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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가족] 아침 빛 충분히 봐야 좋은 밤잠 ‘생체시계’ 작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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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면

기고 이헌정 고려대안암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잠은 게으름의 상징으로 생각돼 왔고, 특히 한국 사람들은 잠을 적게 자는 것이 활력 있는 삶이며 성공의 비결이라고 여기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좋은 잠이야말로 건강을 지키는 비결이다. 필자는 전공의 시절 망상이나 환청을 겪는 환자들도 푹 자고 나면 증상이 현저히 좋아지는 것을 보며 잠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러면 어떠한 잠을 어느 정도 시간을 자야 좋을까. 일반적으로 성인의 이상적인 수면 시간은 7시간 정도다. 이보다 적게 자도 많이 자도 좋지 않다. 많이 자는 것이 안 좋다는 것에 대해서는 고개를 갸우뚱할 수 있을 것이다. 근데 평소 질 좋은 잠을 자고 있다면 많이 잘 필요가 없다. 잠을 길게 자야 한다면 잠의 질에 문제가 있을 가능성이 크다.

 흔한 실수가 잠을 ‘자는 행동’의 측면에서 접근하는 것이다. 좋은 잠을 자기 위해서는 잠을 낮 시간으로부터 밤까지 이어지는 리듬의 연장선에서 봐야 한다. 낮을 어떻게 보냈는가가 좋은 밤잠을 가져온다. 이는 ‘생체시계’ 때문이다. 뇌 속 생체시계는 아침 빛에 의해 작동한다. 즉 이른 아침의 밝은 빛을 충분히 보는 것이 좋은 밤잠을 가져온다.

 나는 아침 6시에 일어난다. 가능한 한 일찍 밝은 빛을 보려고 애쓴다. 여름에는 야외 산책을 통해 햇빛을 쐬는 게 최선이지만, 계절이나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실내에서 라이트박스를 활용해 인공 빛이라도 쐰다. 아침에 밝은 빛을 봤을 때 우리 몸은 15시간 뒤에 잠이 오도록 생체시계가 맞춰진다.

 좋은 잠을 자기 위해 하지 말아야 할 것도 있다. 되도록 낮잠을 자지 않는다. 낮에 졸음이 온다면 오히려 몸을 움직여서 잠을 쫓는다. 또 중요한 것은 심야에는 밝은 빛을 보지 않는 것이다. 특히 어두워진 침실에서는 눈의 동공이 확장된 상태가 되며 이때 노출되는 스마트폰 화면의 빛은 뇌의 생체시계를 교란시키기에 충분하다.

 자는 동안 일어나는 뇌의 회복 기능이 발휘되는 과정은 경이롭다. 깊은 잠을 잘 때 뇌에서는 뇌세포 사이의 간격이 벌어지며 그사이로 뇌척수액이 흐르면서 낮에 활동으로 만들어진 노폐물을 적극적으로 씻어낸다. 따라서 잠을 잘 못 자면 노폐물 배출의 장애로 인해 치매나 우울증 같은 질환이 잘 발생한다. 또한 좋은 잠은 식욕을 억제하는 호르몬 분비를 촉진한다. 반대로 알맞은 잠을 자지 못하면 고혈압, 당뇨, 심혈관계 질환, 내분비 질환, 면역기능저하, 감염병, 피부병 등 각종 질환을 유발할 수 있다. 각종 암의 발병률과 사망률도 증가한다.

 면역력이 강조되는 요즘, 잠의 중요성이 더 부각되고 있다. 잠을 잘 자면 세균과 바이러스에 대한 면역력도 좋아진다. 잘 자는 사람이 행복하다. 숙면은 우리 마음의 평화를 가져다주고 정신 건강과 삶의 질 향상에 도움을 준다. 잠은 낭비가 아닌 우리 몸과 마음의 건강을 유지해 주는 가장 손쉬운 건강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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