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죽게 내버려 두라던 환자, 마지막 순간 “살고 싶습니다”

중앙일보

입력 2021.09.06 09:00

[더,오래] 조용수의 코드클리어(79)

환자는 치료를 완강히 거부했다. 침대 위에 일어선 채 시위했다. 손에 닿는 것을 닥치는 대로 잡아챘다. 자신의 팔에 꽂힌 링거줄까지. 새빨간 핏방울이 사방으로 솟구쳤다.

“이대로 죽게 내버려 두라고!”

바짝 날이 선 목소리가 중환자실에 울려 퍼졌다. 우리는 간신히 진정제 투여에 성공했다. 환자는 그제야 비로소 조용해졌다.

그는 아픈 곳이 없었다. 사실 환자라 칭하기도 민망했다. 혈액 검사를 포함한 모든 검사 수치가 정상이었으니까. 물론 문제는 있었다. 더 살고 싶지 않아 한다는 점.

한동안 쉬지 않고 소동을 피운 환자는 이제 반대로 아예 말이 없어졌다. 대답조차 귀찮아했다. 살고 싶은 생각도 살아야 할 이유도 없다며 자기를 혼자 내버려 두라고 했다. 온종일 침대에 누워 일어나지 않았다. 이미 죽어버린 사람처럼.

제발 자길 죽여달라 요구하던 환자는 이제 일어나서 밥을 먹기 시작했고 때론 우스갯소리를 건넸다. 눈빛엔 생기를 더했다. 좋은 일이지만 한편으로 나는 마음이 불편해졌다. [사진 Bret Kavanaugh on Unsplash]

제발 자길 죽여달라 요구하던 환자는 이제 일어나서 밥을 먹기 시작했고 때론 우스갯소리를 건넸다. 눈빛엔 생기를 더했다. 좋은 일이지만 한편으로 나는 마음이 불편해졌다. [사진 Bret Kavanaugh on Unsplash]

어느 날 작은 소동이 일었다. 그는 우연히 맞은편 침대에서 난간을 타고넘는 할머니를 발견하고는 지체 없이 소리를 질렀다. 하마터면 낙상사고가 일어날뻔한 아찔한 순간이었다. 감사와 칭찬이 쏟아졌다. 그때부터였다. 그가 변한 건. 누군가를 구한 것에 적잖이 고양된 것일까? 유독 주위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그는 중환자실 한 귀퉁이에서 턱을 괴고 앉은 채 다른 환자를 살폈다. 주변은 온통 아슬아슬 환자뿐이었다. 온갖 기계에 의지해 연명하는 노인, 태어나서 햇빛 한번 보지 못한 갓난애 등등. 환자들 몸에 붙어있는 모니터는 쉬지 않고 알람을 짖어댔다. 삶과 죽음의 외줄 타기 현장. 소용돌이의 한 가운데. 죽는 게 편할 정도의 끔찍한 고통 속에서도 필사적으로 살고자 허우적거리는 사람들을 그는 두 눈에 똑똑히 새겼다.

그는 이제 더는 자길 죽여달라는 요구를 하지 않았다. 일어나서 밥을 먹기 시작했고 때론 우스갯소리를 건넸다. 시간이 갈수록 눈빛엔 생기를 더했다. 좋은 일일까? 물론. 일반적으로는. 하지만 반대로 나는 마음이 불편해졌다. 살릴 방법이 전혀 없는 환자였기 때문이다. 생에 대한 미련은 달가운 소식이 아니었다. 모든 걸 포기해버린 이전의 모습이 오히려 좋았다. 그편이 부담이 없었으니까.

그는 이런저런 기계를 달고 있는 환자와는 달랐다. 상태가 너무 양호했다. 얼핏 봐서는 환자란 걸 알아채기 힘들 정도로. 하지만 실상 그는 이곳의 누구보다도 죽음에 더 가까이 있었다. 다른 이들은 살아날 가능성이 있었지만, 그에겐 조그만 가능성도 없었다. 이미 죽어있는 것과 진배없었다. 지금이란 현재는 아직 죽기 전에 벌어지고 있는 과거라 봐도 무방했다. 그에게 남은 건 어떻게 살아가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정리하느냐 뿐이었다.

예상대로였다. 환자는 점점 상태가 나빠졌다. 숨을 몰아쉬기 시작했다. 심상치 않은 증상이었다.

“정말로 나, 살 수 있는 겁니까?”

잔뜩 가라앉은 목소리. ‘머지않아 숨을 거두겠구나’ 하는 직감이 왔다. 그 또한 자신의 처지를 알아챘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다고 포기하라는 말은 할 수 없었다. 지금의 그는 누구보다 살고 싶어 했으니까. 보호자와 상의하여 사실을 숨기기로 했다. 남은 며칠을 후회 없이 싸우다 갈 수 있게 응원하기로 했다. 우리는 혼신의 연기를 펼쳤다. 아내는 환자 곁에서 단 한 순간도 미소를 잃지 않았다.

그는 이제 불러도 쉬이 대답하지 못하였다. 숨 한번 들이켜기조차 쉽지 않았다. 가슴을 쥐어짜며 한 호흡 한 호흡을 겨우 뱉어냈다. 돌처럼 딱딱하게 굳어버린 그의 폐는 공기가 지날 틈이 남지 않았다. 숨 쉬는 걸 도울 방법은 없었다. 대신 나는 과하다 싶을 정도로 아낌없이 마약을 투여했다. 통증을 줄여주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환자도 나도 직감했다.

나는 그의 마지막을 함께 했다.

“살고 싶습니다.”

남은 기력을 쥐어 짜낸 그 한 마디가 거대한 파도가 되어 나를 덮쳐왔다. 다리에 힘이 빠져 주저앉을 것만 같았다. 살고자 하는 그의 간절함이 고스란히 전해져 왔다. 모두가 눈시울을 붉혔지만, 누구 하나 울음소리를 내지 못했다. 그저 마지막 순간까지 힘내라는 응원을 멈추지 않았을 뿐. 끝까지 해낼 수 있다며 용기를 북돋웠다. 그는 그렇게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죽음과 싸웠다.

그가 숨 쉬는 걸 도울 방법은 없었다. 과하다 싶을 정도로 아낌없이 마약을 투여해 통증을 줄여주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환자도 나도 직감했다. [사진 Marcelo Leal on Unsplash]

그가 숨 쉬는 걸 도울 방법은 없었다. 과하다 싶을 정도로 아낌없이 마약을 투여해 통증을 줄여주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환자도 나도 직감했다. [사진 Marcelo Leal on Unsplash]

“운명하셨습니다.”

나는 의사가 된 후 처음으로 사망 대신 운명이란 표현을 썼다. 보호자들은 참았던 눈물을 터트렸다. 이제 편히 쉬라는 말을 앞다투어 내려놓고는 그제야 원 없이 목 놓아 울었다. 나도 더는 참기 힘들었다. 한줄기 눈물이 뺨을 타고 흘렀다.

흰 천을 머리끝까지 덮은 침대가 덜컹거리며 중환자실을 빠져나갔다. 그는 여기서 어떤 세상을 보았을까? 옆자리 노인의 거친 숨소리는 지금도 끊기지 않았다. 여전히 생사의 고비에 서 있는 것이다. 건너편 아이는 다행히 혈색이 조금 돌아왔다. 작지만 또렷한 울음소리가 났다. 그 옆, 또 그 옆에서도 환자들은 줄줄이 누워 죽음과 싸우고 있었다. 그가 떠난 이 순간에도. 살고 싶다던 마지막 말은, 비단 그 자신만을 위한 소망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가 떠난 빈 침대에는, 또 한 명의 새로운 환자가 올라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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