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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소 영수증으로 '홀인원보험' 탔는데…대법 "유죄 파기" 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홀인원 이미지사진. (기사내용과 관계 없음) [일간스포츠]

홀인원 이미지사진. (기사내용과 관계 없음) [일간스포츠]

8년 전 ‘홀인원 보험’으로 500만원의 보험금을 탄 한 보험자가 허위 영수증으로 보험금을 타낸 혐의로 벌금 200만원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대법원은 “피고인에게 잘못된 법이 적용됐다”며 사건을 파기하고 다시 재판하라고 사건을 돌려보냈다. ‘보험사기방지특별법’ 제정 전에 벌어진 일에 대해 1·2심 모두 이 법을 소급해 적용했다는 것이다.

홀인원 성공에 500만원 보상 청구

홀인원 자료그림 [중앙포토]

홀인원 자료그림 [중앙포토]

A씨는 2012년 보험설계사를 통해 한 보험사의 골프보험에 가입한다. 이 보험은 이른바 ‘홀인원 보험’으로 골프경기 중 홀인원을 할 경우 발생한 비용을 500만원까지 보상해주는 보험이었다.

골프에서 홀인원(hole in one)은 한 번의 타수로 홀에 공을 넣는 것을 말한다. 골프 경기에서 홀인원은 매우 드문 일이어서 통상 홀인원을 하면 이른바 ‘홀인원 턱’을 내는 경우가 많다. 함께 골프를 치던 사람들이 상패 등 기념품을 만들어 축하해주거나 홀인원을 한 사람이 식사 대접을 하고, 다음 골프 경기에도 동반자들을 초대하는 식이다. 골프장에 기념 식수를 심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렇게 홀인원에 수반되는 비용이 수백만 원에 달하는 경우가 생기다 보니 보험업계에서 이를 보장해주는 상품이 나왔다. A씨가 가입한 보험 역시 홀인원 이후 축하 만찬 비용, 축하 라운딩 비용, 축하 기념품 구입 비용, 골프장 기념식수 비용, 동반 캐디에 대한 축의금 지출 등을 보장하는 상품이었다.

A씨는 보험 가입 이듬해인 2013년 4월 홀인원을 한 뒤 보험회사에 비용을 청구했다. 축하 식사와 골프 비용 등 홀인원과 관련해 14차례에 걸쳐 637만여원을 결제한 내역이었다. 보험사는 A씨의 청구내역 중 보험 약관에 포함된 것을 따져 550여만원을 보장 내용으로 인정했고, 최대 보상액인 500만원을 A씨에게 지급했다.

취소 영수증 1장…보험사기로 벌금 200만원

문제는 A씨가 보험사에 냈던 14개의 영수증 중 하나가 '취소 영수증'으로 밝혀지며 불거졌다. A씨는 홀인원을 기록한 당일 밤 10시 22분께 약 88만원을 결제했고, 40초 뒤 이 결제는 취소되고 58만원이 다시 결제됐다. A씨는 재결제 영수증(58만원)이 아닌 첫 결제 영수증(88만원)을 보험회사에 낸 것이다.

2019년 보험사기방지특벌볍 위반으로 기소된 A씨는 법원에서 “실수로 영수증을 잘못낸 것이고, 영수증을 냈을 때 보험회사에서 알려줬다면 바로 보완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1ㆍ2심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올해 4월 항소심은 “첫 결제와 취소 및 재결제가 매우 짧은 시간 내에 이뤄졌고, 결제액의 차이도 30만원으로 적지 않다”며“결제 이후 실제 보험 청구도 가까운 시일내에 이뤄진 점을 고려하면 이를 단순한 실수로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A씨가 보험회사에 홀인원 실손보험 500만원을 청구할 권리가 있다고 해도, 허위 영수증이 제출돼 보험회사가 잘못된 보험금을 지급한 이상 사기죄 성립에는 아무런 영향이 없다”고 판결했다. A씨는 벌금 200만원형을 받았다.

대법원 “보험사기특별법 만들어지기 전의 일”

그런데 A씨의 판결은 대법원에서 뒤집혔다. 대법원이 1ㆍ2심 판결의 잘못된 점을 찾아내 직권으로 파기환송했기 때문이다.

대법원이 문제 삼은 점은 A씨에게 적용된 ‘보험사기방지특별법’이다. 이 법은 2016년 3월 제정돼 공포된 뒤 6개월이 지난 그해 9월 30일부터 시행됐다. 기존에는 보험 사기에 대해 일반 사기죄를 적용했다.

문제는 A씨가 보험에 가입한 건 2012년, 홀인원을 하고 보험금을 청구한 건 2013년으로 보험사기방지특별법이 시행ㆍ적용되기 훨씬 전의 일이라는 점이다. 그런데도 1·2심은 보험사기방지법을 적용해 A씨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하급심에서 단독 판사 1명과 합의부 판사 3명이 사건을 두 차례 심리했지만, 이 점을 잡아내지 못했던 셈이다.

대법원은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1ㆍ2심에는 죄형법정주의와 형벌법규 불소급의 원칙을 위반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며 사건을 울산지방법원 합의부로 돌려보냈다. 홀인원 보험으로 500만원을 받았던 A씨는 8년이 지나 4번째 파기환송심을 받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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