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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선 "내가 이재명 혼냈다던데…거친 돌이 호박돌 됐더라"[정치언박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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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중앙일보 ‘정치 언박싱(unboxing)’은 여의도 정가에 떠오른 화제의 인물을 ‘비디오 상자’에 담아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정치권의 새로운 이슈, 복잡한 속사정, 흥미진진한 뒷얘기를 정리해드립니다.

박영선 전 장관 정치언박싱

박영선 전 장관 정치언박싱

박영선(61)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하는 언론중재법(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에 대해 “무슨 일이든지 단계적으로 접근해야 된다. 한꺼번에 뭘 하려고 하면 안 된다”며 우려를 표시했다. 지난 4·7 재·보선때 서울시장에 출마했던 박 전 장관이 언론과 인터뷰를 한 건 재·보선 아후 처음이다.

언론인 출신인 박 전 장관은 언론사에 최대 5배의 징벌적 손해배상을 물리는 언론중재법의 내용은 다소 무리라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고의·중과실 문제 부분은 개념정리가 좀 더 필요하다”며 “심지어는 고의·중과실을 빼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나온다”고 말했다. 사견임을 전제로 “열람차단청구권 문제도 일정 부분 언론인들의 의견을 수용할 필요가 있다. 가해 측에 페널티만 줄 게 아니라, 어떻게 피해를 구제할 건지 그 방안도 고민해야 한다”고 의견을 밝혔다.

서울시장 선거에서 낙선한 뒤 5개월 가까이 외부 노출을 자제해 온 박 전 장관은 지난 1일 더불어민주당 1위 대선 후보인 이재명(57) 경기지사 지원사격으로 활동을 재개했다. 그는 과거 MBC 기자·앵커로 활동한 경험을 살려 이 지사와 유튜브 대담 시리즈를 만들었다. 시리즈 제목 ‘선문명답’(박영선이 묻고 이재명이 답한다)을 박 전 장관이 직접 짓고, 영상 편집을 일일이 챙겼다고 한다. 박 전 장관은 “백수가 과로사할 정도”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2일 오전 서울 마포구 상암동 중앙일보 사옥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서울시장 후보 때 즐겨 입던 푸른색 정장을 입고 왔다. 김경록 기자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2일 오전 서울 마포구 상암동 중앙일보 사옥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서울시장 후보 때 즐겨 입던 푸른색 정장을 입고 왔다. 김경록 기자

오세훈 서울시장에 약 90만표 차이로 패배한 박 전 장관은 “낙선 후 100일간 굉장히 힘들었다”면서도 재도전 여부에 대해선 “글쎄, 상황을 좀 봐야 한다”며 가능성을 열어뒀다. 인터뷰는 2일 오전 중앙일보 사옥에서 1시간여 가량 진행됐다. 아래는 일문일답.

근황이 궁금하다.
본선에 나와 떨어진 게 처음이었다. 그래서 선거에서 떨어진 사람 심정을 그동안 전혀 몰랐다. 처음에는 멍하고 움직이기도 싫고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았다. 100일쯤 지나고 정신이 들기 시작해 서울 둘레길을 걸으며 생각을 정리했다. 서대문(집)-홍제천-한강 코스에서 찍은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려 소통한 게 마음속 어두움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됐다.
‘선문명답’ 영상은 어떻게 제작하게 됐나.
이 지사 측 요청을 받고 민주당 후보를 국민들에게 제대로 알릴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지난달 22일) 이 지사 인터뷰를 2시간 반가량 했다. 그걸 5부작으로 나눠 9월 1일부터 일주일간 매일 저녁 8시에 유튜브 ‘박영선 TV’를 통해 내보내고 있다.
이 지사와 원래 친한가.
2006년부터 알았다. 2007년 대선은 민주당이 정말 힘들었던 대선인데, 그때 내가 대선 후보(정동영) 총괄 지원실장으로, 부실장인 이 지사에게 지시하는 입장이었다. 이 지사 표현에 따르면 그 때 선거에 익숙하지 않아 내가 ‘일을 잘 못 한다’고 많이 야단을 쳤다고 한다. 나는 (야단친 게) 별로 기억이 나지 않는다. (웃음) 아마도 표현은 하지 않지만 애틋한 동지애? 그런 것이 조금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때도 이 지사는 ‘그건 말이죠, 그건 이렇게 하면 어떨까요’라며 굉장히 눈에 띄는 아이디어, 의견제시를 많이 했던 사람으로 기억한다.
여권 1위 대선 후보로 다시 만난 소회는.
국민들이 이 지사가 용기 있고, 결단력 있고, 추진력 있다는 건 100% 인정하지만 한편으로 ‘뭔가 불안하다’고 반응한다. 하지만 이번에 이 지사 본인이 국민들의 불안과, 그걸 고쳐야 된다는 것을 알고 있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혹시 (이재명이) 또 질주하면 어떻게 하지’라는 반응을 충분히 느끼고 있다는 점에서 나는 ‘선문명답’ 후 그에게 좀 더 많은 점수를 준다.

‘점수가 몇 점까지 올랐나’는 질문에 박 전 장관은 한사코 답을 피했다. 대신 “계곡의 거친 돌이 시냇가의 둥글둥글 호박돌로 바뀌었다”며 이 지사의 변화 가능성을 거듭 강조했다. 시장 선거 패배로 얻은 교훈을 묻자 “모든 일에 임할 때는 끝까지 겸손해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절실히 느꼈다”는 답이 돌아왔다.

끝까지 겸손하지 않았나.
그 당시에는 우리 민주당이 무엇을 국민들이 원하는지, 또 어떤 부분을 국민들에게 사과해야 하는지에 대한 깊은 성찰을 보여주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지난 4.7 재보선 당일 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의 당선 유력 소식을 들은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서울 여의도 민주당사로 들어서고 있다. 뉴스1

지난 4.7 재보선 당일 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의 당선 유력 소식을 들은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서울 여의도 민주당사로 들어서고 있다. 뉴스1

4·7 재·보선 후 민주당이 충분히 성찰했을까.
패배가 민주당에 굉장히 약이 된 건 맞다. 그러나 지금도 더 낮은 자세로 국민과 소통하고, 또 국민들이 바라는 일들을 진중하게 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최근 언론중재법을 강행한 당 지도부에 당부한다면.
법을 처리하다 보면 때때로 매몰되는 경우가 있다. 매몰되는 것을 굉장히 경계해야 한다. 지도부가 좀 더 넓은 시야를 가지면 충분히 타협할 수 있고, 받아들일 수 있다. 나도 원내대표를 해봤다. 여러 곳에서 의견이 들어와 균형을 잡아가는 게 굉장히 힘들더라. 그러나 성공한 원내대표, 성공한 당 대표가 되려면 균형감을 절대로 잃어버리면 안 된다. 국민들에게 ‘민주당은 이런 취지로 법을 냈는데, 검토 과정에서 이런 반대 목소리와 문제점이 있었다. 이런 역풍과 반작용과 폐해가 있을 수 있다. 그래서 이 부분을 이렇게 수정한다’고 충분히 설명하며 가는 게 제일 좋겠다. 

1982년 MBC에 입사한 박 전 장관은 23년간 기자로 일하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인 2004년 열린우리당 대변인으로 정치에 입문했다. 4선 동안 민주당 최초 여성 정책위의장(2011년)·원내대표(2014년)와 사상 첫 여성 국회 법제사법위원장(2012~2014년) 등을 지냈다.

차기 대선의 시대정신은 뭘까.
문재인 정부가 AI(인공지능) 시대를 만들었다. 이미 백신 접종 증명에 블록체인 기술이 들어가고 있다. 다음 정부에서 블록체인을 통해 모든 사회 시스템이 바뀔 거다. 공개적이고 더 투명하고, 더 잘 입증할 수 있는 블록체인 사회를 과연 누가 잘 끌어갈 수 있을 것인가에 방점이 찍혀 있다.
박영선 전 장관은 지난 4일 미국으로 떠났다. 그는 출국 이틀 전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지금부터 10월까지 미국에서 만날 사람들과 쭉 약속이 돼 있다"고 말했다. 김경록 기자

박영선 전 장관은 지난 4일 미국으로 떠났다. 그는 출국 이틀 전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지금부터 10월까지 미국에서 만날 사람들과 쭉 약속이 돼 있다"고 말했다. 김경록 기자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직에 애착이 컸다고 들었다.
사실 장관을 더 하고 싶었다. 프로토콜 경제라든가 이런 것을 더 정착시키고 싶어서 당에 ‘서울시장에 안 나가겠다’고 세 번이나 말했는데 모두 거절당했다. 아주 강하게.
당시 공천한 이낙연 전 대표 얘기인가.
그렇다. 다른 의원들도 많이 그랬다. (선거) 상황 자체가 점점 나빠져 가고 있었고, 이걸 다른 사람한테 나가라고 이야기하고 강요하는 것이 힘들겠다고 판단해 내가 나갔다. (※박 전 장관은 당시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를 직접 만나 서울시장 출마를 설득했다.)

인터뷰는 박 전 장관의 미국 출국(지난 4일) 이틀 전 이뤄졌다. 그는 앞으로 6개월간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수석 고문 자격으로 랜드연구소(Rand Corporation), 미네르바 스쿨(Minerva School), 매사추세츠공과대(MIT), 하버드대 등을 찾는다. 워싱턴 D.C에 머물며 미 의회와도 교류할 계획이라고 한다.

미국행을 결정한 이유는.
‘쉼 없이 달려왔으니 재충전이 필요하다’는 남편의 권유가 있었다. 미국의 4차 산업혁명 전환기를 살펴보고, 대한민국 디지털 경제를 세계 최강으로 만드는 일에 기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 주요 인사들에게 한국 민주당의 대선 후보를 알리고 연결시키는 소통 창구 역할도 할 수 있을 거다. 물론 틀림없이 남편은 나를 보내놓고 내가 못하게 하던 일을 할 수 있다.(웃음) 그가 제트스키·오토바이 타는 걸 너무 좋아하는데, 내 반대로 못했다.
박영선 전 장관은 남편(이원조 변호사) 이야기가 나오자 표정이 밝아졌다. 미국으로 떠나지만 "붙어있었던 시간이 오래였고 같이 있으니까 역시 좋다"고 말했다. 다만 "(남편에게는) 평소 잘 도닥여주다가, '이거는 반드시 화를 내야 되겠다' 싶으면 전혀 예상치 못할 때 세게, 강하게 혼을 낸다"는 고백도 했다. 김경록 기자

박영선 전 장관은 남편(이원조 변호사) 이야기가 나오자 표정이 밝아졌다. 미국으로 떠나지만 "붙어있었던 시간이 오래였고 같이 있으니까 역시 좋다"고 말했다. 다만 "(남편에게는) 평소 잘 도닥여주다가, '이거는 반드시 화를 내야 되겠다' 싶으면 전혀 예상치 못할 때 세게, 강하게 혼을 낸다"는 고백도 했다. 김경록 기자

일본 집 매각 절차는 끝났나.
끝났다. 남편이 일하면서 있던 집이다. 이번에는 미국에 새로 집을 얻는 게 조금 귀찮은 생각이 들어 아는 분 집에서 머물려 한다.

박 전 장관은 인터뷰 말미에 “MBC에 있었을 때는 나를 본 모든 사람이 대부분 ‘좋다’고 했는데, 정치에 오니 ‘좋다’는 사람이 있는 반면 내가 ‘싫다’는 사람도 많더라. 이게 싫었고 적응하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차기 지방선거 출마 의사를 묻자 “사람이 하는 일을 ‘그렇다, 아니다’로 단정할 수는 없지 않나”면서 “서울시장은 다방면으로 모든 시민의 삶을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정말 단단히 준비를 해야하는 자리”라는 답을 남겼다.

 박영선 전 장관(오른쪽)이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후보 시절인 지난 3월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이재명 경기도지사와 만나 손을 맞잡고 있다. 오종택 기자

박영선 전 장관(오른쪽)이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후보 시절인 지난 3월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이재명 경기도지사와 만나 손을 맞잡고 있다. 오종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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