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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점주 숨진날 '이제 우리랑 거래하자' 노조 전화왔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 7월 28일 오전 김포 한 택배대리점에서 해당 지점 노조원들이 택배 물품을 챙겨가고 있다. 앞서 노조원들이 일부 택배 물품 배송을 거부하자 A씨를 비롯한 비노조원들이 그 공백을 메웠다고 한다. 사진 A씨 제공

지난 7월 28일 오전 김포 한 택배대리점에서 해당 지점 노조원들이 택배 물품을 챙겨가고 있다. 앞서 노조원들이 일부 택배 물품 배송을 거부하자 A씨를 비롯한 비노조원들이 그 공백을 메웠다고 한다. 사진 A씨 제공

“소장님이 돌아가신 지 얼마 안 됐는데, 그 사람들이 거래처에 연락해서…”

지난 4일 택배기사 A씨(40)는 수화기 너머로 울분을 토했다. 김포 한 택배 대리점 기사인 그는 최근 10년간 함께 한 동갑내기 택배 대리점주를 잃었다. 지난달 30일 유서를 남기고 극단적인 선택을 한 이모(40)씨다. 세 아이의 아버지인 이씨는 유서에서 “처음 경험한 노조원 불법 태업과 업무방해 등으로 하루하루가 지옥 같았다”고 적었다. A씨는 누구보다 이씨가 죽음에 이르게 된 상황을 잘 아는 듯했다. 그는 “비극은 여전히 진행 중”이라고 했다.

A씨는 최근 전국택배연대노조 소속으로 추정되는 택배 대리점 기사들이 숨진 이씨가 관리하던 거래처에 전화를 걸었다는 사실을 전해 들었다고 했다. 그들은 이씨의 거래처에 “이제 우리와 거래하자”고 연락했다고 한다.

노조 생긴 이후 갈등 깊어져

A씨는 올해 초 이씨가 택배대리점이 관할하는 구역을 분할하려던 중 마찰이 생긴 게 비극의 시작이라고 했다. 당시 구역 분할은 결렬됐다. 공개 입찰 문제와 대리점 소속 직원과의 견해차 등이 있었다고 한다. CJ대한통운이 택배 대리점 분구 시 공개 입찰제도를 운용하면서 대리점 소속 직원에게 구역 분할을 쉽게 할 수 없게 됐는데 여기서 갈등이 시작됐다는 게 A씨의 말이다.

지난 5월 택배대리점 내에 민주노총 소속 노조가 들어서면서 갈등이 점차 심해졌다고 한다. 수가 늘어난 조합원들은 배송수수료, 집하 수수료 등을 인상해달라고 이씨에게 요구했다. 이씨가 “대리점주에게 과도한 부담이 간다”며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자 노조 소속 택배기사들은 일부 업무를 거부했다고 한다. 대부분 부피가 크고 무거운 물품이었다. 대리점에 소속된 기사 18명 가운데 12명이 민주노총 조합원인 상황. 결국 이씨와 가족이 그 짐을 짊어졌다. A씨를 비롯해 노조에 가입하지 않은 일부 택배 기사들이 일손을 거들면서 위기를 넘겼지만, 또 다른 반발로 이어졌다.

경찰신고에 단톡방 욕설까지

A씨에 따르면 노조 소속 택배기사들은 비노조 택배기사가 자리를 비운 틈을 타 A씨가 배송하기로 한 물품들을 다시 가져가기 시작했다. 한 노조 택배기사는 “내 택배 물품을 빼앗아 갔다”며 A씨를 경찰에 신고하기도 했다. 택배 업무에 차질이 생기지 않자 행동에 나섰다는 게 당시 상황을 지켜본 이들의 설명이다.

이 과정에서 택배대리점 구성원이 들어와 있는 카카오톡 단톡방에서는 A씨와 비노조 택배기사를 향한 조롱과 비난이 연일 이어졌다고 한다. A씨는 “이 소장이 자존심이 강해 감정을 잘 드러내진 않았지만, 종종 이 상황이 힘들다고 했다”며 “일을 도왔던 내 아내도 스트레스로 인해 지난달 유산했다”고 했다. 계속된 상황을 견디다 못한 이씨는 원청업체인 CJ대한통운에 대리점 포기 각서를 냈고 극단적 선택을 했다.

점주 사망일에도 “우리랑 거래하자”

택배대리점주가 민주노총 노조로부터 당했던 괴롭힘을 견디지 못해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그는 유서에서 ″하루하루가 지옥 같았다″고 했다. 사진 CJ대한통운 대리점연합회

택배대리점주가 민주노총 노조로부터 당했던 괴롭힘을 견디지 못해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그는 유서에서 ″하루하루가 지옥 같았다″고 했다. 사진 CJ대한통운 대리점연합회

이씨가 세상을 떠난 뒤 A씨는 택배 대리점 직원 B씨(30대)로부터 뜻밖의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노조 소속 택배기사들이 대리점과 거래하던 업체에게 새로운 거래를 제안했다”는 내용이었다. 택배대리점은 고객이 주문한 물품을 생산하는 업체들과 박스당 단가 등을 협의해 거래처 계약을 한다.

B씨는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노조 기사들이 거래처에 직접 찾아가거나 전화해 ‘이 소장이 사망했으니 거긴 이제 끝났다. 이제 우리랑 거래하자’는 취지의 제안을 했다. 거래처 측에서 대리점에 사실관계를 물어보면서 이 사실을 알게 됐다”면서 “노조 소속 택배기사들은 이 소장님이 돌아가시기 전부터 거래처에 새로운 거래를 제안했고, 이 소장 사망 당일에도 거래처에 이런 이야기를 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해당 노조 조합원 측과 전국택배연대노조는 “답변 드릴 부분이 없다”고 했다. B씨 주장의 사실 관계에 대한 설명을 듣고자 했으나 노조원 측은 취재에 응하지 않았다.

대리점연합회, 노조 택배기사 고발 방침 

1일 오전 경기도 김포시 한 택배업체 터미널에 마련된 40대 택배대리점주 이씨의 분향소에 영정이 놓여 있다. 이씨는 노조를 원망하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지난달 30일 극단적 선택을 했다. 연합뉴스

1일 오전 경기도 김포시 한 택배업체 터미널에 마련된 40대 택배대리점주 이씨의 분향소에 영정이 놓여 있다. 이씨는 노조를 원망하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지난달 30일 극단적 선택을 했다. 연합뉴스

한편 CJ대한통운 택배대리점연합회는 이씨 유가족과 논의한 뒤 해당 대리점의 노조원 택배기사들을 상대로 법적 조치를 하기로 했다. 고소·고발을 통해 이씨의 유서 내용과 관련된 사실관계를 밝히고 비극을 부른 이들의  책임을 묻겠다는 방침이다. 김종철 CJ대한통운 대리점연합회장은 “집단 괴롭힘으로 대리점주를 사망에 이르게 한 대리점 택배기사 노조원에게 민형사상의 책임 물을 것”이라며 “이번 주 유족과 협의해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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