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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낙하산 인사 없다” 공언한 대통령, 약속 지켜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2018년 3월 21일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과 황현선 전 행정관이 청와대 춘추관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2018년 3월 21일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과 황현선 전 행정관이 청와대 춘추관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20조 뉴딜펀드, 청와대 출신 문외한이 맡아

낙하산·보은인사 안한다고 해놓고 더 많아

금융권이 낙하산 인사로 신음하고 있다. 금융권에 따르면 20조원 규모의 한국판 뉴딜펀드 운용을 담당할 한국성장금융의 투자 임원에 황현선 전 청와대 민정수석실 행정관이 내정됐다. 한국성장금융은 지난 1일 이사회를 열어 황 전 행정관의 투자운용2본부장 선임 안건을 통과시켰다. 이어 발송한 주주 서한에서 오는 16일 예정된 주주총회에 이 안건을 상정한다고 밝혔다.

이 소식은 금융권을 발칵 뒤집었다. 한마디로 어처구니없다는 반응이다. 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내정을 철회하지 않으면 국정감사에서 철저히 진상을 규명하겠다”고 했다. 왜 이런 반응이 나오는지 보자. 한국성장금융은 2016년 2월 만들어진 성장사다리펀드가 전신으로 최근 투자운용본부를 2개로 나눠 뉴딜펀드 운용을 전담할 투자운용2본부를 신설했다. 2본부는 앞으로 정부가 모펀드를 만들고 민간이 참여해 20조원 규모의 펀드를 운용할 예정이다. 그 책임자로 황 전 행정관 선임이 추진되고 있다.

뉴딜펀드는 정권이 바뀌어도 운용될 펀드다. 운용본부장은 뛰어난 능력이 요구되는 자리다. 금융회사의 운용책임자는 고도의 전문성과 함께 20년 안팎의 경력과 다수의 성공 사례가 있어야 한다. 더구나 업계의 평판 조회까지 거치므로 사실상 문외한이라면 서류전형조차 통과하기 어렵다는 게 금융업계의 설명이다. 이런 현실에서 황 전 행정관 선임이 추진되고 있는 것은 낙하산의 힘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한국성장금융의 주주 구성을 보면 그 배경이 보인다. 산업은행·기업은행 등 공공기관이 주요 주주를 이루고 있다. 임원 선임부터 사업 방향까지 정부의 입김에서 벗어날 수 없는 구조다.

국민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자리에 사실상 문외한을 앉히는 것은 국민이 용납하기 어렵다. 황 전 행정관이 기업구조조정 관련 회사에서 2년 반 동안 감사로 일했으니 관련 경력이 있다는 해명은 어불성설이다. 오히려 감사 선임 때도 낙하산 논란이 있었다는 걸 상기시킬 뿐이다. 도를 넘는 낙하산 인사는 즉각 철회돼야 마땅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취임 당시 문 대통령은 “공기업 낙하산과 보은 인사는 없을 것”이라고 했지만, 낙하산 인사가 역대 어느 정권보다 많아졌다. 3선 국회의원으로 지난해 12월 생명보험협회장에 취임한 정희수 회장이 대표적이다. 지난달에는 금융결제원 감사에 천경득 전 행정관이 임명됐다. 금융경제연구소가 39개 금융기관을 분석한 결과, 현 정부 출범 이후 선임 및 연임된 임원 437명 중 31.6%가 관료·친정권 출신으로 밝혀졌다. 이른바 캠코더(캠프·코드·더불어민주당)라는 얘기다. 금융권 낙하산 인사에 대해 청와대가 해명해야 한다. 특히 부적격자인 황 전 행정관 내정은 철회하는 게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