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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칭·횡격막 훈련, 관악기 연주는 과학입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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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뛰어난 기량으로 목관악기 연주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있는 조인혁(클라리넷, 왼쪽)과 조성현(플루트). "관악 연주는 타고나는 것보다 체계적인 훈련이 중요하다"고 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뛰어난 기량으로 목관악기 연주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있는 조인혁(클라리넷, 왼쪽)과 조성현(플루트). "관악 연주는 타고나는 것보다 체계적인 훈련이 중요하다"고 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오케스트라의 대다수는 바이올린·첼로 같은 현악기다. 하지만 중요한 독주를 맡는 악기는 주로 목관악기다. 클라리넷·플루트·오보에는 오케스트라의 실력을 결정하는 핵심 악기다.

클라리넷 연주자 조인혁(38)과 플루트 연주자 조성현(31)은 차세대 목관연주자를 대표한다. 또 오케스트라에서 목관 악기의 중요성을 실감하게 하는 이들이다. 건반 악기, 현악기, 성악 부문에 비해 뒤늦게 발전하기 시작한 한국 관악기의 수준을 끌어올리고 있다.

조인혁은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오케스트라에서 종신 수석이고, 조성현은 독일 쾰른 필하모닉의 종신 수석을 역임했다. 이들은 각각 한양대·연세대의 교수를 겸하며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고 2018년부터 여름이면 평창대관령음악제의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에서 수석으로 오케스트라 연주에 참여한다. 그때마다 높은 수준의 테크닉, 음악적 완성도를 보여주며 한국 관악기의 발전을 증명한다.

목관악기 연주자들의 실력이 어떻게 이렇게 발전했을까. 지난달 31일 만난 조인혁과 조성현은 “지난 세대의 노하우가 쌓였고, 여기에 본토의 방법을 더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앞으로는 세계 곳곳의 오케스트라에서 한국의 목관 수석 연주자들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도 했다.

“우리는 한국 관악 연주자의 3세대쯤이다.” 조인혁은 “피아노나 바이올린, 첼로보다 연주자 숫자가 적었지만 1세대 임준호·임현식 선생님에서 2세대 김현곤, 채일희 선생님 등으로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유학을 다녀오신 분들이 유럽이나 미국에서 이어지는 연주 전통을 익혀 우리 세대에 전했다. 우리 세대는 또 한 번 해외 경험으로 이 방법을 체화하고 있다.”

조인혁은 한국예술종합학교를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의 고등음악원에서 공부했다. 조성현은 예원학교 재학 중 미국으로 유학해 오벌린 음대, 독일 하노버, 뮌헨 국립음대를 졸업했다. 이들은 “해외에서 악기를 처음부터 다시 배우는 기분이었다”고 했다. 조성현은 “한국과 미국에서 연습을 정말 많이 했는데, 독일로 갔을 때 내 연주가 뼛속까지 틀렸다는 지적을 받았다”고 했다. “바람을 얼마만큼 어떻게 불어넣어야 하는지 아주 정확한 교육을 받았다. 플루트를 감으로 불지 않고 체계적으로 연주하는 법을 익혔다.”

이들은 정확한 방법으로 공부하면서 실력이 늘어났다고 했다.  조인혁은 “파리 음악원에서 기초부터 배웠다”고 했다. “음악원에서만 쓰는 연습곡들 리스트가 있었는데, 도약하는 음표를 위해서는 어떤 곡, 손가락 연습을 위해서는 어떤 곡 이런 식으로 목록이 정해져 있다. 이걸 다 익힌 후엔 클라리넷의 기술적 부분이 편안해졌다.”

호흡해야 하는 악기여서 신체적인 조건이 연주 실력에 영향을 더 미친다고 볼 수도 있다. 동양인들이 피아노·바이올린보다 관악기 연주에 불리한 이유로 선천적 신체가 꼽히기도 한다. 하지만 두 연주자는 “별로 그렇지 않다”고 했다. “관악기에서 호흡이 가장 중요한데, 횡격막(호흡근에서 가장 중요한 근육) 훈련 같은 걸 통해 실력을 늘릴 수 있다. 연습과 이론을 통해 발전할 수 있는 부분이다.”(조인혁)

조성현은 “호흡 훈련, 연습이 가장 중요하다. 연습을 잠깐만 쉬어도 근육이 돌아간다. 타고난 것보다 연습이 몇배 더 중요한 악기”라고 했다. 조인혁은 연주 전에 몸을 완전히 굽히고 펴는 식으로 큰 동작의 스트레칭을 한다. 그는 “목관악기 연주에서 근육 쓰임과 호흡에 더 과학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기본적인 훈련, 계속된 연습 끝에 이들은 클래식 음악의 본토에서 인정받고 있다. 조인혁은 2013년 칼 닐센 국제 콩쿠르에서 3위에 입상했고 스위스 빈터투어무직콜레기움 오케스트라, 바젤 심포니 오케스트라 종신 수석으로 선발됐다. 이후 뉴욕 메트로 옮겨 195대 1의 경쟁률을 뚫고 2016년 종신 수석이 됐다. 그는 “공부가 차곡차곡 쌓이다 둑이 터진 느낌이었다”고 했다.

조성현은 1990년대 후반, 관악기에선 드문 영재 코스를 밟았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예비학교에 다녔고, 명연주자 미셸 드보스트의 공개 레슨에서 발탁돼 유학한 케이스다. 2018년 쾰른 필하모닉에 영입되며 “불공평할 정도로 깨끗하고 훌륭한 음향을 만들어낸다”(아일랜드의 한 신문)는 평을 받았다.

두 사람은 독주자로 활동하면서, 대학에서 제자를 기르고 있다. 한국에서 오케스트라 연주를 하는 게 꿈이다. “오케스트라는 독주보다 50배 정도 긴장된다. 그래도 플루트는 오케스트라 악기다. 해외 오케스트라 경험을 한국에서도 나누고 싶다.”(조성현)

조인혁은 한국의 관악기 연주자들을 모아 5일 오후 7시 롯데콘서트홀에서 ‘관악질주’ 무대에 섰다. 플루트 박예람(프랑스 국립 아비뇽 오케스트라 종신 수석), 오보에 윤성영(프라하의 봄 국제 콩쿠르 3위), 바순 김현준(강남심포니 수석), 호른 김병훈(서울시향 단원)과 함께다.

조인혁은 “윤성영의 오보에를 처음 듣는데 프랑스 사람이 부는 줄 알았다. 세대를 거듭하며 실력이 발전하고 있다”고 했다. 조성현은 “곧 세계 곳곳에서 한국 목관악기 연주자들이 더 많이 자리 잡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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