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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 선물로 오빠 셋 북송…부모 원망" 그녀의 다큐 26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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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암동 중앙일보 스튜디오에서 만난 재일조선인 양영희 감독. 올해 DMZ국제다큐영화제 개막작에 선정된 다큐 ‘수프와 이데올로기’에선 여든 너머 제주 4‧3 경험을 처음 고백한 어머니가 이후 치매가 급격히 악화하며 180도 바뀐 모녀의 일상사를 어머니의 삶에 대한 회고와 함께 담담히 그렸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상암동 중앙일보 스튜디오에서 만난 재일조선인 양영희 감독. 올해 DMZ국제다큐영화제 개막작에 선정된 다큐 ‘수프와 이데올로기’에선 여든 너머 제주 4‧3 경험을 처음 고백한 어머니가 이후 치매가 급격히 악화하며 180도 바뀐 모녀의 일상사를 어머니의 삶에 대한 회고와 함께 담담히 그렸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마늘 몇 개 넣어요?” “정해진 건 아니고 그릇 하나 꽉 차게 담아서….” 재일조선인 장모가 일본인 사위에게 백숙 손맛을 전수한다. 야무지게 거들던 사위가 국물 한모금에 서툰 한국말로 감탄한다. “맛있어요!”

9일 열리는 DMZ국제다큐영화제 개막작 #'수프와 이데올로기' 만든 양영희 감독 #오빠들 김일성 선물로 바친 부모 이해 못해 #26년간 재일조선인 가족사 다큐 3부작 #치매 노모가 감춰온 제주4·3 아픔 알게 돼

9일 경기도 파주에서 개막하는 제13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개막작에 선정된 재일조선인 양영희(57) 감독의 다큐 ‘수프와 이데올로기’ 속 장면이다. ‘디어 평양’(2005), ‘굿바이, 평양’(2009) 등 남북문제를 그려온 다큐 3부작의 마지막 작품이다. 세 편 모두 사남매 중 세 오빠를 평양에 떠나보낸 양 감독 자신의 가족사를 다뤘다. 이번 영화 ‘수프와 이데올로기’에서 양 감독은 2009년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일본에 단둘이 남은 어머니가 80 들어서야 처음 고백한 고향 제주 4‧3의 아픈 기억을 새겼다.

"사상 달라도 같이 밥 먹자, 싸우거나 죽이지 말고"

지난달 30일 서울 상암동 중앙일보에서 만난 양 감독은 “개막작 선정은 처음”이라며 “이제껏 참가한 어느 영화제보다 평양에 가까운 영화제에, 만나지 못한 가족을 그린 작품을 갖고 간다는 게 기쁘면서도 복잡하다. 차 타면 바로 평양인데 오빠들, 조카들도 보러 올 수 있으면 좋을텐데 아쉽다”고 소감을 밝혔다.

'수프와 이데올로기'에서 2018년 제주도를 찾은 어머니 강정희씨(가운데)와 양영희 감독(왼쪽), 당시 교제 중이던 남편 일본 언론인 아라이 카오루씨. 조선 국적자도 한국에 갈 수 있게 되면서 강씨는 70년만에 제주에 가 4‧3희생자위령재례에 참석했다. [사진 DMZ국제다큐영화제]

'수프와 이데올로기'에서 2018년 제주도를 찾은 어머니 강정희씨(가운데)와 양영희 감독(왼쪽), 당시 교제 중이던 남편 일본 언론인 아라이 카오루씨. 조선 국적자도 한국에 갈 수 있게 되면서 강씨는 70년만에 제주에 가 4‧3희생자위령재례에 참석했다. [사진 DMZ국제다큐영화제]

제목의 수프는 “밥을 뜻한다”고 설명했다. “생각‧사상이 달라도 같이 밥을 먹자는 것이죠. 지금도 세상에선 종교가 다르다고 싸우고 죽이고 하잖아요. 우리 가족만 해도 이데올로기가 다른 나와 아버지가 웃으며 밥 먹을 때까지 15년쯤 걸렸으니까요.”

양 감독은 북한에 충성하는 조총련(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계 부모를 이해할 수 없어 반항하며 자유주의자로 자랐다. 세 오빠는 그가 여섯 살 되던 해 북송사업으로 한 번도 본 적 없는 ‘모국’에 보내졌다. “김일성 탄생을 기념하는 선물처럼 갔죠. 그런 권력이나 조직 때문에 개인의 인생이 가볍게 다뤄지는 데에 저는 거부감이 아주 셌어요.”

"김일성 선물로 북송된 오빠들, 부모님 원망했죠" 

20대 때부터 아버지와 밥도 안 먹던 그는 뉴욕에 다녀온 것을 계기로 1995년부터 자신의 가족을 카메라에 담기 시작했다. “뉴욕에선 마이너리티들도 당당했어요. 충격이었죠. 일본에선 본명(우리말 이름)으로 살면서 매일 망설였거든요. 취직 거절당하고, 부동산 계약할 때도 너무 어려워 일본 이름으로 바꿔야 하나. 이렇게 고민할 때 전혀 나를 바꿀 필요가 없다, 달라져야 하는 것은 사회다. 그렇게 의식이 전환되니 무겁게 생각했던 저의 백그라운드가 흥미롭게 느껴졌죠.”

그렇게 10년간 ‘디어 평양’을 찍으며 양 감독은 아버지에게 다가섰다. 친정 식구들까지 북으로 떠나보낸 어머니가 한 달에 한 번이라도 정치 이야기 없이 세 식구 평화롭게 모여 밥 먹자고 청하면서 부녀는 휴전을 선언했다.

영화 속 백숙 국물은 양 감독이 오사카를 떠나 도쿄에 혼자 살 때 어머니가 매달 꼭 보내주던 것이다. “한국은 ‘수프(국물)’의 나라잖아요. 엄마는 옛날부터 국물을 먹어야 한다고 제주도식으로 생선 많이 들어간 국물도 자주 해주셨죠.”

여든 노모가 처음 고백한 제주 4·3 경험

강정희씨는 자신이 고백한 4.3 체험을 딸 양영희 감독이 영화로 만든다고 하자 기뻐했지만, 이후 알츠하이머가 악화했고, 지난해 뇌경색으로 쓰러졌다. 영화를 볼 수 없게 된 어머니를 위해 양 감독은 최근 영화음악을 어머니에게 들려드렸다고 했다. [사진 DMZ국제다큐영화제]

강정희씨는 자신이 고백한 4.3 체험을 딸 양영희 감독이 영화로 만든다고 하자 기뻐했지만, 이후 알츠하이머가 악화했고, 지난해 뇌경색으로 쓰러졌다. 영화를 볼 수 없게 된 어머니를 위해 양 감독은 최근 영화음악을 어머니에게 들려드렸다고 했다. [사진 DMZ국제다큐영화제]

양 감독의 어머니 강정희씨는 1930년 오사카에서 제주 출신 재일조선인 부모 사이에 태어났다. 열다섯 때 미군 공습을 피해 강씨는 부모의 고향인 제주로 피란을 갔다. 3년 뒤 4·3이 닥쳤다. 강씨는 외사촌들이 죽고 외삼촌이 경찰에게 맞아 죽는 광경을 봤다. 첫사랑이었던 약혼자도 그때 잃었다. 강씨는 어린 두 동생을 데리고 30㎞를 걸어 목숨 걸고 오사카 밀항선을 탔다.

양 감독이 자전적 극영화 ‘가족의 나라’(2012)를 준비하던 무렵이다. 몸이 부쩍 쇠약해진 어머니는 열여덟에 제주에서 겪은 4‧3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제 카메라를 받아들여온 어머니인데도 4‧3 이야기할 때는 ‘무섭다. 치워라’ 하셨어요. 제가 ‘한국이 달라졌다. 4‧3에 대해 조사도 많이 하고 체험담도 나오고 얘기해도 된다’고 하니 구체적으로 말해주셨죠. 북한의 오빠들, 증손자들도 이런 이야기 알아야겠다, 싶어 기록하기 시작했어요.”

양 감독은 “4‧3 체험을 접하며 제주 출신인 부모님이 왜 북한을 조국으로 선택했는지, K팝 가수도 싫어하면서 ‘남한 사람들은 잔인해, 나빠’ 하셨는지 비로소 알게 됐다”고 했다.

"어머니 마음 겨우 깨닫자, 치매 닥쳤죠"

“예전엔 사람들 앞에서 북한의 아들, 손주 자랑을 많이 하는 엄마가 솔직하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조국‧수령님 덕택으로 잘 산다고 하는데 나는 속으로 ‘거짓말. 어머니가 소포 보내고 돈 보내고 해서 오빠들이 잘살지. 조국‧수령님이 해주는 게 아닌데 왜 그렇게 북한에 대한 프로파간다 같은 말을 할까’ 했죠.”

어머니의 고백 후 그는 처음으로 오사카에 난민이 되어 돌아온 어머니의 입장을 그려봤다. “아주 복잡했을 거예요. 돌아온 오사카는 차별이 아주 심했죠. 어머니는 프라이드가 높은 사람이라 열심히 자기는 괜찮다, 당당하다, 그렇게 노력한 것 같아요. 어릴 때부터 나에게 ‘옷을 깨끗하게 잘 입어야 일본 사람들이 깔보지 않는다’면서 빨래‧다림질을 얼마나 열심히 하셨는지….” 양 감독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양영희 감독의 어머니가 정정하던 시절 백숙을 끓이는 모습. 지난해 결혼한 양 감독의 남편이 5년 전 처음 어머니를 뵀을 때 비법을 물려받아 이젠 손수 장모에게 끓여드리게 됐다. 양 감독은 “우연하게도 결혼한 남자가 일본사람이지만, 나 이상으로 위가 한국인이랄까. 김치나 마늘 없이 못 사는 사람인데 그 백숙을 너무 좋아한다”고 귀띔했다. [사진 DMZ국제다큐영화제]

양영희 감독의 어머니가 정정하던 시절 백숙을 끓이는 모습. 지난해 결혼한 양 감독의 남편이 5년 전 처음 어머니를 뵀을 때 비법을 물려받아 이젠 손수 장모에게 끓여드리게 됐다. 양 감독은 “우연하게도 결혼한 남자가 일본사람이지만, 나 이상으로 위가 한국인이랄까. 김치나 마늘 없이 못 사는 사람인데 그 백숙을 너무 좋아한다”고 귀띔했다. [사진 DMZ국제다큐영화제]

“희망을 걸 수 있는 종교처럼 북한을 찾은 거죠. 남 앞에선 북한의 좋은 말만 했지만, 집에서는 우셨어요. 큰오빠 조울증 알고 울고(북송 후 좋아하던 음악공부를 빼앗긴 양 감독의 큰오빠는 조울증을 앓다 2009년 평양에서 죽었다), 가족들 생각에 울고. 그런 엄마가 저는 불편했는데 일본인 남편은 오히려 ‘어머니 인생인데, 그럴 수밖에 없는 인생이 있는 것’이라고 존중했죠. 내가 겨우 깨닫기 시작했을 때 어머니 치매가 심해지셨어요.”

어머니는 치매 탓에 세상을 떠난 가족들이 곁에 있는 듯 환상 속에 살면서도, 자신의 영화를 만든다는 양 감독에게 기뻐하며 빨리 만들라 했다. 지난해 뇌경색으로 입원한 후론 눈을 거의 뜨지 못하게 됐다.

26년간 가족 다큐 3부작…방북 금지당해

“예정한 것은 아닌데 26년이 걸려서 3부작이 돼버렸네요.” 1995년 처음 카메라를 들어 이데올로기가 다른 부모를 이해하기까지 걸린 세월이다. “왜 일본 이름 안 쓰냐” “왜 코리안이 일본에 있냐” 등 재일조선인으로 살며 평생 받은 차별적인 질문에 대한 긴 답이기도 했다.

재일조선인과 북한 문제를 이념을 넘어 가족의 현실로 그린 ‘디어 평양’이 선댄스영화제 심사위원특별상을 받고 부산국제영화제 등에서 주목받으면서 양 감독은 방북이 금지됐다. “‘디어 평양’ 이후 조총련에선 사죄문 쓰고 이제 영화 안 하겠다고 하면 오빠들을 만나도록 해줄 수도 있다고 했는데 내가 어느 정도 각오로 작품을 내고 있는지 모르시는구나, 싶었죠.” 그는 사죄문 대신 평양에 있는 조카 선화를 조명한 ‘굿바이, 평양’을 만들었다. “나라 사이에는 복잡한 문제들이 많지만 저는 정치가가 아니니까. 그런 정치에 의해 불편하게 된 가족이나 한 개인의 인생을 통해 역사‧정치‧사회가 보이는 그런 작품을 만들겠다”고 지금껏 다짐해왔다.

양영희 감독은 “다큐를 찍을 땐 최대한 경각심과 그 사람(피사체)에 대한 경의를 갖고 카메라를 받아들여주는 것에 대한 고마움을 느끼면서 대담하지만 아주 섬세하게 다가가야 한다"면서 "연출이 한번 더 그 이야기 해보라, 한번 더 걸어보라 하면 신뢰관계가 무너진다. 주문 받은 사람은 불쾌할 것이다. 저는 26년간 가족을 찍으면서 한번도 그러지 않았다"고 지론을 밝혔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양영희 감독은 “다큐를 찍을 땐 최대한 경각심과 그 사람(피사체)에 대한 경의를 갖고 카메라를 받아들여주는 것에 대한 고마움을 느끼면서 대담하지만 아주 섬세하게 다가가야 한다"면서 "연출이 한번 더 그 이야기 해보라, 한번 더 걸어보라 하면 신뢰관계가 무너진다. 주문 받은 사람은 불쾌할 것이다. 저는 26년간 가족을 찍으면서 한번도 그러지 않았다"고 지론을 밝혔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다큐를 만드는 동안 북한의 가족들이 ‘왜 이런 짓을 하냐. 우리가 벌 받으면 어떡하냐’고 칼 들고 나를 쫓아오는 꿈을 계속 꿨다”는 그다. “북한에 있는 가족의 안전도 걱정되지만, 북한을 찬미하는 작품을 만들고 싶지 않다. 가족을 지킬 수 있도록 평균대 위를 걸어가듯 한 마디, 한 마디 신중하게 다큐를 만들어왔다”면서 “나중에 북한의 가족이 봤을 때 ‘너 이런 작품 때문에 우리를 이용했냐’란 말은 안 들어야겠다는 책임감이 있다”고 했다.

양 감독은 다큐를 만들며 스스로 지켜온 윤리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가끔 다큐를 만들면서 사회에 훌륭한 일을 하는 것처럼 본인이 말하는 감독이 있는데 창피하더군요. 다큐에 등장하는 사람들이 평생을 거쳐 도달한 그 무게 있고 설득력 있는 말들은 우리가 시나리오를 쓴 게 아니라 그 사람의 경험에서 나온 것인데 우리는 자기 작품으로 발표하잖아요. 뻔뻔한 겁니다, 다큐하는 사람은 그 자각이 있어야죠. 그 자각이 없으면 다큐를 위해 사람의 생활이 존재하는 것처럼 착각해서 여기서 울어야 하는데, 한 번 더 그 이야기를 해보라, 한 번 더 걸어가 보라 하면서 한순간에 신뢰관계가 무너져요.”

양 감독은 차기작으론 극영화를 구상 중이다. “독일 나치, 유대인에 관해 훌륭한 작품이 지금도 많이 나오잖아요. 아우슈비츠에서 어떤 학살이 있었는지는 세상 사람이 상식으로 아니까 그다음부터 시작할 수 있죠. 재일교포, 북송문제, 4‧3문제도 영화로 더 많이 알리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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