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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썩은 자본·연예계 도려내야"… 중국 뒤덮은 '문혁 2.0' 논쟁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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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1일 시진핑 중국공산당 총서기 겸 중국 국가주석이 베이징 천안문 광장에서 거행된 창당 100년 기념대회에서 연설을 마치고 중국공산당 만세를 외치며 손을 치켜올리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지난 7월 1일 시진핑 중국공산당 총서기 겸 중국 국가주석이 베이징 천안문 광장에서 거행된 창당 100년 기념대회에서 연설을 마치고 중국공산당 만세를 외치며 손을 치켜올리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시진핑(習近平) 중국공산당 총서기의 3연임을 결정할 20차 당 대회를 1년여 앞둔 중국에서 ‘문화대혁명 2.0’ 논쟁이 격화되고 있다. 당국이 ‘공동부유(共同富裕, 더불어 잘살기)’를 총 기조로 내세우며 시장 논리에 역행하는 각종 정책을 쏟아내면서다. 사교육 철퇴, 연예계 정화, 빅 테크 기업과 게임 규제, 자선·기부 압박, 반(反)독점 강화, 민간 기업의 공산당에 대한 복종 강요 등이 잇따르자 이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분출하고 있다. 당국에 맞서는 조직적 움직임까지는 아니지만, 좌·우 노선 투쟁의 양상으로 번지면서 권력투쟁으로 비화할지 주목된다.

공동빈궁, 개인숭배, 위드코로나…좌·우 노선 투쟁 양상

지난 4일 홍콩 일간지 명보가 게재한 리광만과 후시진 논란 기사의 사진과 주요 발언. [명보 캡처]

지난 4일 홍콩 일간지 명보가 게재한 리광만과 후시진 논란 기사의 사진과 주요 발언. [명보 캡처]

리광만 “미국이 스파이 선동해 색깔혁명 시작”   

첫 번째 충돌은 전·현직 신문사 편집인이 SNS에서 벌인 ‘문화대혁명 2.0’ 논란이다. 논쟁은 지난달 27일 지난 2012년 정간된 관영 매체 ‘화중전력보(華中電力報)’의 리광만(李光滿·62) 총편(편집인)이 자신의 웨이신(微信·메신저) 채널에 “모두가 느낄 수 있다. 지금 한바탕 심각한 변혁이 진행 중”이란 글로 시작됐다. 마오쩌둥의 극좌 노선을 신봉하는 리광만은 “교육이 진짜 평민화·공평성으로 돌아가 보통 인민의 상승 이동을 가능케 하고, 장래 높은 집값과 비싼 의료비를 다스려, 교육·의료·주택의 3대 난관을 해결해야 한다”며 “부자를 죽여 빈곤을 해결하는 살부제빈(殺富濟貧)은 아니지만, 부익부 빈익빈의 소득 격차 확대 문제를 확실히 해결해야 한다. 공동부유는 보통 노동자가 사회의 재부(財富) 분배에서 더 많이 가져가게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 “미국이 중국에 바이오 전쟁, 인터넷 전쟁, 여론 전쟁, 우주 전쟁을 발동했다”며 “중국 내부의 스파이를 통해 중국에 색깔 혁명을 시작했다”고 선동했다.

전직 관영 신문 총편집이었던 리광만의 글을 전재해 게재한 중국 관영 중앙매체 홈페이지 모음. 위로부터 인민일보, 신화사, 광명일보, 중화망. [각사 웹사이트 캡처]

전직 관영 신문 총편집이었던 리광만의 글을 전재해 게재한 중국 관영 중앙매체 홈페이지 모음. 위로부터 인민일보, 신화사, 광명일보, 중화망. [각사 웹사이트 캡처]

리광만은 “자본 집단과 연예계를 막론하고 썩은 나무를 도려내듯 쉬운 부분부터, 깊은 뼈를 긁어 상처를 없애는 것까지, 집 안을 청소하고, 공기를 맑게 만들어 중국의 사회 주체들이 몸과 마음을 기쁘게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리광만의 글은 29일 중국중앙방송(CC-TV), 신화사, 인민일보 등 중앙 관영 매체의 웹사이트에 전문이 전제됐다. 당 중앙선전부의 개입 없이 벌어질 수 없는 상황에 평소 포퓰리스트를 자처했던 국수주의 매체 환구시보의 후시진(胡錫進·61) 총편까지 우려를 쏟아냈다.

후시진 “심각한 혁명 주장은 잘못된 판단·방향”  

후시진은 지난 2일 자신의 웨이보(微博·중국판 트위터)와 웨이신에 “‘심각한 혁명’ 주장은 잘못된 판단이자 잘못된 방향”이라는 반박문을 싣고 리광만을 공격했다. 후 총편은 “최근 당국이 감독·관리하는 목적은 시장의 규범을 세워, 자본의 야만적 확장과 부작용을 바로잡고 방지하려는 것일 뿐 이른바 ‘혁명’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이어 “(리광만의) 문장이 선동적 어조로 ‘변혁’ 운운한 것은, 중국이 개혁개방, 18차 당 대회 이래의 기본 노선·정책과 결별한다는 주장”이라며 “이는 어떤 역사 기억(문혁)을 되살려 사상적 혼란과 공황을 일으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중국의 늑대 전사를 일컫는 전랑(戰狼) 언론인으로 악명 높은 후시진마저 리광만의 주장은 문혁 당시 마오쩌둥의 위세를 이용해 득세한 4인방의 논리와 다를 바 없다고 주장한 셈이다.

장웨이잉 “시장경제가 유사 이래 가장 평등”

두 번째 반론은 유명 경제학자가 공동부유를 겨냥했다. 중국의 대표적인 시장주의자인 장웨이잉(張維迎·62) 베이징대 경제학 교수는 1일 싱크탱크인 중국 경제 50인 포럼에 “시장경제와 공동부유”라는 장문의 글을 기고해 “시장경제는 공동부유로 가는 외나무다리이며, 계획경제는 공동 빈궁으로 가는 햇빛 찬란한 고속도로”라고 주장했다. 장 교수는 “시장경제는 인류의 유사 이래 가장 평등한 제도이자, 비록 계층은 있지만, 계급이 없는 사회이며, 모든 개인에게 부자가 될 기회를 제공하면서도 특권은 거절하는 제도”라고 치켜세웠다. 그는 “재부를 한 사람의 주머니에서 다른 사람의 주머니로 옮긴다는 것은 존재하지 않으며 불가능”하다며 “기업가가 부를 창출해야 정부나 자선 기구가 빈곤 구제에 사용할 돈이 나온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시장 개혁에 대한 믿음을 버리고 간여만 늘린다면 결국 함께 가난해지는 공동 빈궁을 향해 갈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장웨이잉 교수의 지적에 중국 당국은 귀를 닫았다. 장 교수의 글은 곧 포럼 사이트에서 곧 내려졌고, SNS에 퍼진 글은 모두 삭제된 상태다.

장웨이잉 베이징대 경제학과 교수 [중국경제 50인 포럼 캡처]

장웨이잉 베이징대 경제학과 교수 [중국경제 50인 포럼 캡처]

“당 영도핵심은 저속한 개인숭배 아냐” 이례적 반박

세 번째 공산당 내부에서 시진핑 개인숭배를 둘러싼 격론이 진행되는 모양새다. 지난달 26일 당 중앙선전부가 발표한 『중국공산당의 역사 사명과 행동가치』라는 문건에 ‘개인숭배’에 대한 원칙적 반론이 공개되면서 드러났다. 27일 인민일보에 실린 문건 전문에는 “당은 영도 핵심을 형성하고 옹호한다”며 “결코 저속한 ‘개인숭배’가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당은 성립한 날부터 단호하게 ‘개인숭배’를 반대했으며 ‘당은 어떤 형식의 개인숭배도 금지한다’고 당장(黨章, 당의 헌법)에 기재했다”고 덧붙였다. 당의 영도 핵심, 즉 시진핑은 무한한 권력을 가지고, 멋대로 정책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당과 나라의 방향타를 쥔 조타수로서 무거운 책임을 진다는 의미라고 해명했다. 당 공식 문건에 민감한 ‘개인숭배’를 언급한 것 자체가 당 내부에서 시진핑 ‘개인숭배’에 대한 우려와 비판이 제기됐다는 방증이다.

방역 정책도 논란이다. 지난 7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 정책을 놓고 중국의 파우치 박사로 불리는 장원훙(張文宏) 푸단대 의대 감염병학과 주임이 SNS에 ‘바이러스 공존론’을 펼치자 전·현직 당국자가 일제히 나서 기존의 ‘제로 코로나’ 정책 옹호를 합창했다. 당시 리광만도 SNS에 “‘바이러스와 화해·공존’ 주장은 투항주의에 불과하다”면서 “단호하게 반대한다”는 격문을 올려 방역 논란까지 좌·우 노선 투쟁의 양상을 보인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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