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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역선택 방지' 안 넣는다...대신 본선 경쟁력 묻기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국민의힘 대권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5일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열린 공정경선 서약식 및 선관위원장 경선 후보자 간담회에서 눈을 감고 발언을 듣고 있다. 오른쪽은 정홍원 선관위원장. 연합뉴스

국민의힘 대권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5일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열린 공정경선 서약식 및 선관위원장 경선 후보자 간담회에서 눈을 감고 발언을 듣고 있다. 오른쪽은 정홍원 선관위원장. 연합뉴스

국민의힘 대선 경선 선거관리위원회(위원장 정홍원)가 5일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 때 ‘역선택 방지 조항’을 넣지 않기로 했다. 대신 100% 국민 여론조사로 하려던 1차 경선(9월 15일)에 책임당원 여론조사 20%를 반영하고, 최종 후보를 선출하는 3차 경선(11월 9일) 때는 단순 후보 선호도 대신 본선 경쟁력을 묻기로 했다.

정홍원 위원장은 이날 밤 11시쯤 “100% 국민 여론조사로 결정하기로 했던 1차 경선을 당원 의사가 조금이라도 반영돼야 한다는 생각에서 20%의 당원 여론조사를 반영하기로 했다”며 “마지막 3차 경선에서는 예정대로 국민 여론조사 50%, 당원 조사를 50% 비율로 반영하되 국민 여론조사 50%에 대해서는 본선 경쟁력을 측정해 점수를 반영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쉽게 말해 더불어민주당이 국민의힘보다 먼저 대선 후보를 확정하는 만큼 민주당 본선 후보와 국민의힘 경선 후보의 일대일 대결을 가정해 득표를 더 많이 하는 후보에게 더 많은 점수를 주는 방식으로 진행하겠다는 것이다.

정 위원장과 선관위원들은 3차 경선 때 사용할 본선 경쟁력 질문 방식에 대해선 함구했다. 하지만 정치권에선 흔히 ‘민주당 OOO 후보 대 국민의힘 OOO 후보가 대결하면 누구에게 투표하시겠습니까’와 같은 식으로 본선 경쟁력을 측정하곤 한다.

이날 선관위는 후보 8명을 추리는 1차 예비경선에서 ▶100% 여론조사로 역선택 방지조항을 넣지 않는 안 ▶역선택 방지조항을 넣은 여론조사와 뺀 여론조사를 반반씩 합산하는 중재안을 놓고 7시간 동안 격론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여론조사에는 역선택 방지조항을 배제하되, 100% 여론조사가 아니라 여론조사 80%, 당원 투표20%를 반영하자는 중재안이 나왔고, 최종 경선에 ‘본선 경쟁력’ 조사를 도입하자는 제안도 새로 제시됐다고 한다.

정치권에선 이날 국민의힘 선관위 결정이 최종 경선 때는 사실상 역선택을 방지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역선택 방지 장치를 도입하진 않지만, 최종 경선에서 민주당 최종 주자와의 대결을 가정해 경쟁력을 묻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역선택 방지 효과가 생기는 셈”이라고 말했다. 현재 여야 가상 양자대결 여론조사에서는 윤석열 전 총장이 국민의힘 경선 주자 중 가장 경쟁력이 높은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이날 선관위 결정 뒤 윤석열 전 검찰총장 측은 “선관위 결정을 존중하고 정해진 룰대로 따르겠다”고 밝혔다. 그동안 역선택 방지 조항 도입에 결사반대하던 유승민 전 의원도 “선관위 결정을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직접 밝혔다.

다만 아직 3차 경선 때 여론조사 문항 등이 확정되지는 않은 만큼 갈등의 불씨는 남아 있다는 평가다.

국민의힘 선거관리위원장 사임 의사를 밝힌 정홍원 위원장이 5일 오후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열린 공정경선 서약식 및 간담회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뉴스1

국민의힘 선거관리위원장 사임 의사를 밝힌 정홍원 위원장이 5일 오후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열린 공정경선 서약식 및 간담회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뉴스1

이날 국민의힘은 경선룰 문제로 당이 종일 어수선했다. 오후 3시쯤 열린 대선 예비후보 공정선거 서약식도 무거운 분위기 속에 진행됐다. 12명의 당 예비후보 중 8명 만이 참석했다. 여론조사 역선택 방지룰 도입에 반대하는 홍준표 의원, 유승민 전 의원, 하태경 의원, 안상수 전 인천시장은 당 선관위의 공정성을 문제 삼으며 불참했다. 당내에선 “시작부터 ‘반쪽 서약식’이 열렸다”는 자조 섞인 반응이 나왔다.

이날 가장 먼저 마이크를 잡은 이준석 대표는 “선관위의 운영에 불만이 있다고 당 공식행사에 불참하는 행위는 매우 우려스럽고, 다신 반복돼선 안 될 일”이라고 유감을 표했다. 정홍원 당 선관위원장도 “몇 명 후보가 참석 안 했는데 안타깝고 유감스럽다”며 “선관위가 사심 없이 정하려는 룰에 따르지 않겠다는 건 바람직하지 않은 태도”라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역선택 방지룰 도입을 주장하는 윤 전 총장은 “당이 정권 교체 의지가 있는지 국민에게 확실히 보여주고, 이 나라를 리드해나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경선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짤막한 입장만 밝혔다.

윤 전 총장의 면전에서 날 선 발언을 쏟아낸 후보도 있었다. 장성민 전 의원은 “윤 전 총장이 기습 입당식을 계기로 1인 정당, 개인 사당으로 후퇴하는 구태 정치의 물결이 당에 출렁였다”며 “젊은 당 지도부가 파격으로 튼 혁신정치의 물결을 자유당식 건달주의 정치로 회귀했다”고 주장했다. 정 위원장은 “후보 검증은 앞으로도 기회가 있으니 오늘은 좋은 말씀을 해달라”고 제지했다. 이날 행사는 서약식 포토타임을 끝으로 약 50분 만에 종료됐다.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들이 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열린 공정경선 서약식 및 선관위원장 경선 후보자 간담회에서 서약서에 서명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황교안, 최재형, 장성민 후보, 이준석 대표, 정홍원 선거관리위원장, 장기표, 윤석열, 원희룡, 박찬주, 박진 후보. 홍준표, 유승민, 하태경, 안상수 후보는 '역선택 방지조항 제외'를 주장하며 이날 행사에 불참했다. 뉴스1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들이 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열린 공정경선 서약식 및 선관위원장 경선 후보자 간담회에서 서약서에 서명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황교안, 최재형, 장성민 후보, 이준석 대표, 정홍원 선거관리위원장, 장기표, 윤석열, 원희룡, 박찬주, 박진 후보. 홍준표, 유승민, 하태경, 안상수 후보는 '역선택 방지조항 제외'를 주장하며 이날 행사에 불참했다. 뉴스1

이날 어수선했던 서약식을 두고 당내에선 “경선 유불리를 놓고 감정싸움이 불붙은 국민의힘 민낯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국민의힘 3선 의원)는 반응이 나왔다.

실제 전날에는 경선 일정을 보이콧하겠다는 일부 후보들의 성명까지 나왔다. 홍준표·유승민·하태경·안상수·박찬주 후보(박 후보는 이날 서약식 참석)는 공동 성명에서 “정 위원장은 아무런 명분도 없는 경선룰 뒤집기 시도를 즉각 중단하라”고 주장했다.

여기에 윤 전 총장 측과 함께 역선택 방지룰 도입을 주장하며 일종의 공동 전선을 짰던 최재형 전 감사원장까지 5일 “정해진 룰을 바꾸는 것이 가치관과 맞지 않아 멈추기로 했다”고 입장을 선회했다. 역선택 방지룰을 도입하자는 후보가 사실상 윤 전 총장만 남게 되자 당 안팎에선 “윤 전 총장이 고립된 형국”이라는 평가도 나왔다.

다른 주자들은 윤 전 총장과 선관위를 겨냥해 잇따라 날 선 발언을 내놨다. 홍 의원은 이날 “(찬성파는) 윤 후보 한 사람만 남았다는데 미련이 남아 역선택을 운운하는 건 (정 위원장) 스스로 불공정을 자인하는 것”이라고 했고, 유 전 의원은 “윤석열 일병 구하기에 올인한 정 위원장은 즉시 짐 싸서 떠나시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정홍원 사의 표명 뒤 철회…“이준석이 만류”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열린 공정경선 서약식 및 선관위원장-경선 후보자 간담회에 참석해 생각에 잠겨 있다. 뉴시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열린 공정경선 서약식 및 선관위원장-경선 후보자 간담회에 참석해 생각에 잠겨 있다. 뉴시스

이날 서약식 직전 정 위원장의 사임 소식이 보도되면서 당내가 들썩이기도 했다. 당 관계자에 따르면 정 위원장이 이날 이 대표에게 고민을 얘기하며 물러날 수 있다는 뜻을 내비쳤고, 이 대표가 만류해 생각을 바꿨다고 한다. 정 위원장은 이날 “사임 뉴스가 사실이냐”는 장 전 의원의 질문에 “제가 고민하는 모습을 보고…(보도가 나간 것 같다)”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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