식·펀드보다 높은 수익률을 찾아 '블루칩' 작품을 찾는 사람들의 경쟁도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이런 시대에 내게 말을 걸어오는 작품을 찾아 발품을 팔며 젊은 작가의 작은 그림 한 점을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설원기 전 한예종 미술원장
20년간 수집한 컬렉션 전시
"작가가 보이는 작품에 끌려
작가 변화 지켜보는 즐거움은 덤"

서울 북촌로 원앤제이갤러리에서 2일 개막한 설원기(70·전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장) 작가의 컬렉션 전시 '원플러스원:소장가의 시선'은 지금 우리 시대 컬렉팅의 의미와 가치를 돌아보게 한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이번 전시는 그가 20여년간 수집해온 국내외 작가 35인의 작품 38점을 선보이는 자리. 전시 제목이 '원플러스원'인 것은 그의 소장품을 공개하는 동시에 컬렉션에 포함된 작가 35인의 또 다른 작품들을 더해 총 82점의 작품을 소개하기 때문이다.

이 전시의 핵심은 그의 컬렉션에 들어가 있는 작가들 구성이다. 김지원·김범·안규철·안창홍·김근중·서용선 등 이미 미술계에서 손꼽히는 중견 작가들 작품부터 고지영·이은새·김현정·박기민·이주리·임소담·민경숙·노은주 등 요즘 주목받는 실력파 젊은 작가들 작품을 망라하고 있다. 그의 컬렉션엔 덩치 큰 작품도 없고, 이미 값이 오를대로 오른 작가들 작품도 없다. 작가이자 예술교육자인 그만의 시선으로 "작가가 보이기에 골랐다"고 소개하는 그림들이다. 애정어린 시선으로 엄선한 '차세대 블루칩', 그는 어떤 기준으로 작품을 고르고 모았을까. 전시장에서 그를 만났다.

설원기 컬렉션이 열리고 있는 원앤제이 전시장. 작은 조각품이 안규철 작가 작품이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설원기 컬렉션이 열리고 있는 원앤제이 전시장. 작은 조각품이 안규철 작가 작품이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설원기 컬렉션이 전시되고 있는 원앤제이 갤러리.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설원기 컬렉션이 전시되고 있는 원앤제이 갤러리.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제목이 '원플러스원'이다. 
"그래서 다들 '작품 하나 사면 덤으로 하나 주는 것이냐'고 묻더라(웃음). 내 소장품에 포함된 작가들의 또 다른 작품을 나란히 소개하는데, 소장품을 통해 우리 주변의 다양한 작가들을 친근하고 자연스럽게 소개하는 자리가 된 것 같아 기쁘다. " 
소장품 전시를 열게 된 동기는.
"이 전시에 앞서 최근 에이라운지, 누크 갤러리 등에서 소장가들의 취향을 보여주는 컬렉션 전시가 열렸다. 예전엔 컬렉터들이 작품을 살 때 갤러리스트 추천이 큰 역할을 했다면 요즘엔 자기 취향으로 작품을 고르는 사람들이 많이 늘고 있다. 한 작가로서 또 컬렉터로서 이런 변화가 굉장히 반가웠고, 앞으로도 소장가의 다채로운 취향을 보여주는 전시가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으로 참여했다."  
작가이자 예술교육자라서 작품 고르는 기준이 남다를 것 같다.  
"그림 그리는 사람이라고 특별한 통찰력이 있는 것 같진 않지만 장르에 상관없이 끌리는 작업은 분명히 있다. 나는 작품 자체보다 그 작업을 한 사람이 뚜렷하게 보이고 그에게 끌릴 때 작품을 샀다."
'작가가 보이는 그림'이라면.
"아무리 시대가 바뀌고 작업의 방법과 개념이 바뀌어도 작품은 거울처럼 그 작가를 비추어준다. 예를 들어 나는 제프 쿤스의 작업이 멋있다고 생각하고 그의 의도를 이해하지만 나한테 그의 작품은 작가가 명료하게 보이지는 않는다. 반면 데이비드 호크니 그림에선 작가가 보이더라." 

그는 "작가가 드러나는 단서는 작품마다 다르다"고 했다. 김범의 드로잉은 "그 작가의 자화상 같아" 샀고, 손현선의 '흐르는 면'은 "작가의 자유로운 생각의 흐름이 좋아서" 샀다. 또 김현정의 10년 전 그림 '끈적한 밤, 목소리'의 경우 "일상의 풍경을 작가 특유의 깊은 감성으로 표현한 게 좋아서 샀다"는 그는 "이번에 작가가 내놓은 신작 붉은 장미('Roses and Kisses') 그림 역시 소재도, 색감도 다르지만 느낌은 같은 맥락"이라고 말했다. 김현정 작가의 신작은 개막일에 판매됐다.

한편 그가 주목해온 노은주는 서울 한남동 바톤갤러리 전속작가가 되었고, 일본인 작가 곤도 유카코는 조만간 개인전을 열 예정이다.

임소잠 작가의 작품 (2010). 종이에 유채. [사진 원앤제이갤러리]

임소잠 작가의 작품 (2010). 종이에 유채. [사진 원앤제이갤러리]

설원기 작가가 소장한 고지영 작가 작품. [사진 원앤제이갤러리]

설원기 작가가 소장한 고지영 작가 작품. [사진 원앤제이갤러리]

김현정 작가의 '끈적한 밤, 목소리'. 설원기 작가가 소장하고 있는 작품이다. [사진 원앤제이갤러리]

김현정 작가의 '끈적한 밤, 목소리'. 설원기 작가가 소장하고 있는 작품이다. [사진 원앤제이갤러리]

김현정 작가의 'Roses and Kisses'. [사진 원앤제이갤러리]

김현정 작가의 'Roses and Kisses'. [사진 원앤제이갤러리]

설원기 작가가 소장하고 있는 임소담 작가의 작품(2010). [사진 원앤제이갤러리]

설원기 작가가 소장하고 있는 임소담 작가의 작품(2010). [사진 원앤제이갤러리]

설원기 컬렉션에 전시된 토마스 노즈코프스키의 작품. 왼쪽이 설기원 작가의 소장품이다. 이 작가는 30년 전 설기원 작가에게 작품을 주기로 한 약속을 사후에 유족을 통해 지켰다. 현재 미국 뉴욕 페이스갤러리에서 전시가 열리고 있다. 권혁재사진전문기자

설원기 컬렉션에 전시된 토마스 노즈코프스키의 작품. 왼쪽이 설기원 작가의 소장품이다. 이 작가는 30년 전 설기원 작가에게 작품을 주기로 한 약속을 사후에 유족을 통해 지켰다. 현재 미국 뉴욕 페이스갤러리에서 전시가 열리고 있다. 권혁재사진전문기자

젊은 작가들 작품이 많다. 
"제자들 전시에 가서 산 게 가장 많다. 제자들의 전시는 꼭 직접 가서 보고, 내 제자가 아니어도 졸업하고 첫 개인전을 여는 작가들 전시를 눈여겨보는 편이다. 작품을 사고 나면 작가의 나중에 어떻게 변화하는 지켜보는 게 또 다른 즐거움이다. " 
작품을 살 때 '스승 찬스'를 쓰기도 하나.  
"여기에 나온 모든 작품은 딱 한 점을 제외하곤 내가 전시장에 가서 산 것이다. 미술 발전에 화랑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기에, 작가한테 직접 사지 않고 전시장에서 산다." 

컬렉션 전시에 출품작 중 그가 가장 많은 지출을 한 작품의 가격은 450만원. 설 작가는 "젊은 작가의 붓질에서도 작가의 치열한 노력이 고스란히 보인다. 작품 하나하나 작가들이 얼마나 공들였는지 훤히 보이기에 애착이 갈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예외로 그가 작가에게 직접 산 작품은 제자인 문진영 작가의 학부 시절 그림이다. "물감 살 돈이 없다고 해서 드로잉을 여러 개 샀다"는 그는 "이번에 문진영은 7년째 그리고 있는 작품을 전시에 내놨다"고 전했다.

컬렉션엔 돈이 든다. 너무 비싸서 못 산 작품도 있나.
"젊은 작가들 작품을 주로 한 점씩 샀기에 큰 부담은 아니었지만 가끔 갖고 싶어도 그러지 못한 작품들이 있다. 얼마 전 도쿄 분까무라 미술관에서 본 안토니오 로페즈-가르시아 작품도 그중 하나다. 그의 작품을 집에 걸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가질 순 없었다(웃음)."
그림을 오로지 '투자 대상'으로만 여기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게 꼭 부정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돌아보면 미술의 역사가 그랬다. 그렇게 시작하는 컬렉터도 미술계를 돕고 있는 거다. 작품을 산다는 것은 작가를 지원한다는 것이다. 각자 시작할 때 목적은 다를 수 있다. 투자로 시작한 컬렉터도 작품을 오래 접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자신의 취향을 알게 되고, 시간이 흘러 깊이 있는 소장가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  
가장 최근에 산 그림은. 
"구지윤(39) 작가의 추상화다. 바로 인근 갤러리(아라리오)에서 현재 개인전('혀와 손톱')을 하는 작가라서 그의 작품은 이번 전시에서 빠졌다. 학창시절부터 지켜봐 온 작가인데 이번에 작은 그림을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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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 컬렉터에게 조언한다면.  
"내가 끌리는 작품을 고르라고 말해주고 싶다. 컬렉션은 그 작품에 자신을 쏟아부은 작가를 곁에 두는 것과 같은 즐거움을 선사한다. 남의 시선, 스타일에 너무 치우치지 말고 내 옆에 두고 자주 보고 싶은 작품을 고르는 게 좋다. 크기가 꼭 클 필요도 없다. 서재에 놓고 차분하고 조용한 시간에 바라보면 좋은 작품들이면 된다."  
젊은 작가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교육자로서 이런 얘기를 해도 될까 싶은데, 솔직히 그림을 안 그려도 된다는 얘기를 해주고 싶다. 예술가라는 삶은 작품으로 그치는 게 아니니까 충분히 행복하게 예술가의 마음으로 자기 삶을 개척하면 그것으로도 충분하다고 말해주고 싶다. 그래도 창작만이 나의 인생이라고 생각한다면 끝까지 포기하지 말았으면 한다."

컬렉션 전시는 10월 2일까지. 한편 설원기는 11월 3일부터 서울 율곡로 이화익갤러리에서 개인전, 12월 3일부터 서울 북촌로 이목갤러리에서 윤동구 작가와 2인전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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